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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셰프최순남 Jul 26. 2022

비밀공작

수업 끝난 지 20분이 지났다. 아직도 안 보인다. 수업 끝나면 칼같이 나오던 애였다. 5분이면 그럴 수 있겠지. 10분이더라도 뭐 그럴 수 있겠지. 이전에 이런 일이 한두 번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런가 여기겠다. 특별할 만한 일이 없는데 늦어지니 엄마로서는 걱정부터 앞선다. 하교 길 따라 학교 앞까지라도 가봐야 하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요란스레 퍼덕이는 날개 소리가 귓가에서 거치적거린다. 마른하늘에 웬일인가. 무심코 바라본 하늘에 헬리콥터 소리가 요란하다. 연이어 학교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렇게 40분이 지나자 슬슬 화가 치받았다.


 “늦으면 늦겠다고 전화라도 해야지.” “휴대폰이 왜 필요해?”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 연락할 방법을 싹둑 잘라버린 애 아빠가 야속했다. 그래 놨으니 아이가 연락해 주지 않으면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제가 급할 때 지나가는 사람에게 전화기를 빌려 소식 줄 때도 있긴 했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스멀스멀 불안한 느낌이 잦아들었다. 학교 사무실로 전화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주위를 돌아보니 평상시와 다르게 흐르는 묘한 기류. ‘뭐지?’  지나가는 학생과 학부모의 수군거림. 불안해 보이는 얼굴 표정들. 학교 주위를 떠나지 않는 소란스러운 헬리콥터. 시간이 가도 보이지 않는 아이. 끊긴 연락. 

 “학교에 무슨 일이 있나요?”

 “학교에 누가 폭탄을 묻어 놓았대요. 아이들 몇 명이 경찰 조사받고 있대요.”

 답답한 마음에 차문을 열고 행인에게 물었다. 평상시보다 일찍 학교에서도 하교했다 한다. ‘그런 일이 있으면 학부모에게 알려줘야지. 어떻게 한 시간을 꼬박 기다리게 만들어.’ 속으로 메시지 하나 안 보내준 학교를 원망했다.


 ‘어머 오늘이 9월 11일이잖아.’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장난을 했군!’ 이맘때면 으레 여기저기서 장난으로 폭탄 유언비어가 나돈다. 세월이 흘러도 잊지 못하고 뉴욕 쌍둥이 빌딩 폭파 트라우마를 애꿎은 경찰에게 불러일으키는 일이 다반사였다. 만우절 농담과는 차원이 달라 처벌 수위를 높였건만 여전히 줄어들 줄 몰랐다.

 “왔으면 왔다고 연락을 줘야 하는 거 아냐?” 벌써 집에 가고도 남았을 시간일 텐데 애가 왔다고 연락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한바탕 애 아빠를 또 원망하며 차를 돌리려는데 벨이 울렸다. 학교였다.


 ‘아니 그 미친 짓을 한 게 내 아이였어?’

 그냥 까맣게 하늘이 내려앉았다. 러시아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 누군가의 컴퓨터로 ‘9·11, 학교에 폭탄이 터진다’ 가짜 메시지를 날렸다. 간도 크게 교장선생님께 직접 띄웠다. 밝혀지고 보니 배짱 좋게 보낸 장본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아들’이었다. 그런 사실을 친구 몇 명에게 자랑삼아 떠벌렸고. 친구들은 비밀이랍시고 입 다물고 있다 무기를 장착한 경찰 군인 헬리콥터까지 뜬 걸 보고 덜컥 했겠지. 이실직고하는 바람에 사실이 드러나고 만 사건이었다. 


 머리가 좋아 월반을 하던 아들이었다. 나이도 어렸고 체구도 작았지만 자존심 강하고 한번 한다면 똑 부러지게 해내는 아들이었다. 그랬던 아들에게 이번 사건은 치명적이었다. 치밀하게 짜인 각본은 그럴듯했지만 비밀 유지에서 실패한 결과였다.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지 못했던 사태였다. 인생에 먹구름을 씌운 날벼락이다. 한 번 있었던 장난이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며칠을 격리했다. 몇 년을 보호관찰받았다. 다행이라 해야 할까. 학교에서는 퇴학 대신 전학으로 마무리했다.


 고1에 뒤틀어진 길은 어두운 터널이었다. 대안학교로 옮겼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를 나도 학교도 기다려 주었다. 담임선생과 주임 선생이 집까지 찾아와 설득했다. “공부 포기하면 안 된다.”

 ‘네 맘이 어디 나 만하겠니?’ 엄마인 나는 의외로 담담했다. 재촉하지 않았다. 어떤 꿈을 꾸고 사는지 속 깊이 이야기해본 적은 없다. 이번 사건으로 자신의 앞길이 막혔다 생각했을는지 모른다. 어둑한 터널 끝에 다시 빛이 나온다는 사실을 그래도 나는 믿어야 했다. 기도했다. 


 6개월가량 아들은 말도 없었다. 방에서 거의 나오질 않았다. 비행기 게임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도 병원 응급실 자원봉사는 빼놓지 않았다. 바깥세상에서 ‘용기’와 ‘인정’을 받았다. 희망의 끈 또한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고 3이 다 끝나갈 때까지도 날카롭고 반항적이었다. 대학 준비하는 기색일랑은 숫제 없어 보였다.


 이대로 고등학교 생활 끝인가 여길 무렵 방문을 열고 나왔다. 뜬금없이 대학 간다고 통보하듯 툭 말을 내뱉었다. 마지막 남은 일정 동안 SAT 시험을 쳤다. 그래도 원하던 만큼 점수가 나왔단다. 원하던 대학 철학과를 들어갔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치열하게 공부하여 ‘911 응급요원 자격증’을 땄다. 소중한 생명 살리는 일을 했다. 집 떠나 먼 곳으로 대학을 갔다. 그 후로 부모에게 용돈 한 번 받아가 본 적이 없을 만큼 철저히 ‘혼자’ 독립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살얼음 같은 6시간 이상 인터뷰를 거쳤다. 지금은 그 어렵다는 미 공군 헬리콥터 장교가 되었다. 부가하여 조만간 의사 공부를 할 계획에 행복하게 지낸다.


 천 년에 한 번 꽃 피우는 우담바라가 있다. 수목한계선에서 생육하는 식물도 있다. 칼바람 몰아치는 한겨울 보내고서야 피어나는 봄꽃들이 찬란한 이유는 있다. 고된 시련을 겪고 피어난 꽃이라 더욱 아름답고 강하리라. 제 철에 맞춰 제 철을 찾아 피어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충분히 따른다. 자연이 ‘공작’하는 일에는 ‘비밀’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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