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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Apr 21. 2020

9. 자기를 잘 표현할 수 있다면

찬희에게

45. 자기를 잘 표현할 수 있다면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에는 말과 글, 그리고 예술작품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 엄마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아.    

오래전 이것이 인생이다.’에 출연한 후 우먼센스라는 잡지사 기자가 취재하러 었어다. 질문을 통한 취재를 마치고 사진을 찍겠다고 해서 밖으로 나갔지. 마당 끝에 서서 눈 앞에 펼쳐진 들녘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기는 자세를 취하라는데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어색하기만 했어. 

팔과 다리는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고 표정은 어색함 그 자체였지. 계속 셔터를 누르며 좀 더 자연스러운 자세를 요구하는데 도무지 추억에 잠기는 모습을 연출할 수가 없는 거야. 그때의 당혹스러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너무나 오랫동안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을 억압당하며 살아온 세월이, 기뻐도 그 기쁨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하고 슬퍼도 그 슬픔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어렵게 해. 무엇보다 모델이나 CF 촬영하는 연기자들이 사진작가들의 요구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반응하는데 때로는 그 반응에서조차 뭘 나타내기 위함인지 잘 알지 못한다는 거야.    

가장 어려운 것이 옷 입는 것으로 엄마를 표현하는 것이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늘 다른 사람이 입던 옷을 물려 입어서 엄마가 직접 옷을 골라 입을 기회가 없었어. 그래서인지 엄마는 옷을 살 줄도 모르고 위아래를 조화 있게 입지도 못해. 젊어서는 아빠에게 옷 입을 줄도 모른다고 핀잔을 들었는데, 없던 옷 입는 감각이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닌가 봐.    

외할머니는 그런 나를 못마땅해하셨어. 젊은 나이에 남들 다 입는 제대로 된 옷 한 벌 사 입을 줄 모르고 화장도 할 줄 모르냐고 역정을 내셨지. 3일 굶은 것은 몰라도 행색이 초라하면 가난이 뒤 꼭지에 따라다닌다고 화장하고 옷을 갖추어 입은 다음 외출하기를 바라셨어. 결혼하고도 겨우 밥 먹고 사는 살림에 엄마 옷을 사 입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 했지. 이모 결혼식에도 오빠를 업고 가야 해서 청바지에 티 입고 갔다가 옷을 그렇게 입고 왔다고 혼났지.     

꼭 비싼 옷을 사 입어야 품위 있어 보이는 것은 아니야. 엄마가 돌보는 아이 중에 세월이는 옷을 참 잘 입는 것 같아. 용돈을 충분히 주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시장에서 옷을 사 입어야 하는데 인터넷에서 용케도 자기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찾아내서 사 입는 거야. 가정과 같은 환경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회복지시설이잖아. 부모 마음으로 관심을 기울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부족함이 있을 텐데 전혀 그런 티 없이 단정하고 밝은 모습이 다행이다 싶어.    

또 하나 다행인 것은 네가 엄마를 닮지 않았다는 거야. 어려서부터 화장하는 것에 관심이 많더니 화장도 잘하고 머리 스타일이나 옷 입는 것, 모두 감각 있게 연출을 잘하는 것 같아 다행이야. 엄마는 애당초 미적 감각이 없어 옷 입는 것이나 머리 스타일로 엄마를 표현하는 것은 물 건너갔으니 말하는 것이나 글 쓰는 것으로 대신해야 할 것 같아.     

많은 사람이 남을 의식하며 살아가지. 남을 의식하며 산다는 표현보다는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간다는 표현이 더 맞을 거야. 지나치게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것도 문제지만 전혀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해. 너는 지금처럼 마음속의 느낌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또 다른 사람의 표현을 잘 읽어 주고 공감해주며 살아가기를 바랄게.

-무조건 너를 지지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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