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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미 Nov 11. 2019

누구나 벤치에 누워 하늘을 볼 수 있다


길거리 벤치에 언제부턴가 저런 가운데 팔걸이가 생겼다. 말이 팔걸이일 뿐 실상은 노숙자분들이 눕지 못하도록 방해물을 만들어 놓은 거라고 했다. 의자를 볼 때마다 가끔 생각한다. 그래도 찾아보면 편하게 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오늘은 내친김에 신발을 벗고 직접 누워보기로 했다. 운동을 하느라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걷던 사람들이 나를 힐끗 보면서 지나간다. 멀쩡하게 생긴(내 생각에) 여자가 낮술을 x먹었나. 왜 저기서 이리저리 몸을 구부렸다 폈다하며 들어 눕고 난리야? 뭐 이런 눈빛이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누워봐야 편한 자세를 알 수 있다.     


하늘을 향해 똑바로 누워본다. 가운데 팔걸이 바로 위까지 엉덩이를 맞춰 눕고 무릎을 조금 구부리면 누울 수 있다. 문제는 위쪽 팔걸이에 머리가 올라간다는 건데 베개로 쓰기에는 딱딱하다. 후드 티의 모자를 끌어올려 머리와 팔걸이 사이에 걸쳤더니 오~~~ 딱 좋다. 하지만 문제는 옆으로 돌아 누울 때이다. 오~~ 근데 막상 옆으로 누워보니 생각보다 괜찮다. 무릎을 살짝 구부려 돌아 누우면 팔걸이 바깥쪽과 얼추 곡선이 맞아떨어져서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왼쪽 오른쪽 다 돌아 누워봤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다. 그렇게 누워 있다 보니 예전에 있었던 일 하나가 생각났다.     



수원역에서 버스를 탔는데 차 안에서 낯선 냄새가 훅 풍겨왔다. 버스에는 누가 봐도 노숙자인 한 사람이 타고 있었고 그에게서 나는 때 꼬장물 냄새였다. 사람들은 그가 앉아있는 자리 주변에도 가지 않았다. 불쾌한 냄새가 싫어 창문을 여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그가 버스에서 내렸다. 그곳에 타고 있던 누구도 그가 앉았던 자리에 가서 앉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에 오른 사람 중 하나가 그 자리에 가서 앉았다.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그 사람의 무심한 행동을 흘깃 쳐다봤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별 수 있을까. 다른 버스에 오르고 빈자리에 가서 앉았을 때 그 곳이 노숙자가 앉았다가 떠난 자리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으며 그게 또 뭐 그리 중요한 문제냔 말이다. 그들이 앉거나 누웠다 떠난 자리에 도대체 무엇이 남는다고 야박하게 저런 걸 떠억 만들어 붙여놓는 건지 원...     


박민규 작가의 <아치>라는 소설이 있다. 삶을 비관해서 한강다리 아치에 오른 남자를 50대의 김 순경이 설득하러 올라가서 나누는 대화가 주 내용이다. 그러니까 김 순경은 이런 일에 베테랑인 사람이다. 어떤 말을 하면 저 사람이 눈물을 터트릴지 알고 있다. 가슴을 벅벅 긁어 전부 토해내듯 실컷 울고 나면 그래도 조금 더 살아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처음엔 만만하게 설득을 시작한다. 김 순경 자기 이야기를 먼저 꺼내놓는다. 부모 복, 형제 복, 자식 복 뭐 그딴 거 다 남의 이야기라고. 나도 뒤지게 고생하며 여기까지 그냥 꾸역꾸역 살아온 거라고. 거짓말도 능청스럽게 섞어 넣는다. 하다보면 거짓말도 늘고 진짜 내 이야기 같아지기도 한다. 자살하려던 사람도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그래야 설득할 수 있으니까. 이번에도 별 어렵지 않게 이야기가 먹힌다. 자살의 의지가 꺾인 젊은이는 담배를 피우고 눈물을 흘리고 자기 얘기를 털어놓는다. 이제 다 되어간다. 손잡고 내려갈 일만 남았다.      


“사람이 정신만 곧으면 언제고 다시 일어설 수 있어. 못할 일이 뭐 있어? 나도 맨주먹으로 시작했는데 세상이 돈이 다가 아니야 이 사람아. 정신을 안 차리니까 무시하는 거지.”     


하지만 김 순경은 그런 말을 하는 자기 입을 쥐어뜯고 싶어진다. 그건 거짓말이니까. 세상은 결코 그런 곳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눈물이 터져버린 젊은이가 꺽꺽 거리며 이야기 한다.     


“제발 좀... 전철 타면 힐끗거리면서 눈 깔지 마. 니들... 다 들려 씨발련들... 어디서 냄새 나지 않니... 속닥거리지 좀 마. 방세... 방세 좀 그만 올려 씨발... 왜 사람을 의심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을... 이삿짐 없어졌는데 왜 나만 잡고 지랄이야... 그래, 씨발 내가 그랬다고 쳐. 다 좋아,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런데 좆같이... 씨발... 벌레 보듯 보지 말란 말이야... 사람이 살려고... 살아보겠다고 하는데...”     


김 순경이 그 젊은이를 설득시키기 위해 했던 모든 말이 사실은 자기가 세상에 쏟아놓고 싶었던 신세 한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젊은이의 모습을 보며 세상에서 소외받고 가지지 못한 자들이 받아온 지독한 설움이 전염되어 같이 아파온다. 지금 당장은 자살을 내려놓는다 하더라도 아치에서 내려간 저 젊은이에게 세상은 더 이상 잔인하게 굴지 않을 거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래도 김 순경은 어쩔 수 없이 담배 연기 같은 한 마디를 내 뿜는다.     


“그래도 살아야지 이 사람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살고 싶은 거다. 비루한 삶을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 삶을 버티기 위해 밥도 먹고 잠도 자야 하지만 세상은 그들이 불편하게 걸터앉은 자리마저도 뺏어버리려 한다. 자기들이 조금 불편하고 조금 불쾌하다고 느껴지면 ‘다수의 편익을 위해’라는 말 속에 모든 것을 묻어버린다. 길거리 의자에조차 저런 아치를 만들어 붙인다. 한강으로 뛰어내릴지 말지 망설이며 서있는 아치와도 같은 의자. 하룻밤 허리 쭉 펴고 자고나면 그래도 조금 더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를 잠자리가 되어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길거리 벤치에 저런 철심을 박아놓으면 안 되는 거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나보다. 설령 노숙자분들 때문이 아니라 하더라도. 고단한 누군가가(월급을 못 받은 적은 있어도 일을 쉬어본 적은 없는) 무거운 다리를 끌며 길을 걷다가 벤치에 잠시 몸을 누이고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 예전처럼. 사람하나 허리 쭉 펴고 누울 수 있는 그런 의자로 다시 돌아가면 좋겠다...는 얘기를 쓸데없이 길게 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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