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의 특징

먹고살기도 힘드신가요?

by 교주

미네소타에는 한 곳에서 모든 장애인 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참 좋은 기관이 있었다. 이름하여 모든 장애인에게 용기를 북돋게 하는 센터 (Courage Center)였다. 나는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 그곳을 찾았다. 한국에서 탁구를 좋아했고 교사시절 점심시간마다 다른 교사들과 함께 강당에서 땀을 쏟아내며 탁구를 쳤다. 그래서 유학을 떠나는 날 나는 영어사전보다도 더 소중한 탁구채를 가방에 넣고 왔다.


오빠가 농구선수였기에 탁수다음으로 관심이 가는 종목이 농구였다. 농구감독에게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내가 걷는 모습을 보고는 자원봉사가 아니라 선수를 하라며 바로 휠체어를 내어 주고 첫 레슨이 바로 시작됐다. 농구공을 골대의 링을 향해 던지면 된다고 했다. 아니면 백보드를 맞추라고 했다. 첫 시도로 공을 공중으로 힘껏 날렸다. 링을 맞고 튕겨 나왔다. 코치는 "타고났다"라고 호들갑을 떨며 그날로 나는 휠체어 농구선수가 되었다.


나에게는 생전처음 접한 스포츠였다. 궁금한 것이 많았다. 게임당 평균 점수도 궁금했고, 우리 농구팀인 "롤링 고퍼스 (땅다람쥐)"외에 얼마나 많은 농구팀이 있는지, 게임은 언제 하는지, 잘하는 선수가 누구인지... 나의 질문은 계속 됐다. 코치는 "곧 알게 될 거야"라고 했다. 얼마 되지 않아 "명예의 전당"에 추대된 한 휠체어 농구선수를 위한 헌액행사에 참석했다. 휠체어 농구에 내놓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내가 전혀 모르던 세상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그런 놀라움의 기회는 내가 새로운 스포츠에 참여하면서 점점 늘어났다. 휠체어 테니스를 가면 거기도 수십 년에 걸쳐 헌정된 챔피언들이 있다. 수영도, 장애인 스키대회에도 각각의 오랜 역사와 함께 챔피언들이 있었다. 물론 프로선수들과 챔피언을 지지할 수 있는 아마추어 선수들과 레크리에이션 중심으로 스포츠를 즐기는 저변층도 무척 넓었다. 당연히 각 종목마다 그 종목을 좋아하는 비장애 자원봉사자들이 넘쳐났다.


나는 궁금했다. 많은 프로선수들 중에 챔피언이 되는 그 한 사람! 거의 비슷한 수준인데도 챔피언만을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꼭 있게 마련이다. 운칠기삼? 기술은 30프로고 운이 70프로니 그날 운이 있는 사람일까? 꼭 맞지도 않지만 꼭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운"을 믿지 않는다. 연습량? 운보다는 조금 더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같이 과외를 하던 그룹의 한 친구가 어느 누구보다 공부에 열중했지만 그는 바닥을 헤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연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타고남?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가드너라는 다중지능이론을 주장하는 학자에 의하면 신체-운동 감각을 타고난 지능의 한 종류라 말했다. 그 예로 농구선수 마이클 조르단을 들며 운동감각 기능의 천재라 한다. 하지만 아마추어, 프로, 챔피언을 그냥 그 지능순으로 보긴 좀 무리가 있다. 타고난 그 모습대로 순서가 정해지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걸 다 모으는 것이다. 타고남에 연습을 많이 하고 그날 운이 팽배할 때 승리의 챔피언은 정해지는 것이라고... 아! 근데 그 생각만으론 나를 설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본 비운의 챔피언이 있다. 테니스의 레전드 "이반 렌들"이다. 그도 타고난 능력과 연습, 그리고 운도 많이 따랐기에 프랑스 오픈도 3회, US 오픈도 3번, 호주 오픈에서도 2번으로 한번 하기도 힘든 챔피언을 8번씩이나 해서 80년대의 테니스의 우상이었다. 그가 테니스에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었고 연습량도 어느 누구보다 많았다. 그리고 8번이나 승리의 여신이 그의 편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게임을 빠짐없이 찾아 시청을 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픔이 있었다. 프랑스 오픈이 흙으로 다진 클레이 코드를 사용하고 US오픈과 호주 오픈은 하드코트를 사용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19세기 후반 영국 버밍엄에서 푸른 잔디 위에서 흰 옷을 입고 공을 치는 모습은 현대 테니스의 기원이고 누구나 꿈꾸는 모습이다. 렌들도 바로 그 잔디코드를 사용하는 윔블던의 주인공이 되는 꿈이 있었다. 한 번은 그가 윔블던을 이길 수 있다면 다른 8개의 챔피언자리를 내주어도 좋다고 말을 할 정도로 굶주려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마지막 힘을 쏟아부어 윔블던의 주인공이 되고자 코치도 새로 바꾸고 한없이 연습에 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2회에 걸쳐 윔블던 대회 준우승에 그쳤다. 그의 전성기 후반 쪽에 한 인터뷰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왜 전혀 웃지를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면 챔피언이 될 수 없다. 챔피언이 되면 웃을 수 있다"라는 의미의 대답이 나를 놀라게 했다. 웃으면 집중이 흐트러질 수도 있긴 하니까 그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었다.


렌들이 모르는 게 있었다. 이겨야 한다는 강박과 잘해야 한다는 긴장감은 오히려 근육을 위축시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휠체어 농구팀이 전국대회를 앞두고 한 달 전부터 집중 훈련을 시작했었다. 한참 패스와 슈팅을 연습을 하고 전략에 따라 선수들의 위치와 움직임을 익혀도 모자랄 판에 감독은 선수들에게 몸을 이완시키기 위한 심리치료용 음악과 명상을 30분씩 시켰다. 장애인들이 놀이 삼아하는 경기라고 생각했는데 심각하게 대응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명상을 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 농구팀은 그해 전국 챔피언이 됐다. 상대팀은 일리노이주 대학 소속팀으로 늘 라이벌인 관계였다. 그 팀의 코치는 샤프하게 생기고 강한 리더십을 갖고 있었다. 그는 강한 리더십의 용장이었고 특수체육을 가르치는 교수로 휠체어 농구의 모든 기술과 전략을 꽤고 있는 지장이었다. 우리 팀의 코치는 퉁퉁하니 가끔 소리는 치지만 선수를 아끼고 나 같은 초짜 선수를 기용하는 넉넉한 덕장의 면목까지 갖춘 사람이었다. 싸움은 결국 덕장의 승리였다.


나는 그것을 "여유"라고 표현한다. 살기 바쁜데 무슨 여유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각박한 상황일수록 각박함을 벗어나게 하는 것은 쉬지 않고 일하는 근면함이나 끊임없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 위에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프로 중에 프로 삶의 "챔피언"이 되는 것이다.



힘들고 바쁜 와중에도 자녀들을 보고 윙크 한번 하거나 손하트를 날려보는 것도 여유를 보이는 척도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님 옆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눈인사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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