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게
소리야, 사람은 참 신기한 존재야. 같은 하루를 살아도, 같은 일을 겪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 가지. 그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생각’이 있어. 그리고 그 생각을 가장 조용하고 깊이 있게 바꿔주는 게 바로 ‘책’이란다.
책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마음속을 천천히 걸어가는 일이야. 작가가 느낀 기쁨, 두려움, 용기, 슬픔을 네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느끼는 거지. 엄마는 초등학생이던 시절에는 주변에 책이 많지 않았어. 도서관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이용하는지도 몰랐지. 놀잇감도 많지 않고 읽을 책도 별로 없어 뭐든지 글자로 된 것들은 읽었던 것 같아. 그중에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것은 '에드거 엘런 포'가 쓴 [검은 고양이]라는 책이야. 실수로 아내를 죽이고 벽 안에 묻어버리는데 한때 자신이 애지중지한 고양이를 함께 가둬버리는 바람에 사람들에게 발각된다는 이야기야. 그 이야기를 읽고 며칠 동안 잠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던 기억이 나. 50년이 더 지난 이야기인데 지금도 소름이 돋을 만큼 충격적이었던 것 같아. 그때 알았어 엄마는 마음이 여리고 약해서 공포나 추리소설 같은 책을 읽으면 그 여운이 길게 남아 힘들다는 것을 말이야. 그때 이후로 엄마는 공포나 추리소설은 물론 공포영화도 보지 않게 되었어. 이처럼 책은 나를 알아가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해.
엄마는 소리가 책을 가까이하고 즐겨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밤마다 동화책과 역사책을 읽어주었어. 너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좋아했지. 그런데 언제까지 엄마가 책을 읽어줄 수는 없잖아. 한글을 배우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스스로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한 거야. 조금씩 스스로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기는 한데 만화책 중심으로 읽어서 또 걱정을 하게 돼. 엄마라는 존재는 늘 그런가 봐 엄마가 생각하는 바른 습관을 가지고 열심히 책도 읽고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글로 써보며 생각을 확장해 가는 것에 대한 욕심이 있나 봐. 너만의 방법과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에 다그치게 돼. 그래도 왜 자꾸 텍스트만 있는 책을 읽는 연습을 하라고 하는지, 내가 관심이 가고 재미를 느끼는 책을 읽으면 안 되는지 조목조목 따지는 너를 보며 어른들의 말에 무조건 맹종했던 엄마와 다른 모습에 감사한단다.
책은 작은 씨앗과 같아. 성경에도 나오잖아. 한 알의 씨앗이 옥토에 떨어지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얻는다고 말이야.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당장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야. 작은 씨앗이 어느 날 갑자기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지 않는 것처럼 책을 읽고 알게 된 정보와 지식이 네 안에서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해. 그 후에 비로소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와 지혜로 열매를 맺게 되는 거지.
사람은 경험한 만큼만 말하고 행동해. 하지만 우리가 직접 겪을 수 있는 일은 너무나 한정돼 있어. 책은 네가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 살아보지 못한 인생,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대신 경험하게 해 줘. 책을 통해 수십 년 전의 역사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나라의 삶도, 내 옆 친구의 아픔도 내 일처럼 느껴볼 수 있는 거야.
엄마는 소리가 책 속에서 길을 찾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 정답을 말해주는 책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게 해주는 책, “왜 그럴까?”, “나는 어떻게 할까?” 하고 스스로 묻고 답해보게 만드는 책들 말이야. 그런 책들이 너를 더 단단하고, 더 깊은 사람으로 자라게 해 줄 거라고 믿어.
혹시 책이 어렵고 재미없게 느껴질 수도 있어. 괜찮아. 그럴 땐 억지로 읽으려 하지 말고, 정말 궁금한 게 생겼을 때 책 속에서 그 답을 찾아봐. 아니면 그냥 재미로 읽어도 돼. 만화책이든, 이야기책이든, 읽는 행위 자체가 이미 너의 마음을 열고 있는 거니까. 이제는 엄마의 욕심을 내려놓고 만화책만 읽는다고 잔소리하지 않을 거야.
엄마는 힘들 때마다 책을 찾았고, 외로울 때마다 책을 읽었고, 지금까지도 책을 통해 위로받고 아이디어와 지혜를 얻고 있어. 책은 그렇게 사람을 바꿔. 아주 조용하고 느리게 하지만 분명하게, 그런 책이 너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야.
소리를 사랑하는 엄마가
2025.6.14(토)
함께 생각해볼 질문 3가지
1. 내가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뭐야? 그 이유는 무엇일까?
2. 책을 읽다가 궁금해진 점이나 스스로 한 질문이 있다면 어떤 게 있었어?
3. 책은 작은 씨앗과 같다고 했는데, 나는 책을 읽으며 내 안에서 어떤 씨앗이 자라고 있다고 느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