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주 Apr 14. 2024

장애시민을 돕는 법

쉽게 "한마디 거들기!"

나는 한국을 방문하면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도 있고 나도 시내를 쉽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시청 근처에 머무른다. 특별한 스케줄이 없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뜬 나는 배가 고파 파워휠체어를 타고 고국의 냄새를 맡으며 시내 뒷골목을 신나게 달리며 뭘로 아침을 할까 여기저기 식당을 기웃댔다. 파워체어는 편하고 쉽게 돌아다닐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탱크처럼 크고 무거워 쉽게 여기저기 비장애인들이 드나드는 곳을 쉽게 드나들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입맛을 자극하는 메뉴가 쓰인 간판을 보고 신나게 달려가 보면 쪼금 높은 턱 때문에 포기를 하고 또 다른 곳으로 향하곤 했다. 시청 앞이면 우리나라의 가장 심장부가 아닌가. 그런데 여기를 가면 턱이 있고 저기를 가면 램프가 있지만 가파르고 들여다보면 들어갈 수 없게 식당 안이 좁은 곳이 많았다. 그래도 여기저기 최선을 다해 귀엽게 깔아놓은 램프를 보면 그것을 마련한 주인의 따뜻한 마음이 엿보인다. 마침 친구한테서 아침에 뭐 하냐고 묻는 전화가 왔다. 배가 고파 헤매고 있다고 하자 "시청 근처에 맛있는 식당들이 많아!"라고 한다. "맞아, 근데 휠체어를 타면 새롭게 열리는 세상을 경험할 수 있어"라며 크게 웃었다. 


호텔보다는 나는 사람들이 붐비는 길거리 식당에 가서 좀 더 한국스러운 음식을 먹고 싶어서 마치 가로세로 옷감 짜듯이 골목을 꾀며 돌아다녔다. 아직까지 휠체어가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없었지만 예전에 비해 램프를 설치한 곳이 많이 보이는 발전한 모습에 감명을 받으며 배고픈 줄 모르고 돌아다녔다. 정확한 수치의 데이터는 아니지만 한 10-15% 정도는 접근권이 보장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늘 우리는 "완벽함"까지는 아니라도 현재보다는 좀 더 빨리 "발전"하기를 원하겠지만 그 정도라도 램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재미있는 현상도 발견했다. 한국기업인지 아닌지 정확한 속내용을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일본기업으로 알려진 다이소는 역시 우리나라보다 그리 장애인 접근권이 발전하지 못한 일본과 마찬가지로 모두 계단이 있어 다이소 매장의 어느 한 곳도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장애인 접근권이 법으로 제정되어 있는 미국의 기업인 맥도널드와 애플매장은 미국으로 착각이 될 정도로 휠체어로 모두 다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도 한국에서 맥도널드에서 식사를 할 수는 없고 우리나라도 곧 다 그렇게 되겠지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LA의 한인타운도 당연히 미국법을 준수하기 때문에 접근권이 거의 다 가능하다. 요즘은 한인 업주들도 잘 알고 모든 장애인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주차장, 램프, 화장실등 접근권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한다. 하지만 가끔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되는 경영인들이 사업 관련 기준을 알고 그에 맞추어 사업을 하지만 1990년에 공표된 미국장애인법 (ADA: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의 세세한 부분까지 몰라서 가끔 부딪치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들쳐보지 않아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아는 법이 도우미 견의 공공시설 접근권이다. 법시행의 초창기였던 1990년 초중반에 도우미 견의 입장을 거절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한 번은 우리 대학의 시각장애인 한국 유학생이 부모님을 모시고 서부관광을 가려고 하자 도우미견을 관광버스에 태우지 못하게 막은 사건이 있었다. 그때 옥신각신 할 때 버스에 이미 타고 있었던 다른 승객이 "앞도 못 보는 사람이 무슨 관광이냐. 개 데리고 집에 가라"라고 외쳤다. 그 유학생은 결국 부모님과 여행을 갈 수가 없었고 얼마 후 여행사를 상대로 소송을 해서 승소했던 사건이 신문에 크게 게재되어 한인사회의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한 일 년 전쯤에 친구와 점심 약속을 하고 한 한인식당을 찾았다. 꽤 큰 규모의 식당이었기에 장애인 주차공간도 있었고 들어가는 입구도 편하게 되어 있어 나는 도우미견과 들어가 자리를 안내받기 위해 기다렸다. 여자 종업원이 나와서 개는 들이지 말라고 하는 식당주인의 정책이 있다며 거절했다. 일반적으로 나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모르는 것은 서로 대화를 통해서 나를 들어가게 해 주던지 아니면 내가 한발 물러나 나중에 관련자료를 보내주곤 하는 편을 택한다. 그런데 주인을 대신해 나온 남자 종업원이 가로막으며 너무도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언사로 개와 나를 쫓아냈다. 설명을 좀 하려고 해도 말꼬리를 잡는 그 친구와는 대화가 불가능했고 한국말로 하면 "개 끌고 꺼져"라며 조롱 섞인 영어를 구사했다. 그때 우리 옆을 지나 식당으로 들어가던 손님들은 남의 일이라 쳐다보지도 않고 들어갔다. 쫓겨난 나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고 얼마 후 식당 측과 협상을 통해 사건을 종결지었다. 보통 접근권으로 인한 고소는 5000 여불로 협상을 하니 그들도 나에게 그 수준을 제시했다. 나는 접근권의 문제가 아니라 차별의 문제로 소송을 했고 그들은 한참이 지나 그보다 훨씬 큰돈을 지불했고 이제는 식당 앞에는 커다랗게 "도우미 견 환영"이라는 문구를 부착했다.


작년에 한국에서도 식당출입을 거부당한 적이 있다. 그 식당은 램프가 설치되어 있어 가뿐히 휠체어로 들어가던 나를 종업원이 잡아 세우며 난색을 표했다. 점심시간에 휠체어와 보행기는 출입금지라는 것이다. 보행기도? 아니 왜? 손님이 많은 시간대에는 휠체어나 보행기가 자리를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란다. 그날은 작은 휠체어를 탔기에 큰 자리가 필요치 않다고 했다. 종업원을 무조건 안된다고 했다. 자리차지 때문이라니 나는 남보다 더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는다고 설명을 해도 듣지 않았다. 그 당시 출입을 금한다는 점심시간 대이긴 했지만 사람이 많지 않았다. 여기저기 4인용 테이블에 혼자 앉은 사람도 있어서 왜 저 사람은 혼자 4인용을 차지하느냐 저 사람도 옮기던지 내 쫒아야 하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했고, 내가 직접 의자 하나정도밖에 차지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겠다고도 했고, 체인점을 가진 본사의 운영지침인지도 물었다. 무슨 말에도 팔로 X자만 긋고 있었다. 그때 "기적"이 발생했다. 한 손님이 종업원에게 "자리도 많이 있는데 같이 먹죠"라고 스~윽 지나가며 속삭였다. 그 말에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앞을 가로막던 종업원이 옆으로 비켜서고 양쪽으로 늘어선 테이블 가운데로 길이 뻥뚫린 것이었다. 이번에는 진짜 한자리밖에 차지하지 않고 작은 테이블에 앉는 나를 보고 종업원이 놀라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많은 환경적 걸림돌을 마주해야 하고 "함께"라는 인식이 적은 사람들과 매 순간 부딪치며 살아야 한다. 물론 20년 전보다는 장애인의 목소리도 커졌고 환경적으로도 조금이나마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시민에게 큰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20여 년 전에 여행사와 자신의 입장으로 "앞도 못 보는데  주제에 무슨 관광"이라고 말하던 사람이나 못 보고 못 듣고 지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제는 "자리도 많은데 같이 먹자"라고 거드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것은 인식의 변화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에도 "함께" 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때는 "내"가 살아가는 것에 급급했다면 이제는 "남"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주는 사회가 됐다는 것이다. 장애인을 돕는 것이 장애인 복지시스템을 위해 정책의 변화를 만들고 교육권을 주장해 주고 뭐 그렇게 거창한 것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이 차별을 당하는 순간을 목격할 때 그냥 "한마디 거들어 주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을 바꾸는 근본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자리라도 더 많이 더 빨리 회전시켜야 먹고살 수 있는 생존권이 걸려있기 때문에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냥 옆에서 한마디 거듦으로써 주인의 따뜻한 감정을 솟아나게 하면 사실 한자리 더 내주어도 굶어 죽지 않고 오히려 각박한 생활속에서 자신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를 느끼는 힐링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SNS에 올라온 식당에서 거절당한 휠체어 장애인의 사례를 접했다. 그 친구의 경우 거절을 당할 때 한 손님이 "내가 다 먹었으니까 여기 자리에 앉게 해 주세요"하며 거든 한마디 때문에 식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SNS에 거절한 사례가 올라오면 그 식당이 어딘지를 끝까지 찾아내서 테러 수준의 댓글을 단다고 들었다. 물론 그렇게 "과격하게" 돕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을지 몰라도 지나가는 행인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혹독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님이라는 사실처럼 장애인이 처한 곤란한 상황에서 그저 따뜻하고 조용하게 거들어 주는 한마디 말이 주인의 마음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장애인과 함께 살기 캠페인으로 "한마디 거들기"를 하자고 하자 한 친구 왈 "당장 오늘부터!" 역시 정열의 나라 맞네! ㅎㅎ 정열의 나라보다 더 뜨겁고 더 빠른 행동으로 대응하는 민초들의 나라 대한민국! 나라를 바꾸는 일도 힘없어 보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을 모아 실천하는 우리나라! 장애인의 곤란한 상황에서 혼자 싸우게 두지 말고 백지장도 맞들면 낫듯이 슬쩍 거들며 건네는 한마디가 멀리 있는 법제도보다 더 실생활에 가깝게 함께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한마디 거들기" 캠페인에 오늘부터 동참합시다.


작가의 이전글 국제적 쌈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