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하는 나] 나는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당신을 존중합니다, 있는 그대로.

by 노라a

함께하는 그 단어 안에서 행복을 논했다가, 어쩌면 우리 모두는 ’함께‘라는 단어 이전에, ‘나’의 존재로부터 행복을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있는 그대로’는 어떤 모습일까요?

유독 유치원으로 온 후, 로즈는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가져가서 나누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무엇인가를 ‘주고받는 친구’의 관계보다 그냥 너를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하며 대화를 이어 나가봅니다.

고마워,라는 말이 듣고 싶어.


일곱 살 로즈는 지금도 종종 찾아가는 어린이집에 가면, 열 세명정도의 친구들이 물결같이 달려들어 반겨줍니다. 그 물결을 피해 도망가듯 친구들과 뛰어노는데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어요.

스물 세명의 새로운 친구들만 가득한 유치원에서 로즈는 어떤 생각을 했던 걸까요? 새로움에 낯선 그 어려움은 유치원의 로즈와 사회 속의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어려워요.

나는 너를 존중해.


참 어려운 고백입니다. 너의 무엇이 아니라, ’ 너‘를 존중한다는 말처럼 부드러운 고백은 없습니다. 간혹 저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죠. 어떠한 상황에 갈등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갈등이 왜 생겼을까를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람이 나 같지 않기 때문이죠.

그럴 때면, 저는 얘기합니다. 나는 너를 존중하고, 그 결단을 존중한다. 하지만, 아닌 부분은 꼭 이야기해 줍니다. 그게 왜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그 사람을 존중하면서 나의 의견을 함께 말하는 방법을, 저 역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어땠냐고요? 쓴소리 하기 싫었어요. 싸우는 게 싫었어요. 그냥 말하지 않았고 불편을 감수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기가 싫더라고요. 내가 왜 불편한지를 알려줘야, 상대방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꼭 싸움이 되어야 할까요? 부드러운 강함은 분명 존재합니다.

아이들의 세상만큼 냉혹한 세상은 없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웃습니다. 내가 행복합니다. 세상이 행복합니다.

아이들의 세상에서 이 아이들이 불편을 참아내며 살아가기보다, 상대를 존중하되 스스로를 지키는 강함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어른이 되는 것은 나이가 든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구나, 어린아이에서 별반 다른 것이 없구나. 씁쓸함이 많았던 최근의 몇 가지 일들을 통해, 저는 저의 기록을 다시 시작하고 아이들을 위한 보석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강함이 있어야, 이 아이들이 내 손을 잡지 않고 있는 순간이 있더라도 스스로를 지키고 뻗어나가며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저에겐 이것이 가장 큰 행복 같습니다.

당신의 행복은 어떤 것인가요? 오늘은 어떤 일들이 당신을 행복하게 할까요?

오늘의 당신 이야기가 궁금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