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실연필 Jan 10. 2022

달팽이 선생님(4화. 우리 아이, 그냥 유예할까요?)

특수교육대상 유아의 입학 유예 알아보기

제4화. 우리 아이, 그냥 유예할까요?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눈앞이 까매졌다 환해지면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은별들로 반짝인다. 이마와 목덜미는 흐르는 땀으로 축축하고 두 다리는 후들거린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그대로 멈춰있다. 내가 몇 번이나 깊은 숨을 내쉬는 동안 로라는 주니어 카시트에 앉아 금세 잠이 들었다.

레이디 버그 노래만 나오면 까르르 웃던 아이에게도 온몸에 힘을 주어 있는 힘껏 소리 지르는 일은 꽤나 힘든 일이었나 보다. 익숙한 멜로디에 맞춰 흥얼거리던 로라의 목소리는 어느새 곤한 숨소리로 변해 있었다.

실은, 일곱 살이 된 로라의 엘리베이터 집착이 꽤 줄었다고 생각했다. 로라는 비록 말은 잘하지 못하지만 점차 스스로 이해하는 말들이 많아졌고, 그건 조금이나마 아이와 협상의 여지가 생겼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로라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로라가 좋아하는 아이템을 소지품처럼 가지고 다니는 습관으로 그 힘들었던 실랑이의 역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너무나 큰 착각에 불과했다.

물론 새로 생긴 대형 마트의 엘리베이터가 어딘지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라면 원인이었다. 인정한다. 방심했다. 그러나 내가 방심할 수 있었던 건 로라가 보통의 또래와 같이 무뎌지고 있다고 믿어서였다.

그러나 오늘, 로라는 순간적으로 내 손을 뿌리치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뛰쳐나갔다. 당황한 나 역시 반사적으로 아이를 쫓아갔다. 하지만 이미 로라의 눈은 엘리베이터의 반짝이는 버튼에 고정돼 있었다.

로라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또 눌렀다. 버튼을 누르면 불이 들어오고 다시 누르면 불이 꺼지는 장면을 로라가 바라보는 동안 나는 아이의 팔을 잡았다. 카트로 한 가득 장을 본 사람들의 불안한 눈길과 마주치자 나는 있는 힘껏 로라를 꽉 안을 수밖에 없었다.

'버튼 누르기'와 '엘리베이터 타기'에 실패한 로라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작은 손을 꼭 쥐고 내 등을 때리며 버둥거리는 다리로 허리춤을 걷어찼다. 로라는 일곱 살짜리 아이일 뿐이었지만 온 힘을 다해 버둥거리는 아이를 제지하기란 내게도 버겁고 힘든 일이었다.

장을 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순간 우리에게 향하자 나는 그 순간을 견딜 수 없었다. 눈물이 터져 나올까 봐 로라를 안은 채로 무작정 무빙워크를 향해 뛰었다. 그리고 주차장에 도착한 지금까지 나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이보다 힘든 날들도 많았는데 뭐... 혼잣말을 하다 눈물이 톡 하고 떨어졌다. 분명 좋아지고 있고, 앞으로 더 좋아질 거란 희망의 말들과 엘리베이터 버튼을 마구 누르던 로라의 모습이 겹쳐졌다. 무엇이 진짜일까. 정말 나아질 수는 있는 걸까.

드르륵 핸드폰 알람이 울리며 화면에 '특수학교 입학상담' 일정이 표시됐다. 입학이라니... 맞다. 내년이면 로라는 학교에 가야 한다.
로라, 이 아이가 학교에 갈 수 있을까? 혹시 나 혼자만의 욕심은 아닐까?

언젠가 엄마들 모임에서 유예라는 말을 들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학교 가는 걸 미룰 수 있는 제도 같았다. 로라에게는 '입학'이 아니라 '유예'가 필요한 것 아닐까. 지금 로라와 나에게 필요한 건 입학 상담이 아니라 유예 상담이 아닐까.

"선생님, 우리 아이 그냥 유예할까요?"
마음속에 떠오르는 크고 작은 물음표들로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다.

로라 엄마는 오늘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아이와 함께 마트 나들이를 하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버겁게 느껴지셨을까요. 아마도 엄마는 로라가 단설 유치원 특수학급을 다니며 주변 자극에 조금씩 둔감해지는 변화를 느끼셨기에 오늘의 로라 모습이 더 힘들게 다가오셨을 거예요.


그렇기에 내년에 입학을 앞둔 로라가 학교에 가는 게 맞는지, 차라리 유예를 하면서 몸과 마음이 더 큰 후에 입학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로라에게는 정말 입학이 아닌 유예가 좋은 선택일까요? 유예를 한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할까요? 유예를 결정할 때는 어떤 점을 고려하면 좋을까요?


오늘은 특수교육대상 유아의 유예에 대하여 알아보려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엘리베이터 얘기를 잠깐 할까 싶어요. 사실 엘리베이터는 우리 아이들의 로망, 그 자체입니다. 버튼을 누르면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는 사운드북을 선호하는 아이라면 백이면 백! 모두 엘리베이터를 좋아합니다.


때문에 연령이 낮은 유아에게서 더 심한 엘리베이터 집착이 표출되기도 해요. 또 '좋아함'을 넘어선 집착 행동은 한두 번의 에피소드로 끝나지 않고 아이 성장의 한 시기를 통해 꾸준히 나타나곤 합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엘리베이터에 대한 사랑은 무엇 때문일까요?


아이들에게는 이 엘리베이터야 말로 거대한 사운드 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빨간 불이 켜지고 "문이 열립니다" , "문이 닫힙니다."와 같이 반복되는 소리 자극도 제시됩니다. 게다가 이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면 누를 수 있는 버튼이 얼마나 많아지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층수가 높을수록 누를 수 있는 버튼도 많아지는 데다 눌렀다 하면 몸이 붕 뜨는 듯한 감각이 느껴지면서 땡! 하고 문이 열리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만한 장난감이 또 없습니다. 내 몸이 들어갈 수 있는 아주 큰 장난감, 아이들에게 엘리베이터란 그런 의미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특수학교에도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총 3대의 엘리베이터가 운행 중인데요. 아이들이 엘리베이터를 정말 좋아한답니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버튼 누르기, 엘리베이터 앞에서 눕기, 갑자기 엘리베이터 앞으로 뛰어가기 등의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학기가 진행될수록 엘리베이터 놀이에 대한 집착이 점차 소거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수업 시간을 잘 지키고 선생님과 해야 할 공부를 마친 후에 쉬는 시간을 이용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강화를 제공하거나, 엘리베이터보다 더 재밌는 실내놀이터, 체육관, 미술실, 컴퓨터실과 같은 특별실 이용 등으로 엘리베이터 이 외의 즐거움을 느끼는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지금, 아이의 엘리베이터 집착으로 힘드신 부모님이 계시다면 이 시기를 조금만 더 견뎌보시란 말씀을 조심스럽게 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집착이 소거되는 경우도 많고, 치료기관이나 유치원 교육기관과의 가정 연계지도로 점차 좋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아이의 집착이 줄어들었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한 번씩은 엘리베이터를 타려 고집도 부리고 버튼도 누르려 할 겁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심한 집착의 시기가 지나가면 예전과 같은 정도의 모습으로는 발현되지 않더라고요.


아이와의 외출이 겁날 정도로 심한 집착의 시기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역시나 답은 시간에 있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지금 이 시기를 지나시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조금만 더 힘을 내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분명 어느 순간 '드디어 벗어났다!'라고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다시 유예로 돌아가서 로라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유예라는 말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시는 분들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먼저 취학 유예의 뜻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취학 유예: 초ㆍ중등 교육법에 따라 신체장애의 이유로 학교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아동의 보호자에 대하여 취학 의무를 유예하는 일. 기간은 보통 1년 이내. (출처: 표준국어사전)

아이가 일곱 살이 되는 겨울, 집으로 반가운 편지 한 통이 도착합니다. 바로 '취학통지서'입니다. 이 취학통지서를 받고 초등학교 입학 예정일에 가서 여러 가지 서류를 작성하면 바로 3월 2일 입학식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의 첫 학교 생활이 시작되지요.


하지만 아이에게 건강 상의 문제나 심한 장애로 인해 학교 생활이 어렵다고 보호자가 판단할 때에는 이 취학의 의무를 잠시 미룰 수 있습니다. 이를 '취학 의무의 유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유예를 학부모님의 신청으로만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특수교육대상 유아의 의무 교육은 꼭 필요한 것이기에 이를 유예할 수 있는 근거가 분명해야 합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유예를 신청하면 관할 특수교육 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아이에게 정말 등, 하교에 어려움이 있는지, 순회교육을 실시할 순 없는지, 아이 보호자의 의견에 대해 면밀히 심사합니다.


이렇게 유예가 승인되면 유예의 기간은 1년 이내입니다. 유예 기간이 끝난 후 유예를 연장하기 위해서도 다시 똑같은 관할 특수교육 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합니다. 또 제가 근무하는 지역에서는 유예 및 면제 기간 내에는 특수교육 및 관련 서비스는 지원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부분도 현실적으로 학부모님께서 꼭 고려하셔야 할 부분입니다.


관련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은 유예 기간 동안 방과 후 학교나 치료지원이 불가함을 뜻합니다. 유예 기간만큼 방과 후 학교나 병원 치료, 사설 치료실의 지원이 안 되는 것이니 현실적인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유예를 마치고 입학하면 학령 기간 동안 동일한 특수교육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달팽이 선생님의 꿀팁

생각보다 많은 학부모님께서 유예를 고민하시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학교는 뭔가 유치원과 다르고 아이는 그만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아이의 건강 상태나 기저 질환으로 인해 외부활동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유예에 관한 고민이 드실 때는 1) 아이의 건강 상태가 양호한 지, 2) 현재 유아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먼저 체크해보시고 두 가지에 모두 충족된다면 유예보다는 입학을 권유하고 싶습니다. 


아이들마다 적응 속도가 다르고 고집하는 루틴이나 대상들이 상이하기 마련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더 학교라는 교육기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냥 아기 같고 서투르더라도, 건강상 큰 문제가 없고 유치원 생활에 참여했던 아이라면 또래의 친구들과 학교 생활을 같이 시작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입학할 학교의 선생님과의 상담은 필수랍니다.


참, 한 가지 덧붙이자면 학교 입학 후에는 '가정 체험학습' 제도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입학한 후에도 아이가 학교 생활 적응을 너무 힘들어한다면 가정 체험학습을 통해 아이가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은 시도별로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학기초 학교 공지사항으로 안내되니 한 번쯤 체크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14조(취학의무의 유예 또는 면제 등)
 ① 특수교육대상자의 보호자가 법 제19조 제2항에 따라 특수교육대상자의 취학의무를 유예받거나 면제받으려는 경우에는 관할 교육감 또는 교육장에게 취학의무의 유예 또는 면제를 신청하여야 한다.
② 제1항에 따른 신청을 받은 교육감 또는 교육장은 법 제10조 제1항에 따른 관할 특수교육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특수교육대상자의 등ㆍ하교 가능성, 순회교육 실시 가능성 및 보호자의 의견 등을 고려하여 면제 또는 유예를 결정한다. 이 경우 유예기간은 1년 이내로 하고, 유예기간을 연장하려는 경우에도 관할 특수교육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③ 취학의무를 면제 또는 유예받은 사람이 다시 취학하고자 하는 경우 그 보호자는 교육감 또는 교육장에게 취학을 신청하고, 그 신청을 받은 교육감 또는 교육장은 관할 특수교육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취학 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팽이 선생님(3화. 완전 통합, 그것이 문제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