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극 아이(I) 성향이다. 대중이 모이는 곳이나 SNS가 불편하다. 게다가 귀차니즘 최강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해야 하는 일에는 엄청난 지구력과 꾸준함을 보인다. 둘째가면 서러울 정도다. 자칭 성실녀다. 어쩌면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변형적 게으르니즘일 수 있다.
이십여 년 전이다. 블로그가 막 꿈틀거리던 그때, 궁금해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근데 문제는 이후였다. 내가 쓴 글이 메인 검색라인에 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글을 잘 썼다기 보다 시의성을 잘 탄 테마였다. 그때 반응은? 깜짝 놀라 블로그를 내렸다. 시끄러운 게 질색이었다. 혹여나 오래 전 인연들이 만나자고 달려들면 그것도 피곤할 터였다. 물론 나 역시, 유명해져서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것을 마다하진 않는다. 그저 그 과정이 힘들고 지칠 뿐이다. 비약적인 예지만 죽음보다 무서운 건, 죽음까지 가는 과정인 것처럼. 나는 이후 내 안에서 스스로 충만하게, 내 일을 충실하게 하자고 위로했다.
그는 상황에 따른 마음 없는 위로와 말들에 대해 애초에 관심도 없다. 물론 내면의 진정성과 정직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진 않다. 그저 귀찮아서 덤덤하고 냉소적으로 행동할 뿐이다. 나에게도 약간 그런 면이 있다. 가끔은 그런 내 자신이 부유하는 생물처럼 느껴진다. 자발적 이방인쯤이라고 자위한다.
하지만 뫼르소처럼 우연히 휩쓸린 사건 때문에 사형수로 죽어야 하는 순간에도 끝까지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는 좀 글쎄올시다,이다. 아마도 그 시점에는 나를 보호하고자, 없는 끈기도 발동할 것 같다. 사형장의 재물은 아무래도 쉬운 테마는 아니니까. 사람들은 감옥에 있는 뫼르소에게 '뉘우친다는 말을 하라'고 은근히 다그친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귀찮다고 여긴다'고 답한다. 결국 유죄선고를 받는다. 그는 철저히 사회의 외톨이고 이방인이지만, 그것도 나름 의미있다 여기고 받아들인다.
"나는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비워버리기라도 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이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p153"
부화뇌동해 열정적으로 글을 올린 적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치적, 철학적 성향이 안맞은 인간들에 치여 피로감이 덮쳐왔다. 그런 이유로 인해 배터리가 방전되는 건 막고 싶었다.
게다가 댓글을 주목하게 되고, '좋아요'에 집착하는 이상한 현상에 돌연 불안해졌다.
사실 인스타그램도 출판사에서 작가의 홍보력을 강조하는 통에 울며겨자먹기로 시작했다. 그나마 지금까지 근 몇 년간 유지하는 인터넷 사랑방이다. 그리고 꽤 재밌다.
사실 브런치는 오래전부터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당시 내 마음을 확 끌진 않았다. SNS의 상술에 지쳐가던 중이었다.
오래도록 방치수준으로 내버려두었다. 게다가 멀티가 안 되는 나로서는 한 가지만 해야 했다. 결국 인스타에 올인했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른 몇 달 전, 우여곡절 끝에 브런치에 다시 복귀했다. 어라, 생각보다 내 성향과 맞았다. 글을 쓰는 공간이고, 누구를 의식할 필요도 없다는 부분적 익명성이 한 몫 했다. 참 이상했다. 점점 내가 사회 적응자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나이 덕분이라고 해두자.
여튼 내 글을 공개하고, 자연스럽게 익명의 독자들과도 소통이 자연스러웠다. 몇 년 전부터 해온 마음훈련이 확실히 성과를 본 것인지, 아니면 내 내면의 알지 못했던 외향성이 눈을 뜬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숨죽인 관종적 기질이 내 안에 있었는지도. 앞으로 책 신간이 나오게 된다면 아주 열띠게 내 자신을 PR해야 한다는 결의까지 생길 정도다.
다시 시작한 브런치는 나에게
허가된 일기장 같았다.
소소한 하루의 삶을 누가 보든 안보든 솔직하게 털어놓자, 였다. 야심차게 브런치북 몇 개 구성하고 틈틈이 일상을 쌓아올렸다. 이 공간은 고요한 듯 싶지만, 제법 손님이 들끊는 카페 같았다. 누군가 다가와 라이크를 눌러주는 정성에 묘한 위로가 되었다. 타인의 글을 읽으며 '사힐(사소한 힐링)'이 되었고,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정신근육이 단단해진 나는 남의 칭찬이나 비난에 그리 팔랑거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준다고 생각하니 없던 책임감도 생겨났다.
브런치에 대필작가로서의 삶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보시다시피 '유령작가도 작가다'.
작가의 책이 읽히려면 주제와 제목이라는
원투 펀치를 잘 날려야 한다.
문맹률이 나아지면서 세상은 글쓰는 사람 천지가 되었다. 글의 홍수다. 내 글이 간택되려면 호기심과 관심을 끌 제목과 테마가 절실하다. 거기에 문장력이 추가된다면 삼라만상을 지배하게 된다. 내가 이렇듯 독자의 시선을 주목하게 된 것은 내면의 일취월장(日就月將)이 이뤄낸 성과다.
대필작가는 수면 위로 드러나진 않지만,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요술처럼 글을 만들어내는 연금술사다.
그냥 글을 잘 써선 안된다. 부단히 읽고, 사유하고, 써서 고수의 능선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어쩌면 대필작가의 삶은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황혼 무렵에야 날개짓을 한다. 일이 다 끝난 다음에서야 의뢰자의 영혼을 간파할 수도 있으니까.
대필작가는 인성(人性)과 필성(筆性)이 요구된다. 일단 까다로운 대필 의뢰자의 눈에 들어야 한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의뢰자의 신뢰를 거머쥐고 출발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나의 책을 맡긴다는 것은 어지간한 검증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힘들다.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례까지 치르는 작업이니 대필작가의 세계는 거장(巨匠)의 범주다.
나는 독일에서 N잡러의 삶을 살아간다.
말 그대로 다양한 일을 한다는 의미다.
'열 가지 재주 있는 광대가 저녁밥을 굶는다'는 말이 있다. 내가 딱 그런 사람이다. 저녁밥까진 굶진 않아도 풍요와는 거리가 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소하게 불러주는 데는 많은 편이다. 나름대로 먹고는 산다. 남편은 동분서주하는 나에게 '당신은 인덕이 많아. 사람들이 참 좋아하는 스타일 같아'라고 덕담을 던진다.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그저 오늘을 견디며 노력하는 터에 틈틈이 귀인이 다가오는 정도다. 열심히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할 일을 묵묵히 하다보면 사람들이 함께 가자고 손을 내민다.
나는 어떤 일을 하다가 연결고리가 생기면 열정적으로 뛰어들곤 했다. 그러다보면 또다른 길이 생기고 그속에서 의미를 찾았다. 의미 없는 인생은 없다. 그래서 부딪히는 인연도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 나의 지론이다. 인생이라는 파도에 몸을 맡기며 자연스레 곡예하듯 움직이는 것이다. 파도에 넘어질 때도 있지만, 그때는 주저없이 결단하고,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대필작가의 이야기는 내세울 것도 없지만, 나만 알기 아까운 그들의 속살 같은 이야기를 지상으로 끌어올리고 싶었다.
그래서 대필 의뢰자와 작업이 끝나면 일적으로는 이별이지만, 문장의 여운이 되어 서로에게 남는다. 영혼 깊숙이 흔적을 남기는 작업이다. 텍스트는 서로에게 살아남아 회자된다.
전문적인 대필작가로서 명성은 떨치지 못했지만, 알음알음 의뢰자의 목소리가 책이 되어 나올 때 무한 자부심을 느낀다. 오히려 내 개인적인 책 출간 때보다 감동의 물결은 거세다. 의뢰자와의 부드러운 연대의 결과다. 대필이 생계를 위한 잡문이라고 비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에게 칭찬듣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의뢰자에게 호평을 받으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1차 독자는 의뢰자다.
그가 바라고 말하고자 하는 욕구를 잘 담아내면 된다. 그 다음이 대중의 몫이지만, 먼저는 의뢰자다. 나는 그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충실한 협력자니까.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대필을 하면서 느낀 점은 마음이 한없이 가난해진다는 것. 때론 부러워서, 때론 그들 인생이 서글퍼서...
결과는 어떤가. 천국의 마음을 소유한 자처럼 부유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P.s
한국대필작가협회 홈페이지에 제 글이 올라갔습니다. 부족한 글인데 제 글이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먹고 사는 일이 많아 뜸하게 글을 올렸어요.
앞으로는 시간 잘 지키겠슴다. 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