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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Feb 04. 2024

꿈과 욕망의 차이

나의 목표는?

오랜만에 서울에 온 김에 한껏 멋을 내 볼 요양으로 미용실을 찾아가 탈색과 염색을 하려고 원장님과 상담을 하던 중에 내가 요즘 한참 유행하는 에어랩을 사용하는데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러자 원장은 그것 때문에 많은 손님들이 머릿결이 나빠졌다며 미용실을 찾는다고 했다. 나는 바로 그 이유를 알고는 피식 웃었다. 작년에 나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에어랩이라는 것이 너무 좋다며 제자가 침을 마르게 설명하는 소리를 듣고 드라이기가 좋아야 얼마나 좋을까 하는 의심을 품은 채 구입을 해서 사용해 봤다. 선전에서 처럼 머리가 휘리릭 감기지는 않았지만 진짜로 한두 번 가져다 대었더니 그렇게 뻗치던 머리가 온순해지는 게 아닌가? 세상에 완전한 신문물에 빠져 매일 사용하기 시작했다. 얼마쯤 지나자 뭔가 부족해서 요기조기 스타일링을 하느라 긴 시간 동안 머리를 쓸어내렸지만 한두 번 만에 느꼈던 첫날의 느낌은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욕심을 내기 시작했고 맘에 들지 않아서 점점 더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하며 불평을 쏟아내던 내 모습을 보았다. 머리가 상하는 이유는 기계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결국 내 욕심 때문에 머릿결이 상하는지도 모르고 오래 사용한다는 것을 깨닫고 신문물을 욕하기보다는 적절히 사용해야 하는 마음을 배웠다.


욕심은 불교나 기독교에서 세상의 욕심이 모든 죄악과 번뇌와 혼탁의 근본이고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커져 사망에 이른다고 가르친다. 진여라는 사람이 부처님께 "사랑"이 뭐냐고 묻자 부처는 세가지의 사랑중에 "욕애"가 있는데 "욕"은 방종으로 감각적이고 집착된 마음이라고 설명을 하셨다. 그러니 "욕심"은 바로 "방종"이 우리의 "마음"에 더해진 상태인 것이다. 처음에는 욕심이 사람에게 즐거움을 맛보게 해 주지만 그것은 바로 불처럼 일어나 사물과 우리를 태우며 맹렬하게 활동을 개시한다는 것이다. 또한 욕심이 들어찬 악한 마음 때문에 우리는 살아 있어도 고통의 세계에 살게 되고 착한 일을 할 생각조차 못한다는 것이다. 욕심은 생각하지 않는 순간에 우리의 마음속에 불을 지피게 되고 우리는 불안과 불만등의 불행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William Clark,1826-1886)" 또는 "꿈을 크고 높게 가져라"라고 말한다. "꿈은 욕망이 아닌가? 학교와 사회에서 강조하는 꿈과 우리를 고통의 세계에 살게 하는 욕망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나는 선생이다 보니 학생들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이 아직 묻지 않은 것도 답을 찾아놔야 한다. 나는 좀 더 구체적으로 꿈과 욕심이 무엇이 다른지가 궁금해졌다.


나는 특수교사들에게 늘 강조를 하는 하나의 예가 있다. 비행기를 타면 승무원이 안전정보를 숙지시킨다. 그런데 그중에 나에게 놀라운 깨달음을 주는 것이 있다. 기내 기압에 이상이 있으면 선반에서 산소마스크가 내려오니까 끈을 당겨 코와 입을 커버해 고정하고 숨을 편히 쉬라는 안내방송 중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본인이 먼저 착용한 후 옆에 사람을 도와주세요"라는 말이 있다. 늘 바쁘기만 한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은 자녀를 돕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자신을 잃는 경우도 많다. 나는 학기 초에 늘 비행기 안전정보 책자를 보여주며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혼자서 살겠다고 남들의 산소마스크까지 다 빼앗아 자기 코에 대는 것은 이기심이고 나만 살겠다는 욕망이지만 내가 나를 먼저 잘 돌봐서 정신적, 육체적, 심리적으로 튼튼해야 좋은 선생님과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기에 자신을 먼저 돌보는 것은 남이 필요로 할 때 더 많은 시간을 써가며 도울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의 희생이 따르거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욕망이고 "남"과 "나"에게 해를 주지 않고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꿈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생리적 욕구, 안전함의 욕구, 소속감의 욕구, 존중받고 싶은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등 5가지의 욕구가 있다고 마슬로(Maslow's Hierarch of Needs)는 설명을 하는데 그 말은 맞기도 하지만 틀렸다. 인간의 욕구를 5가지로 정리한 것은 훌륭한 일이나 그것을 단계로 설명한 것은 틀린 점이다. 그에 의하면 아랫단계의 욕구가 먼저 해결되면 다음단계의 욕구가 생긴다고 보는 발달단계로 설명을 했지만 사실상 우리는 목숨을 걸고 배곯아 가면서도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우기도 하고 소속감이 없는 백수라 해도 존중받고 싶은 욕구와 자아실현을 위한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욕구는 5가지 "종류"이지 "단계"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인간의 이러한 "욕구"는 "욕망"과 비슷한 의미이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 둘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욕구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절대적인 필요함(Needs)이고 욕망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더욱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하는 인간의 끝없는 원함(Wants)이다. 마슬로도 "Needs"로 표현을 했다. 우리는 삶 속에서 필요함과 원함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꿈은 "필요함"을 원동력으로 하는 것이고 욕망은 "원함"에 뿌리를 두는 것이다.


나는 미네소타 대학에 유학중일 때 휠체어 농구선수로 발탁되어 2년 정도 팀에 소속된 적이 있었다. 첫날 코치를 만났고 그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나에게 공을 던져주며 농구코트 위로 올라 와 슛을 한번 해보라고 했다. 몇 번 던져도 골대에 공을 넣지 못하자 백보드에 그려진 네모의 귀퉁이를 맞추라고 코치를 해 주었다. 열심히 네모의 귀퉁이를 아무리 정확히 맞춰도 골대로는 들어가지 않고 공은 번번이 나에게 돌아왔다. 나보다 장애가 심한 선수들이 휠체어로 달리면서까지 여기저기 어디에서나 던진 공들은 마법처럼 골대로 빨려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서 나는 깨달았다. 네모의 귀퉁이도 바로 때리면 안 되고 나와 골대와의 사이에 어딘가 비스듬한 각도로 던져야 골대로 들어가고, 또 골대의 링을 바로 맞추어서는 안 되고 그 위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의 지점을 향해 던져야 공이 골대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욕망은 점수를 내기 위해 무조건 보이는 것을 향해 던지는 것이고 꿈은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각도나 허공을 향해 던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즉 욕망은 누구나 볼 수 있고 동경하는 것을 목표로 지향하는 것이고 꿈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은 그 무엇인가를 향해 있는 목표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부모찬스, 권력찬스등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재벌과 권력자들은 자녀에게 직장과 재산을 대물림한다. 에릭슨의 발달이론을 보면 청소년인 5단계에서 많은 혼돈과 역할에 대한 혼미함을 거치며 자아 정체감을  이루게 된다고 한다. 자아 정체성을 찾는 방법으로는 스스로 다양한 역할을 경험해 보는 방황의 시간을 거쳐 자아 정체성에 이르는 유예(Moratorium)라는 방법과 방황의 시간도 겪지 않고 다양한 역할을 경험해 보지 않은 채 부모의 정체성을 이어받는 폐쇄(Fourclosure)의 방법이 있다. 폐쇄의 방법은 부모가 강요하는 정체성을 갖는 경우도 있고 훌륭한 부모의 발자취를 본받겠다는 자녀 스스로의 강한 의지에 의해서도 일어는 경우도 있다. 내가 알고 지내던 동양화가의 대가인 분이 늦둥이 딸이 있었다. 그분의 그림은 강한 붓체와 화폭의 여백과 단순한 몇 개의 원색이 특징이다. 늦둥이 딸도 아빠의 재능을 타고나서 서너 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우리가 옆에서 아빠와 같은 파란색을 쓰라고 하면 당돌하게 "아니 그건 아빠 거, 나는 내 색을 쓸 거야"하고 말했었다. 이 아이처럼 폐쇄(Fourclosure) 안에서도 자신만의 독창성을 찾는 것이 올바른 정체성의 확립이라고 본다. 부모의 잘못된 강요나 세상의 많은 사람이 경쟁적으로 쫒는 단체적 목표는 욕망에 기초를 두고 있고 내가 좋아하고 나에게 의미가 있는 개인적 목표는 꿈이다.


꿈과 욕망의 또 다른 큰 차이는 목적을 이루는 과정이다. 욕망은 외부의 힘을 빌린다. 돈이 돈을 벌고 권력으로 남을 움직여 원하는 것을 취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고 남의 어려움에 눈을 감으며 기회를 포착해 쉽게 손에 쥐는 것은 욕망이다. 그에 비해 보이지 않는 나만의 꿈은 내가 주체가 되어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그 꿈으로 가는 길을 계획해야 하고 하루하루 땀을 흘려 한 단계씩 한 단계씩 어떻게 이루어 갈 것인지 단기 목표들을 세워야 한다. 또한 욕망은 수직적인 인간관계에서 명령에 의존해 움직이지만 꿈은 손에 손을 잡는 수평적 인간관계에서 서로 돕고 협력하여 꿈으로 다가간다. 꿈을 이루는 과정은 열정적이고 지속적이며 스스로의 토닥거림이 있어야 한다. 욕망의 끝에는 허무라는 것이 기다리지만 꿈은 그것이 현실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끝에는 "자아실현"이라는 정신적 행복감이 기다리는 것이다. 또한 욕망은 지식만으로도 채울 수 있지만 꿈은 지식과 기술 이외에 "지혜"가 함께 있어야 한다. 그 지혜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이 이루어가고 있는 변화를 알아보는 지혜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은 수용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아는 지혜"라고 1930년대 기독교 신학자인 라인홀트 니버 (Reinhold Niebuhr)의 기도구절이 말하듯이 꿈을 따라가는 동안에는 반드시 나의 용기로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의 차이를 알아보는 지혜가 중요하다. 조금씩 꿈으로 다가가며 변화된 차이를 보는 지혜가 없이는 꿈으로 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 꿈을 포기하거나 합리화 속에서 그 꿈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게 된다. 보이지 않는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계획을 세우고, 천천히 꾸준하게 나아가며, 우리가 만들어가는 차이를 알아보며 축하하는 뿌듯한 삶이 분명히 불평과 불만을 가져오는 욕망의 삶을 이긴다고 믿는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

When you have a dream, follow it.

When you catch the dream, nurture it.

When the dream comes true, celebrate it.

(작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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