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낡은 지하서고에서의 인터뷰(1)

당신의 인생을 인터뷰합니다

by 연강작가

7년 전 쯤이었습니다.

어느 한인 부부가 식사 초대를 했어요. 집은 제가 사는 도시에서 부유층이 산다는 지역에 위치해 있었어요.

초인종을 누르자 자그마한 철문이 철커덕 소리를 내며 열렸어요.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안으로 들어갔어요. 밖의 풍경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오는 거실 통유리가 반짝반짝 빛이 났어요. 안주인의 바지런함을 여실히 보여주었죠.


주인의 안내로 식탁에 앉았습니다. 부부만 사는지 테이블은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6명 정도는 족히 앉을 수 있는 고급스런 마호가니 가구였어요. 슬쩍 부엌쪽을 보았는데 안주인의 뒷모습이 보였어요. 편안한 원피스에 프릴 달린 앞치마를 입고 정갈하게 머리를 묶은 뒷모습은 차분한 황혼의 여유가 느껴졌습니다. 언뜻 보니 오븐, 냉장고를 포함해 모두 고급브랜드인 밀레 회사 제품이더군요. 이 댁의 경제적 수준을 감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식탁 위에는 핑크빛이 감도는 싱싱한 연어회와 불고기, 잡채와 두부전, 닭강정이 놓여 있었어요.

안주인이 요리를 직접 했다고 하는데, 평소에도 홈파티를 자주 한 흔적이 느껴졌어요. 음식과 함께 데코레이션이 고급스러웠죠. 연어회를 담은 빌레로이 앤 보흐(Villeroy & Boch) 그릇은 식탁 옆 그릇장에서 꺼내온 것 같았어요. 그릇장의 투명한 유리 너머로 크리스탈 잔과 고급브랜드 그릇이 놓여 있었어요. 아마 그곳에서 꺼내어 사용한 듯 싶었어요. 사실 전 평소에 세세하게 주변을 관찰하는 편이 아닌데, 한창 그때 그릇에 관심이 가던 때였거든요.

간단한 날씨 인사를 시작으로 안부를 주고받았어요. 주인장은 그간 암수술을 한 후 삶의 마지막이 멀지 않았다고 실감했대요.


"수술하러 가기 전에 유서를 썼어요. 의사가 수술하기 전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라고 하더군요. 덴마크로 이사간 딸과 영국에서 중견기업의 임원으로 일하던 아들이 제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였습니다. "


순간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아이들 어릴 때처럼, 온 가족이 호수로 하루 소풍을 갔어요. 딸아이가 사진을 많이 찍어줬는데, 수술 후 나중에 퇴원해서 집에 오니 이렇게 딸이 사진첩을 만들어놨더군요."

그는 사진첩을 내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사진첩의 첫 장을 넘기자,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어요. 옆에 앉은 주인장의 아내가 눈치를 줬습니다.


"여보, 선생님 식사하도록 나중에 말씀하시죠."


"괜찮습니다. 천천히 먹으면 되요."


나는 연어 한 조각을 와사비에 살짝 얹었습니다. 와사비의 톡 쏘는 향취가 입 안에 번졌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눈길을 사진첩에 돌렸어요. 꽤 두꺼운 책처럼 만든 사진첩 속에는 행복한 가족의 풍경이 이야기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그 순간을 오롯이 즐기며 한때를 보낸 흔적이 역력했어요.


"저는 그렇게 소풍을 다녀온 후 행복한 기운으로 수술을 잘 마친 것 같아요. 그래서 보시다시피 이렇게 건강도 회복되었답니다."

"고생 많이 하셨어요. 이제 좋을 일만 남았겠군요."

"그날 하루 저는 제 삶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너무 바쁘게만 살아와 제대로 누리지를 못했답니다.
이제 매일 그날의 소풍처럼 살고 싶어졌어요."


주인장은 건강을 자부하며 살아왔던 자신도 이제는 저물어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어요.

젊은 나이에 독일에 와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초로의 언덕에 서 있는 자신이 있더랍니다. 이제 어느 정도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질병은 어느새 또아리를 틀고 세월과 함께 기생하고 있었던 것이죠. 갑자기 피곤해진 몸 때문에 정기검사차 들른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았다고 해요.




산해진미로 가득찬 밥상을 마주했지만,
난 거의 식욕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주인장의 언어가 내 심장에 콕 하고 박혔습니다. 식탁 위로 금방 흘러내릴 것 같은 그의 눈물이 어느새 나에게도 전염된 것 같았어요.

그런데 식탁에선 탱글한 연어가 위장을 자극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연어를 한 점 집어들었습니다. 미끌한 물성이 젓가락을 밀쳐내고 그만 밥그릇 위로 떨어졌습니다. 다시 젓가락에 힘을 주어 연어를 집어올리고 와사비 소스 위로 직행했습니다. 부드러움과 톡 쏘는 미감이 주인장의 인생을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노년의 언덕에서 톡 쏘는 기운은 빠지고 조금은 부드러움을 간직한 그를 말이죠.


사실 전 주인장에 대한 풍문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젊었을 적 한 성깔 했다는 말이 자자했습니다.

사실 그래서 그분의 초대가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저는 언젠가부터 카더라 통신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 편입니다.

제 주변에 남 이야기를 아주 맛깔난 반찬처럼 버무려내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누군가에 대해 늘 비난의 소리를 해댔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 여자의 말이 사실일 거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 여자가 비난한 사람과 거리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우연히 그 여자랑 그 여자가 비난했던 사람이 무지 친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자는 나에게 그에 대해 비난한 한편, 여자는 정작 그 사람과 친분관계를 가진 것이죠. 살면서 그런 사람들을 종종 봐왔는데 저는 좀 우둔한 편이라 눈치채지 못한 겁니다. 저는 그후로 여러 번 그 여자의 행태를 지켜 보았습니다. 이제는 나의 소중한 에너지를 그런 헛된 관계에 쏟지 않겠다 생각했습니다. 과감하게 여자와의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이간질을 시켜놓고 본인은 마치 중재하고 사람 좋은 행세를 하는 가식적인 사람은 내가 가장 경멸하는 인간상에 속합니다. 그 여자는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다운 숲이었습니다. 하지만 가까이서 봤을 때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냄새나는 나무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주인장은 그런 여자와는 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 같았습니다.

비록 한인들 사이에 약간 악의적인 비난을 듣는 이었지만 실제로는 솔직하고 정직한 사람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전 고민했습니다. 그를 만난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 말입니다.

밥상을 물리고 차를 마시며 주인장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습니다. 초대한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제가 암 수술을 하고 나서 줄곧 생각했어요. 제 글을 남기고 싶습니다. 책을 내고 싶어요. 연강선생이 그 일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

나는 곧바로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시 두려움이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소문대로라면 혹여 잘 못될 경우, 안하느니만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귀찮은 환경은 딱 질색입니다. 게다가 쫄보고 겁보라 힘든 상황이 생기면 도피처를 찾곤 하니까요. 나는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사실 거부의 뜻을 표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 삶의 역사가 담긴 자료를 주며 긍정적인 답변을 달라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찬찬히 그의 자료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역사에 획을 그을만한 일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궁금한 한국 정치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왔습니다. 그는 젊을 때부터 틈틈이 자신의 과거를 종이에 끌적거려 놓았다고 합니다.

그것을 자신의 지하 서고에
차곡차곡 아카이브 해놓았습니다.

그의 꼼꼼함에 감탄했습니다. 몇 십년에 걸친 자신의 이야기를 날짜와 심지어 날씨까지 적어놓았더군요. 게다가 박물관에나 들어갈 법한 그옛날 신문이나 잡지기사 스크랩은 아주 흥미진진한 자료였습니다. 특히 함석헌과 윤이상 선생의 것들은 사료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자꾸만 지적욕구가 심장에서부터 끌어올랐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귀차니즘이 피식 올라왔습니다.

'돈 몇 푼 벌겠다고 피곤해지는 일을 해
사서 고생하는 건 아닐까?'

그냥 조용히 사는 것이 내 건강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자꾸만 도리질을 쳤습니다. 그렇게 만난 지 두 달 후 나는 한국행 일정이 생겼습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그분이 준 문서들이 어른거렸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러 일정들에 둘러쌓여 차일피일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의뢰자에 대한 생각도 무감각해졌어요.


그러던 2021년 코로나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만남이 단절되었습니다. 핑계가 적절했습니다. 칩거하는 삶을 즐겨하는 나에게 제격인 사회적 조치였습니다. 집에서 열심히 독서를 했고, 열심히 성찰과 명상을 이어갔습니다. 내 내면의 것에 치중하기 위해 밤낮으로 글을 쓰고 책을 읽었습니다. 그럴수록 마음 한 켠에는 그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던 어느 날 올 것이 왔습니다.

그의 전화였죠.


"연강선생,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한 번 만나주실 수 있나요?"


다시 만난 그는 더 핼쯕해져 있었습니다. 깊은 황혼의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소원은 제게 남겨진, 보잘 것 없는 역사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도와주세요."

그의 말은 잔뜩 여위어버린 노인의 간절한 부탁이었습니다.

결국 그의 삶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개인이 아닌 한 국가의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일단 그의 자료들을 연도별로 정리했습니다.

역사적인 사안은 검증을 거쳤습니다.

독일어로 된 자료들은 번역을 했고,

사진은 시간대별로 스크랩했습니다.


그런 후 일 주일에 한 번씩
그와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의 집 지하에 마련된 서재에서 인터뷰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둡지만 시간의 역사가 담긴 그곳은, 오랜 비밀을 간직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언어를 청취하기 위해 녹취준비를 하고 컴퓨터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에 관한 대필이야기가 무궁무진합니다.

3화에 걸쳐 그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세요~~~~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