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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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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주 May 26. 2019

첫 수업의 설렘, <가시나들> 제1화

 처음 만난 친구들, 빳빳한 교과서에 낯선 교실, 새로운 담임선생님. 새 학기는 언제나 긴장되고 설레었던 것 같다. '새 학기'라는 단어만으로도 봄바람처럼 배가 간질간질해지는 기분이 든다.


지난 19일 일요일, 첫 방송을 한 MBC 파일럿 프로그램 <가시나들>은 새 학기 첫 수업의 기분을 다시금 느끼게 만들었다. <가시나들>은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들'의 줄임말로 경남 함양의 문해학교 학생인 할머니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할 20대 연예인 짝꿍들동고동락하며 배워나가는 모습을 담은 예능이다.

<가시나들>은 문해학교 학생인 할머니들을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은 배움을 시작했다. 그들의 설레는 시작, 첫 수업을 따라가 보자.



어색한 교실, 자리 배정

 어색한 교실 풍경, 낯선 선생님에 할머니들은 교실로 들어오며 "여기가 아닌가 보다"라며 머뭇거린다. 문해학교 선생님이 된 문소리 배우가 "여기가 맞다"며 교실로 안내한다. 할머니들은 그제야 안심한 듯 웃으며 들어온다.

자리 배정. 처음 교실에 들어와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어디에 누구와 앉을 것인가에 학교생활이 좌우되곤 한다. 50년 간 함께해온 친구인 두 할머니는 '같이 앉아야 마음이 편하다' 하셨으나 안타깝게도 교실은 지정좌석제. 학생들은 본인의 이름이 쓰인 자리에 앉아야 했고 절친인 두 할머니는 옆자리를 남겨둔 채 찢어져 앉아야 했다.


짝꿍

할머니들의 옆자리를 비워둔 이유는 있었다. 그 빈자리는 바로 20대 짝꿍들을 위한 것이었다. 푸르른 그들의 모습에 할머니들은"우리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라며 손녀, 손자 보듯 반갑게 맞아주신다.

새 학기에 짝꿍의 존재는 꽤나 중요하다. 짝꿍은 보통 가장 먼저 통성명을 하는 친구, 공부도 잡담도 함께할 수 있는 친구다. 짝꿍을 처음 대면할 때를 떠올려보면 조금은 수줍은 질문으로 말문을 트며 이름이 뭔지, 작년에는 몇 반이었는지, 좋아하는 연예인은 있는지 물어보며 서로 알아갔던 기억들이 생각난다.

<가시나들>에서 짝꿍은 단순 학급 친구를 넘어서는 존재다. 공부도, 방과 후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는 사람이다. 짝꿍이 배정되자 최유정은 소판순 할머니께 '네일아트 너무 예쁘다며' 손을 마주 잡는다. 칭찬은 역시나 좋은 시작이 된다.


새 교과서

빳빳하고 새책 냄새가 나는 교과서. 새 교과서를 받는 날은 정말 설렜다. 갑자기 없던 공부 욕구가 올라 '새 학기 되면 진짜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도 해보고 구김 없는 종이를 조심히 넘겨가며 설레어했다. 며칠간은 책 표지가 빳빳하게 남도록 눌러 접지도 않았다.

단지 새 교과서라는 사실만으로도 새학기를 설레게 하는데 <가시나들>의 교과서는 예쁘다. 표지에는 '내 이름은 □'라는 문구와 함께 꽃들 사이로 할머니들의 웃는 얼굴이 그려져 있다. 문해학교 할머니들만을 위한 교과서인 것이다. 평생 나를 위한 배움은 받지 못한 할머니들. 그 배움을 내 얼굴이 그려진 교과서에 내 이름을 적어가며 시작한다.

짝꿍과 할머니들은 표지 네모 빈칸에 네임펜으로 자신의 이름을 신중히 적는다. 새 책만큼 예쁘게 적고 싶은 마음. 공감이 간다. 표지에 이름을 적는 모습 중 최유정은 짝꿍이 있는 이유를 보여줬다.  할머니가 '소핀순'으로 이름을 잘못 적자 짝대기 하나를 더 그으라며 '소판순'으로 완성시켜주었다. 부족한 부분은 서로 채워나가며 함께 완성시켜나가는 역할. 짝꿍은 한글을, 할머니는 인생을 알려주며 그들은 조금은 느리지만 정답게 배워나갈 모습을 기대해본다.


급훈 '가시나들'

우리 학급의 교육목표, 급훈을 알아볼 시간이다. 문해학교의 급훈은 프로그램명과 동일한 '가시나들'. 문소리 선생님은 우리는 모두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들'이라고 급훈의 의미를 설명한다.

20대 중반만 넘어가도 이젠 꿈보다 안정적 취업을 생각할 때라고, 다들 한참 앞으로 나아가 있는데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냐는 말들이 들려온다. '늦지 않았냐'는 말 앞엔 '다른 사람보다'가 생략되어 있다. 꿈에 부풀어있다가도 그 말에 주위를 둘러보면 나보다 앞에 가 있는 사람들이 정말 수두룩해 보인다. 안 그래도 불안한 시작이 더욱 두려워지는 것이다. '공부는 때가 있다'는 말도 학생 때 수도 없이 듣는다. 그 '때'는 보통 다들 공부하는 10대, 20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공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때를 정해놓고 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내가 모르는 것을 배우는 건 평생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문해학교 학생들에게 지금은 한글을 배우기 적절한 때이다. 배움의 기회도 주어졌고,  열심히 도전하겠다는 마음가짐도 한 상태이다. 배움을 찾아 나섰고, 기회를 잡았으니 지금이 곧 배움의 때가 아닐까.

급훈을 함께 읽으며 20대 청년 짝꿍들도, 이제 글을 배우는 70대, 80대도 늦지 않았다고 우리 시작할 수 있다고 다시금 생각해 본다. 너무 낭만적이라고 말한다면, 할머니들은 낭만적 이게도 배움을 시작했고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됐다. 그들은 시작했기에 배움의 즐거움을 느꼈고, 날마다 하나씩 더 알아가고 있다. 그동안 가시나이기에 배우지 못했으나, 이젠 가시나(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이기에 배울 수 있다고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다.


[1교시 : 짝꿍 알아가기]

교과서에 이름도 썼고 급훈까지 제창했으니, 이제 정말 1교시 수업 시작이다.

오늘 처음 만난 짝꿍. 교과서의 맨 첫 페이지는 그 짝꿍의 이야기로 채워본다. 이름은 뭔지, 몇 살인지, 또 취미, 별명, 꿈은 무엇인지 서로 모르는 게 많은 만큼 물어볼 것도 많다. 그동안 배운 한글을 총동원해 서로에 대한 내용을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간다.


나이는 쓰기 싫다는 짝꿍에 나이는 하트로,  글씨가 틀려 지저분한 곳도 하트로 가려주는 최유정 짝꿍의 센스.

1교시 '짝꿍 알아가기' 시간에는 최유정 짝꿍의 센스가 돋보였다. 나이는 쓰기 싫다는 짝꿍에 나이는 하트로,  글씨가 틀려 지저분한 곳도 하트로 가려준다. 짝꿍이 있기에 틀려도 즐겁다. 그렇게 짝꿍들은 서로 묻고 답하며 '짝꿍 알아가기' 페이지를 채워간다.


달콤한 쉬는 시간

조금은 긴장됐던 1교시가 끝나면 쉬는 시간이 찾아온다. 첫 쉬는 시간엔 '마이쮸 먹을래?'라며 먹을 걸로 말문을 트며 친해지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가시나들>의 첫 쉬는 시간에도 먹을 건 빠지지 않았다. 장동윤 짝꿍은 직접 만든 티라미수 케이크를 꺼내보였다. 흰 크림 위 박혀있는 빨간 딸기까지 누가 봐도 정성스레 만든 것이었다. 방금 1교시에 빵 안 좋아한다는 할머니도 동윤이 만들어온 케이크에 '이런 건 또 좋아햐!'라고 말을 바꿔 본다. 장동윤 짝꿍이 만들어온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달콤했던 쉬는 시간이 가고 다시 본격적인 2교시 수업이 시작됐다.


[2교시 : 의성어·의태어 써보기]

2교시에는 문장에 알맞은 의성어, 의태어를 채워 넣는 활동이 이어졌다.

'개가 공공 짖는다.', '가슴이 동동두근 뛰어요.', '하늘에서 눈이 뿡풍 내려요.' 문법적으로 보면 모두 틀렸다. 그러나 무작정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의성어와 의태어는 소리와 모양을 흉내 내는 말이다. 할머니들이 70, 80년간 인생을 살며 보고 들어온 것들을 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개가 짖는 소리는 '멍멍'일지 모르지만 할머니에게 강아지 메리는 '공공' 짖을 수 있다. 말은 삶을 표현하고 반영하는 수단이다. 언어가 삶보다 우선할 수 없다. 언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생각을 표현해낼 수 있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할머니들의 답변에 빨간펜으로 틀렸다고 표시하는 수업이 아닌 함께 다양한 '개소리'를 낼 수 있는 수업이라 다행이었다.

의성어, 의태어를 적어본 후 심화 수업인 속담 맞추기 활동을 했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는 속담이 나오자 속담의 뜻처럼 "남자들이 그렇게 성격이 급하다"며 화가 나면 밥상을 엎어버리던 남편의 모습을 언급했다. 밥상 엎는다는 이야기에 공감한 듯 다들 한 마디씩 덧붙인다.

"여자가 얼마나 고달팠어, 우리 때는"이라며 가시나였기에 겪었던 설움을 드러냈다. 속담의 의미는 할머니의 인생 안에서 해석될 수 있었다. 속담을 한글로 잘 쓰지는 못하더라도 할머니들은 그 뜻을 인생 깊이 알고 있다.  나의 삶과 생각을 표현하고 다른 여성들과 공통된 경험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수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이지 않을까.


차렷 경례! 다음 시간에 또 만나요

"차렷! 경례!" <가시나들>의 첫 수업은 옛날 스타일로 깔끔하게 마쳤다. 첫날이기에 서로 알아가는 활동과 의성어, 의태어를 배우는 정도로 끝이 났다. 원래 첫날 수업은 가볍게 끝마쳐야 하는 법. 그러나 수업 중 할머니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은 어쩔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 <칠곡 가시나들>의 중간중간 등장하는 할머니들의 시, <가시나들>의 시작을 열었던 이남순 할머니의 '공부'라는 시까지. 할머니들의 시에는 자신의 삶고 감정이 듬뿍 들어가 있다. 시에서 볼 수 있듯이 할머니들 안에는 깊고 소중한 이야기들이 있기에 수업 중 자신의 생각을 꺼낼 수 있는 활동이 더욱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가시나들>의 다음 수업시간에는 시를 배우며 할머니들의 '꽃이 되었던 순간'을 이야기한다. 다음 수업에서는 학습을 넘어, 배움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할머니들을 만나보고 싶다. 이번 주 일요일 오후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누구나 '가시나들'이 될 수 있기를

"학생". 누군가 길거리에서 나를 학생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곤 했다. 아마 학생일법한 나이 때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학생인지 아닌지를 나이를 기준으로 판단하곤 한다. 하지만 <가시나들>은 학생은 나이와 상관없다고 말한다. 배우고 있다면 누구나 학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가시나'라는 이유로 학생이 될 수 없었고, 배움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학생이면 누구나 첫 수업은 매 학기 당연하게 돌아오는 순간이나 '학생'에 속하지 않는다면 첫 수업은 주어지지 않는다. <가시나들>은 학생의 범위를 넓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첫 수업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구나 언제든지 학생이 될 수 있도록, 배움에 있어 모두가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첫 수업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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