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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Feb 22. 2024

'유니버설발레단 - '코리아 이모션 情' 공연

[Review] 한국의 정서가 가지는 힘


  작년에 예술의 전당에서 '심청' 공연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올해 좋은 기회로 유니버셜 아트센터에서 '코리아 이모션 情'이라는 공연을 보게 되었다.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와 같은 서양 발레가 아닌 동양적인 분위기의 발레는 작년에 접했을 때 신선하다고 생각했고 한국의 '정'이라는 정서를 발레로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춤에도 다양한 장르가 존재하고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느끼는 공통적인 매력은 음악에 맞춰 말없이 오직 몸으로만 정서나 느낌, 에너지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작년에는 스토리가 확실하게 존재하는 발레였다면 이번엔 모호할 수 있는 단어를 어떻게 춤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서 잘 상상이 되지 않았기에 직접 보러 가고 싶었다.  

 서양과 동양의 조화로운 공연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니 발레계에서도 다양한 도전을 행하고 있는 것 같다. 각자 고유한 아름다움을 인정하면서도 조화롭게 보여준다는 것이 관객에게 어떻게 설득력 있게 다가올까 기대가 되는 부분이었다.  


 공연 시작 전, 문훈숙 단장님이 나와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게 신기했다. 공연 전에 이렇게 누군가가 나와 공연에 대해 설명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라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늘 신기하다며 글을 썼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여전히 신기했다. 특히 나한테 발레는 고전적인 느낌이 강한 공연이었는데 사전에 공연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존 발레의 틀을 깬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내가 글로만 읽고 갔던 내용을 직접 말로 짚어주시고 설명해 주셔서 잘 기억하면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씀은 꼿꼿하게 끌어올려 춤을 추는 발레와 둥글게 말면서 춤을 추는 한국 무용의 조화가 이 공연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하셨던 것이다. 같은 춤이라도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정말 다른데 특징이 다른 발레와 한국 무용의 조합이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했다. 


 공연 중 가장 기대가 됐던 것은 '달빛유희'이다. 그 이유는 사실 제목이 예뻐서였다. 달빛에서 즐겁게 논다는 의미인데 뭔가 상상만 해도 아름다울 것 같았다. 구정 때 시골에 내려가서 깜깜한 어둠 속 반짝이는 별과 달을 봤었던 순간이 떠오르는 제목이었다.   



 의상, 노래, 소품, 분위기가 동양적인 느낌이었는데 춤은 발레라는 게 참 신기했다. 그 조화가 결코 어색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몸으로 표현하는 무용수들의 에너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발레를 운동으로 2년간 배웠던 적이 있는데 늘 '꼿꼿함'이 필요한 춤이었다. 그런데 공연에서는 둥글게 말리는 동작을 순간순간 보면서 이게 한국 무용인 듯, 발레인 듯 딱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그런 조화로움을 볼 수 있었다. 나도 보면서 '저 동작은 한국 무용이야.', '저 동작은 발레야'처럼 딱 규정짓는 것이 아닌 그저 음악, 춤, 공연장의 분위기를 보면서 그 순간을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조화가 아닐까?


 여성 무용수들의 부드럽지만 잔잔한 힘이 느껴지는 움직임, 남성 무용수들의 무게감 있는 움직임을 보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파도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페어 안무를 하기도 하고 다양한 곡, 안무를 보면서 눈이 따라가기 바쁘기도 했다.  


 또한 가사가 있는 노래도 있었는데 확실히 가사를 들으면서 공연을 보니 집중이 잘 되기도 했다. 평소 가사 없이 멜로디만 있는 공연에서 내 집중력은 오래가는 편이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중간중간 가사가 있는 곡 덕분에 끝까지 집중해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이 공연에서 사랑, 그리움, 애절함을 많이 느꼈다. 특히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서 말이다. 중간중간 가족, 친구, 삶에 대한 '정'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많이 와닿지 않았다. 결국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남녀에 대한 '정'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아쉽기도 했다. 한국의 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을 다양한 부분으로 보여줬다면 더 다채로운 공연이 되었을 텐데.  


 시력이 좋지 않아 자세히 보지는 못했는데 같이 갔던 친구가 남성 무용수들 중 외국인이 있었다고 했다. 입고 있던 의상, 노래, 분위기가 외국인 무용수들에게는 충분히 낯설 수 있고 보는 관객 역시 어색할 수도 있었는데 나는 그저 자연스럽게만 봤다. 동양과 서양의 조화로움에 물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외국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한국의 '정'을 설명하는 것은 나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10대 때 내가 했던 행동들이 나에게는 '정'이었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어색한 문화 차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순간 들었다. 한국의 '정'이 무엇이냐고 훗날 누군가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는 순간이다.  


다채로운 공연 덕분에 내가 바라보는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처음엔 어렵지만 시도하다 보면 점점 그 안에서의 재미와 창작자의 목적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이렇게 동양과 서양의 조화로운 공연을 관심 있게 살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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