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말씀

말씀 안에서 크는 품 밖의 아이들

by 나길 조경희


저는 목사도 신학자도 아니고 지극히 평범한 평신도에요.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가를 증명하라면 증명할 수도 없어요. 무신론자에서 기독교 변증가가 된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에서 기독교의 관점은 자기가 인생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인 자신의 희망과 갈망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고 해요. 저도 기독교를 변증 할만한 지식도 능력도 없지만 저에게 희망이 되고 삶의 의미가 되었던 신앙, 그 신앙이 제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고열로 신음하는 저를 방에 홀로 두고 가족들은 모두 읍내에서 하는 삼촌 결혼식에 갔어요. 병원도 약국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전라남도의 두메산골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자연 치유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지요. 체온계가 없었으니 체온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어느 정도 위험했는지 알 수는 없고요. 병명도 볼이 퉁퉁 부었고 목이 아프며 열이 많이 나서 먹지도 못하고 끙끙 앓았던 것으로 볼거리가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이에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엄마를 찾았어요. 저는 겨우 “엄마 삼촌 결혼식에 가셨어요”라고 집안에 어른이 안 계심을 알렸는데 그분은 문을 열고 들어오셨어요. 여덟 살 때부터 엄마 손에 이끌려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었어요. 목사님은 저를 보시고 “열이 많이 나는구나.” 하시더니 이마에 손을 얻고 기도해주셨어요. 기도를 받고 저는 잠이 들었어요.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가족들이 모두 돌아와 있었고 저는 땀을 흠뻑 흘리고 잠을 잤으며 열이 내리고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어요. 처음으로 하나님을 경험한 사건이에요.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누가복음 8장 43~44절)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저에게는 그만한 믿음이 없었어요. 그런 저에게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셨던 거예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장 1~2절)


아브라함은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함께 친척 본토 아버지의 집을 떠났지만 저는 공부가 하고 싶어서 제 생각대로 열일곱 살 여학생의 신분으로 친척 본토 아버지의 집을 떠나 서울로 갔어요.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여 실행한 다음 그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하는 서울에서의 삶은 참으로 힘들고 외로웠지요.


그때 384장 ‘나의 갈길 다 가도록(디모데후서 4장 7절)’과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시편 119편 54절 말씀)’ 찬송을 울며 부르고 위로를 받아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어요. 그렇게 4년을 보내고 저 혼자의 힘으로 살아낼 수 없는 세상이 싫어 결혼이라는 도피처를 선택했어요. 그곳에는 평강과 기쁨과 행복이 있을 줄 알았지요. 이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닌 저의 선택이었는데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철저하게 낮아지는 훈련을 받은 후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움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은 그곳에서 철저하게 저를 낮추셨어요.

결혼 전 지금의 남편을 만나 처음으로 제가 다니는 ‘대방 교회’에 갔을 때 주어진 말씀이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은 오래 참고’로 시작된 말씀이었어요. 두 세번의 만남을 통해 그가 결핵환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썩어지는 밀알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결혼하여 살면서 화가 나면 욕을 하고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을 경험하며 이불 속에서 몰래 울면서도 썩어지는 밀알이 되겠다고 했으니 저는 완전히 썩어 없어져야 했어요. 그러면 그에게서 싹이 나고 잎이 나서 열매가 맺을 줄 알았지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장 24절)


저는 분명 남편을 위해 썩어지는 밀알이 되었는데 정작 변화된 것은 남편이 아닌 제 자신이었어요. 제 자신은 썩어 없어지고 그 자리에 그리스도가 있을 때 싹이 나고 잎이 나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아플만큼 아픈 후에 깨달았어요. 남편은 저를 다듬기 위해 하나님이 붙여주신 축복의 사람이었던 거예요. 남편이 아니었다면 지금 저는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을 것이고 편안함에 안주하여 제 영혼이 병들어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을 거예요. 끊임없이 자극하고 도전하게 만드는 남편이 있어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을 배웠으니까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 누가복음 6장 38절)


가난한 부모를 만나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내 자식만큼은 돈이 없어,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살았어요. 그런 저를 향해 남편은 ‘돈을 구워 먹을래? 삶아 먹을래?’하며 돈, 돈, 돈 한다고 나무랐지만, 쌀독에 쌀이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망설임 없이 집에 있는 것을 나누는 남편을 오히려 못마땅하게 생각했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주택과 어린이집을 짓고 준공이 난 후 저는 또 망설였어요. 가정위탁으로 네 살 때부터 키우던 형제가 여덟 살이 되지 ‘원 가정’으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말에 준비되지 않은 곳으로 보내면 그동안의 수고가 물거품이 될 것 같아 조금 더 성장한 후에 보내는 방법을 찾다가 ‘공동생활가정’을 하면 조금 더 장기적으로 돌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준비했어요. 주택도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넓이와 구조로 지었는데 겸직할 수 없다는 말에 잠시 고민에 빠진 거예요.

461장 찬송 ‘십자가를 질 수 있나(마태복음 20장 22절)’를 부르며 눈물 흘리고 십자가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제가 돈 앞에서 주춤거리며 망설이는 참으로 나약한 인간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어요.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님이자 ‘엑스포지 멘터리’ 시리즈를 출간한 송병현 교수님의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내가 할 일이다.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일이라면 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 공동생활 가정과 어린이집 운영,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제가 위탁해서 키우던 형제는 제가 아니면 돌봐줄 사람이 없는 아이이고 어린이집은 다른 사람이 운영하면 될 일이니까요.


룻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시하는 아랍의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평범한 여인이예요. 그것도 결혼하여 아이를 낳기도 전에 남편이 죽은 청상과부를 하나님은 돌보셨어요.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는 일상을 통해 룻의 삶을 인도하셨고 룻은 예수님의 족보에 오른 여인 중 한 사람이 되었어요. 그것은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불쌍히 여기고 친정으로 가도 된다고 하는 시어머니를 붙쫓아 이스라엘로 와서 잘 섬긴 결과 축복의 통로가 되었어요.

저의 삶 또한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저와 동행하셨고 저의 삶을 인도하셨어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편 105절)


저의 신앙은 말씀이고 말씀은 저의 삶이예요. 돈도 없고, 인맥도 없고, 지식과 능력도 없는 저에게 말씀은 저의 생명을 살리는 동아줄이 되었고 힘과 능력과 지혜가 되었어요. 말씀은 제 발의 등이요 제 길의 빛이며 제 삶을 인도하는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예요. 이 책을 읽는 모든 분에게도 저와 같은 은혜가 주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