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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길 조경희 Apr 21. 2020

10. 희망의 씨앗 하나
     남기고 싶어

찬희에게

10. 희망의 씨앗 하나 남기고 싶어    

사람들은 왔다 간 흔적을 남기지. 완전범죄를 꿈꾸는 사람들도 그 자리에 뭔가는 남기게 마련인 것을 보면 의도와는 상관없이 무엇인가 흔적을 남기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 같아.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가면 붙어 있는 문구야. 화장실을 깨끗하게 관리하기 위해 뒤처리를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써 놓은 글귀가 오늘은 다르게 다가온다. 내가 떠난 자리에는 무엇이 남겨질까?. 잠시 머물다 간 자리는 물론, 한 세상 살다 저세상으로 갈 때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가야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될까를 생각해 본다.     

예전의 초등학교 화장실에 가면 하얀 벽에 누구를 욕하는 글이나 사랑을 고백하는 글을 연필로 꾹꾹 눌러써 놓은 것이 많았어. 안에 쌓인 감정을 그렇게라도 풀어내야 숨 쉴 수 있으니까 아무도 모르게 배설물을 배출하듯 내 안의 감정도 토해냈는지도 모르지만 보는 사람은 기분이 좋지 않았어. 지금도 공중 화장실은 물론이고 관광지에 가면 나무나 돌에 이름을 새겨 놓는다든지 이니셜을 새겨 놓은 것이 있어. 새기는 사람은 어떤 의미를 남기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보는 사람은 눈살을 찌푸리게 되지.     

또 여름이면 집 앞 냇가에 사람들이 놀러 와서는 물고기를 잡아 어죽을 끓여 먹거나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이 있잖아.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영락없이 각종 음식물 쓰레기가 비닐봉지에 담겨 풀숲에 나뒹굴거나 기분 좋게 마셨을 술병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거야. 우리 아이들이 냇가에 가서 물고기도 잡고 노는데 물이 오염되고 다칠까 봐 아빠가 치우거나 엄마가 치우지만 자기 집은 이렇게 하지 않을 거야라며 메너 없는 인간들이라고 욕을 하며 치우게 되더라.    

이렇게 잠시 머물다 간 자리도 남긴 흔적에 따라 그 사람이 평가되는데 우리가 생을 마치고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될 때는 더욱 그런 것 같아. 장례를 모시고 나면 가족들은 물론 지인들도 그 사람에 대하여 추억하고 아쉬워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잖아. 

엄마가 ‘이것이 인생이다’에 출연했었다고 하면 다들 극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이야기로 방송에 나온 줄 알더라. 그런데 아니야. 엄마에게 희망을 전해 준 고인석이라는 사람을 위하여 방송 출연을 결심했어. 그분은 초등학교 6학년 때 ‘근육위축증’이라는 희귀병을 진단받았다고 해. 근육이 서서히 죽어가는 병인데 많이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거야.     

전라남도 흑산면 영산도라는 작은 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치료도 받아보지 못하고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갔거든. 엄마와는 펜팔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한 번도 만나지는 못했지만, 엄마를 무조건 지지하고 응원했지. 신춘문예에 입선한 작가로 글을 무척 잘 썼는데 엄마에게도 글을 써보라고 했어. 엄마의 삶이 수필이라고 하면서 말이야. 엄마가 얼마나 좋았겠니? 

그런데 엄마가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를 보는 날 그분은 하늘나라로 갔고 너무 안타까워 《좋은 생각》 ‘그러나 수기’에 글을 보냈는데 책에 실린 거야. 그것을 방송작가가 보고 수소문을 해서 엄마를 찾았고 엄마는 한 사람이 이름도 빛도 없이 세상에 왔다 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방송 출연에 응했던 거였어. 

 엄마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고인석’이라는 분이 엄마의 가슴에 심어 놓은 희망의 씨앗이 싹이 나고 잎이 나서 열매를 맺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거야. 엄마도 누군가에게 희망의 씨앗이었으면 좋겠다. 그 누군가가 너라면 더욱 좋을 것 같아. 그럼 엄마는 이 세상에 희망의 씨앗 하나 남기고 가는 거니까.

-무조건 너를 지지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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