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지는 바퀴, 이어진 여행

by 지성셰프최순남

변화 속에 우리는 산다. 변화는 다양하다. 살아가는 일상 자체가 다양하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사는 듯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작은 ‘바뀜’이 있게 마련이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작년과 올해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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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흔적을 남긴다. 신나는 일이든 화나는 일이든. 변화가 크면 후폭풍도 크다. 옆에서 옆으로 건너가는 정도가 아니라 여기에서 저쪽으로 이동하는 정도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변화 큰 공간이동에는 여러 감정들이 따라붙는다. 기대 설렘 불안 긴장이 마구 뒤섞이는 묘한 경험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 갔을 때가 첫 번째 큰 공간이동이었다. 미국 동부 코네티컷에서 서부 캘리포니아로 이주할 때가 두 번째이다. 미국에서 강산이 세 번쯤 변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 역시 만만찮게 컸다.

그럼에도 셋 중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동부에서 서부로 이주했던 때다. 비자 발급 문제와 일자리가 바뀌는 통에 온 식구가 삶의 울타리를 죄다 바꾸어야 했기 때문이다. 혼자였다면 어떻게든 변화의 진동을 고스란히 혼자서 느끼고 해결했겠다. 8학년과 10학년 두 아이들에게는 무척이나 버거웠을 테다. 이솝 이야기 《시골 쥐와 서울 쥐》를 방불케 하는 급변화였다.


제2외국어를 독일어로 가르치는 학교가 캘리포니아에서는 드물었다. 학군이 좋은 곳은 더더욱 찾기가 어려웠다. 찾다 찾다 한 곳을 물색했다. 엘에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이나 되는 월넛이라는 곳이 목적지였다. 이사 갈 아파트 앞에는 커뮤니티 칼리지도 자리 잡고 있었다. 큰 아이가 비록 10학년이었지만 이미 코네티컷 대학에서 미적분을 배우고 있어서 수준에 맞는 교육을 받을 거라 쉽게 예측했다.


미국 학교는 대부분 9월부터 시작이다. 여기에 맞춰 우리는 8월 중순에 코네티컷을 떠났다. 큰 짐은 우편으로 먼저 부쳤다. 버스보다 더 큰 레크리에이션 RV(recreational vehicle) 차량을 펜실베이니아에서 싼값으로 구입해서 나머지 이삿짐을 채웠다. 미 대륙을 2주에 걸쳐 횡단하는 멋진 계획을 구상했다.

“되도록 빨리 와 주세요.”

새로 시작할 회사에서는 급하게 요청했다. ‘이런 기회가 인생에서 다시 올까?’ 아무래도 쉽잖겠다는 예감으로 과감히 긴 여행을 택했다. 아이들이 한 번쯤 가고 싶고 갈 가치가 있는 곳을 골고루 방문하자는 야무진 취지였다. 여행 마치고 차를 캘리포니아에서 팔면 이익도 클 거라는 기대도 한몫했다. 생각만 해도 슬슬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처음으로 이 여행을 후회했던 지점이 나타났다. 웨스트 버지니아 급경사 고속도로를 지날 때였다. 이토록 경사진 도로는 난생처음이었다. 경사 수치 7%가 이처럼 소름 끼칠 정도일 줄은 미처 상상도 못 했다.

아이 아빠도 난생처음 대형 RV를 운전하는 터였다. 더욱이 대형 버스에 가속도가 붙자 당장이라도 뒹굴거나 속도 조절이 안 돼 앞 차를 들이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머리가 쭈뼛쭈뼛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기도가 저절로 나오는 머나먼 길을 얼마나 달렸는지 모른다. 운전도 하지 않았던 나의 손엔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 이르렀는지는 정확히 기억 못 한다. 길 좌우로 쫙 펴진 웅장한 숲이 눈에 들어올 때 안도의 숨과 감사의 기도를 마음속으로 비로소 수없이 되뇌었다.


“운전하지 마라. 꿈자리 사나워.”

어느 날엔가 꿈자리 뒤숭숭하다고 시어머니께서 그날만큼은 운전하지 말라며 전화가 왔다. 가야 할 길이 멀기에 그런 경고를 우리는 무시하고 다시 출발했다. 잘 달리나 싶더니 바퀴가 터졌다. 두 번째였다.

처음은 펜실베이니아 게티즈버그 근처 비포장도로에서 타이어가 찢어져 하루를 캠핑하면서 수리를 했더랬다. 이번엔 켄터키 주에서 바퀴가 또 터졌다. 어쩌지 못하고 그곳에서 이틀을 하릴없이 우리는 머물렀다. 싸게 구입한 이런 차를 믿고 계속 여행을 해야 하는지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다른 대안이 없기에 이 차에 운명을 맡기고 우리는 다시 ‘출발’ 해야 했다. 언제 다시 또 터질지 모르는 네 바퀴에 네 식구가 운명을 걸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이 줄줄이 벌어지면서 우리 여행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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