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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실연필 Apr 18. 2022

겨울잠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가 겨울잠을 자는 동물에 대해 이야기했다. 개구리, 뱀, 곰의 모습이 그려진 땅 속 풍경 그림을 손으로 짚어가며 소리 내어 이름도 읽어보았다.


그러다 저기 웅크리고 있는 개구리 옆에 내 자리 하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득 들었다.


긴 겨울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나도 한동안 긴 잠에 빠졌던 것 같다. 갑자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먼 곳으로 전보를 오게 되었고 이 새로운 곳의 땅과 공기에 나름대로 적응하는데 두 달여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란 인간은 생활 패턴과 환경이 달라지면 휙-하고 정신을 못 차리는 타입이다. 그러다 보니 왕복 150km 장거리 운전을 하느라 멀미가 나는 건지, 부적응에 마음이 울렁이는 건지도 모를 만큼 정신 어지러운 나날이었다. 


새 학교와 아이들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온 가족이 통과의례처럼 겪어낸 코로나도 큰 몫을 했다. 오미크론을 누가 경증이라고 한 건지 만나면 한 대 줘 패고 싶을 만큼 아직도 그 여파가 상당하다. 후각 상실, 미세한 두통이 지속되는 찜찜한 상태의 컨디션으로 이 봄을 맞았다.


그래도 봄은, 봄은 참 좋더라.

어디를 가도 봄이 주는 생기와 신선함이 마음을 다독인다. 괜찮다. 괜찮다고.


아이들과 걷는 학교 산책길에 피어난 민들레꽃, 겹벚꽃, 이름 모를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흔들 어여쁘기 짝이 없다.


꽃도 흔들흔들, 손을 잡고 함께 걷는 아이들과 나도 흔들흔들 몸을 직여본다. 흐흐흐.


3월에는 전 학교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새로 만난 아이들에게 마음 열기가 참 어려웠는데.


이제 4월이 되니 올해 만난 이 아이들의 매력이 하나둘씩 보인다. 나처럼 낯을 심하게 가려서 교실도 들어가기 어려운 아이, 선생님이 좋아서 매일 우리 반에 오는 시간표를 확인하는 아이, 퍼즐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구겼다 다시 펴는 아이, 함박 웃을 때 내 영혼도 청량해지게 하는 아이.


이 아이들과의 일 년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비로소 겨울잠에서 깨어나 다시 봄을 맞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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