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의 기능이 둔해져 정지됨"
어렸을 때 엄마는 나를 집에 두고 혼자 길게 외출을 해야 할 때면 내가 염려가 되어 이모나 고모집에 맡기고 갔다. 이유는 좀 황당했다. 두 살 터울로 층층이 있는 네 명의 오빠들은 밖에 나가 살다 5살이 되어 갑자기 나타난 내가 서먹하기도 하면서 내가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늘 엄마가 감싸고 돌기 때문에 샘이 났었다. 그래서 엄마는 엄마가 없는 기회의 날을 맞아 오빠들이 날 잔 심부름을 시키고 부려먹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엄마의 우려는 사실이었다. 한 번은 초등학생이었을 때 큰오빠는 나에게 배가 고프니 계란프라이를 만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성격이 초극세사 소심인 데다가 큰오빠를 무서워했기 때문에 내 의지대로 뭘 할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큰오빠는 특히 자기가 원하는 물의 온도, 음식의 간, 밥의 질고된 정도, 반찬 등등에 대해 깐깐하고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반드시 자기 입맛에 맞게 하라고 레시피를 읊어주고는 했다. "계란을 가져오고, 프라이팬을 레인지에 올리고, 기름을 한 수픈 넣고, 계란을 깨서 살포시 가운데에 흩어지지 않게 놓고..."라고 가장 못 미더워하는 날 부려먹기 위해서 자신만의 계란 프라이를 입으로 세세히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오빠가 지시대로 계란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계란을 꺼내놓고 프라이팬을 불위에 올려놓은 후 기름을 두르고… 계란을 깨 넣자 지그르르 하면서 하얗게 익기 시작한다. 맞는 걸까? 익는 모습과 소리는 지시사항에서 찾을 수 없었다.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드디어 계란의 노른자가 익어간다. 과거의 기억에 의하면 계란 프라이가 간이 있었는데... 이제 곧 소금을 뿌려야 할 듯한데 지시는 바로 그전 단계가 진짜 끝이었던지 더 이상의 지시사항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갈등했다. 소금을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큰 오빠는 원래 소금 간을 안 한 것을 좋아하는 것일까? 끝없이 갈등하는 사이에 내 다리의 마비처럼 내 머리에 마비증세가 뚜렷했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지시에 따르는 것이 옳고 그르다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계란이 곧 까맣게 숯덩이가 될 것 같아 무의식적으로 프라이팬을 불에서 내렸다. 아! 그러나 소금은... 어쩌지? 예쁜 접시에 담아 큰오빠에게 가져다주었다. 아! 그 이후에 야단을 맞은 내용은 내가 갈등하던 경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소금 넣는 것은 너무도 기본인데 머리가 없느냐는 말인 것 같았다. 야단을 맞은 그날 나는 소금을 마음대로 넣고 욕을 먹느냐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나를 보호할 것이라는 생각이었고 처음으로 머리가 두려움으로 하얗게 마비가 된 상태를 경험할 수 있었다. 다행하게 그 이후 나는 답답한 아이로 각인되어 큰오빠의 주문은 더 이상 없었다.
며칠 전 나보다 몇 년 앞서서 은퇴한 교수와 만났다. 그에게는 손녀가 있는데 미국사람답게 며느리의 허락이 없이는 아이에게 이렇게 저렇게 말을 하지 못한다며 아쉬움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번 본 기억에 의하면 아이가 매우 튼실했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당돌함 때문에 인상에 남았었다. 손녀가 잘 있느냐고 물었다. 유치원에 들어갔고 여러 가지 단체스포츠에 참여해 잘하고 있다고 했다. 사진도 보여주며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할머니였다. 그러던 중에 그 꼬마가 요즘은 처음 접하는 일이나 어려운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말을 스치듯 했다. 그건 내가 알던 아이가 아니었다. 능력 있던 그 아이는 부모의 너무 높은 기대에 부흥하지 못할 까봐 자신이 없는 것은 도전조차 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교사 직업병이 버럭 나오며 "그래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작은 실수의 경험을 통해서만 튼튼한 도전성을 갖게 된다"라고 외쳤다. 할머니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미국엄마들 (한국엄마들은 사실 더하다!) 절대로 아이의 실수나 실패를 허락하지 않는다며 잘할 때만 큰소리로 칭찬하고 축하하는 문화라고 했다. 어렸을 때 겪는 실수나 실패는 극복해 낼 수 있는 정도의 작은 것이며 그 해결책을 알고 있는 부모의 도움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좋은 학습의 기회가 된다. 반드시 어려서 작은 실패의 기회를 많이 겪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해결해 주는 것은 아이의 성장에 방해가 되고 오히려 수치심과 의존성이 키우게 된다. 옆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작은 단계로 조금씩 유도해 스스로 헤쳐나가게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실패의 기회를 통해 문제해결을 경험할 때 아이는 자신감이 생기고 그 성공기억들이 모여서 높은 자존감을 형성하게 된다.
기대치가 너무 높고 실수를 용서하지 않는 부모와 실패를 극복하는 길에 함께 해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학습된 무력감 (Learned Helplessness)"이 생겨 문제해결을 위한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바로 생각하는 능력에 마비가 생기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 더욱 무서운 방향으로 변질되기도 하는데 "무기화된 무능력 (Weaponized Incompetence)"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책임을 회피하거나 남에게 투사하여 주변사람들에게 핑계를 대기도 하고 남에게 의존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정신적 마비는 어려서부터 자녀의 수준에 맞는 실패의 기회를 통해 성공경험을 갖도록 해주는 것을 통해 예방할 수 있다. 바로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만 튼튼해질 수 있는 문제해결능력과 자존감은 특히 21세기에 가장 필요한 능력 중에 하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