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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

네 보물은 뭐니?

by 교주

난 어렸을 때 소풍 가서 하는 보물 찾기를 참 좋아했다. 점심이 시작되며 아이들이 엄마가 정성스레 싸준 김밥을 열며 정신이 빠지기 시작하면 선생님들은 이리저리 구경하는 척 다니시며 구석구석에 뭔가를 숨기셨다. 선생님들은 값진 선물이 걸린 귀한 보물일수록 깊이 숨겨 놓으셨다. 어느 정도 배가 불러오고 뭔가 새로운 흥미를 찾아 눈을 돌릴 때 선생님이 큰소리로 "애들아! 보물찾기 시작!"하고 외치면 일제히 아이들이 흩어져 보물 찾기에 열을 올리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펼쳐진 소풍장소는 바닥이 평평하지 않아 나는 보물을 찾고 싶어도 다니기 쉽지 않은 데다가 보기 쉬운 곳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지 않았다. 나의 장애를 배려한 선생님은 감사하게도 친구들 몰래 보물 몇 장을 몰래 손에 쥐어주셨지만 사실 그 배려는 오히려 보물 찾기의 실질적인 재미를 빼았어 버렸다. 나는 항상 친구들과 어울려 재재거리며 보물을 찾는 재미가 얼마나 좋을까를 상상했었고 직접 찾아볼 수 있기를 갈망했었다.


보물 찾기의 또 다른 재미는 보물을 찾아다니는 일만큼이나 친구들과 삼삼오오 어울려 다니며 보물을 찾는 것인지 수다를 떠는 것인지 모르게 까르르 웃고 치고 뛰며 잡으러 다니며 노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손에 쥐어진 보물은 그런 재미를 포기하라는 의미로 여겨졌다. 보다 넓고 푸른 자연 속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친구들과의 시간을 못내 아쉬워했었지만 그래도 소풍을 더욱 의미 있고 기억에 남게 하는 보물찾기 때문에 또 다음 소풍을 기다리고는 했었다.


“똑똑똑…”

교무실 문을 열고 누가 기우뚱거리는 몸짓으로 들어섰다. 내가 1981년 유럽여행을 하고 나서 잡지에 기고한 기행문을 읽고 찾아왔단다. 장애 때문에 나와 똑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인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부모가 원하던 약사 직종이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아 힘들다는 갈등을 털어놓았다. 어려서부터 나도 엄마로부터 약사가 되라는 강요 아닌 강요를 받고도 그냥 내가 원하는 길을 택한 나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그 사람이 가진 사회복지사로서의 자질과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알려주고 그게 왜 그 사람에게 좋은 선택일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는 몇 달 후에 약방을 처분하고 사회복지사로 취업을 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사회복지사로서의 월급은 약사로 벌던 것의 10분에 1도 되지 않았지만 그는 처음으로 일하는 기쁨을 느끼며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밝게 웃었다. 부모의 강압으로 배회하다가 40이 넘어 사회복지학을 새로 공부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 사람은 “늙어서도 결국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난 행복한 사람이지요?”라며 행복해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는 보물 찾기에 대한 갈망을 잊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하고 특수교사가 되어 그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특수교사가 가져야 할 전문성의 첫 덕목이 바로 학생 개개인에 잠재되어 있는 "장점"을 찾아내는 일이 아닌가? 눈에 보이는 장애 뒤로 꽁꽁 숨겨진 그 사람 안에 보물을 찾아내는 일이 바로 내가 갈망하던 그것이었다. 선생님들이 값진 보상이 있는 보물일수록 더 찾기 어렵게 숨기셨듯이 쉽게 찾아내기 힘든 장애 뒤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는 일은 우리에게 더 값진 보상이 기다릴 것이 분명하다. 부모나 교사가 자녀가 힘들 것 같은 생각에 미리 준비한 것을 손에 쥐어 주려기 보다는 "네 보물은 뭐니?"하고 물고 대화하며 자녀 안에 숨겨진 보물을 함께 찾다 보면 보물 찾기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즐거울 뿐만 아니라 잠시 뒤에 큰 상을 받게 될 것이다. 특수교육에 몸담게 된 나는 이렇게 평생 보물 찾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은 2001년 7월 27일 미주 중앙일보 오피니언에 게재되었던 칼럼에서 일부 발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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