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내 나이도 2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가 많이 바뀌었다. 그중 요즘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주제는 '주식'이다. 대학생이 갓 되었을 때만 해도, 그리고 군대에 있을 때만 해도 해봤자 적금의 이자가 몇 프로이고, 군대 가면서 만드는 나라사랑카드는 혜택이 어떤지만을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나는 금융 쪽에 관심은 없어도 한 번 시도해보는 마음으로 은행에서 자꾸 추천해주는 ELS를 들어본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 대학 친구들과 모일 때면 나는 주식이 인버스(inverse)니, 원유 가격이 오르느니, 테슬라 주식이 어떻니 등의 이야기가 상당한 화젯거리가 되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의 대유행으로 요동치는 세계 경제 속에서 누군가는 주식으로 돈을 벌고, 다른 누군가는 회사에 투자해서 큰 손실을 보고 있다.
이 글에서 나는 어떻게 주식을 해야 하는 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내 글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자기가 생각한 대로 무엇인가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현대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도 없을뿐더러, 순수 인문학으로만 치장하였기 때문에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이후 포퓰리즘에 도달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되려는 지에 관한 물음에서 시작하여, 자본주의를 넘어선 탈자본주의의 형태가 도래하지 않을까를 조심스레 추측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포퓰리즘의 시대에 들어서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415 선거 때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면 각 가정마다 지원금을 뿌리겠다는 반(?)공식적 선언이나, 실제로 재난 지원금을 4인 가구에 100만 원씩 정치인의 결정에 따라서 받을 수 있는 현실은 이미 정책적으로는 신자유주의를 떠나버린 지도 오래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며,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을 분석해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되려 우리나라는 탄핵과 해결되지 않는 북한 문제 등의 독특한 상황으로 예상보다 조금 늦은 포퓰리즘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자유방임주의 경제 속에서 큰 수익을 얻기를 기대한다. 비트코인과 집, 그리고 주식이 바로 그것이다. 정부는 경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정책들을 취하고 있다고 하지만 미봉책일 뿐이다. 자본이 더 큰 자본을 키우는 데에 매개체만 달라지는 반복적인 이 현실은 곧 잠잠해져도 자본의 증식성으로 인해 또다시 나타나서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꿔줄 것임이 자명하다.
코로나의 유행이 지구에게는 이로운 효과를 불러일으켰다는 내용들이 화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국발 미세먼지가 사라지자 하늘이 깨끗해졌고, 인도 델리, 프랑스 파리 등에서도 대기 오염에 가려있던 하늘이 드러났다. 바이러스가 그 누구도 이루어내지 못했던 탄소 배출을 줄이고 인간 생활이 정지되면서 지구가 정화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우리는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된다. 돈을 생각하지 않았을 때 우리의 직업은 사회적으로 정말 필요한 직업일까? 임금 삭감으로 인한 경제적인 문제를 제외하고, 코로나로 인해 부족해진 수급량은 현재의 서비스와 삶의 질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가? 나는 현재 많은 것이 감축되었어도, 우리의 삶에 타격을 주고 문제가 되는 유일한 요인은 돈이며, 재화는 불필요하게 많이 생산되어 있는 반면 자본의 유통 방식의 변화만이 문제 되고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우리 사회는 우리가 필요한 것 이상으로 과잉생산되고 있으며 자본이 끊임없는 자본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이 거창한 말은 내가 한 것은 아니고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선언에서 나온 것이고, 그렇다고 공산주의를 대안으로 삼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에 보이게 된 사실은 몇 가지가 있다. 우리가 모두 물리적으로 떨어져서 일을 해도 상관없다는 것, 그리고 며칠 쉬어도 임금이 삭감되는 것 이외에 사회의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력 과잉을 인지하게 된 이후라면, 안 그래도 일이 없는 구직자들이 임금노동자가 될 확률은 더욱 줄어들 것이며 기존의 임금노동자 역시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단순히 코로나뿐만 아니라 앞으로 사람이 필요 없는 노동은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현대 공업이 발전할수록, 그만큼 남성 노동은 여성 노동(그리고 아동 노동)에 의해 밀려난다"라고 하였지만 이제는 인간 자체가 노동에서 밀려나고 있는 추세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포퓰리즘은 모두에게 평등한 분배를 나름 약속해주는 듯 하지만 오늘날 자본주의에 있어서 필연적인 귀결이며 자본주의의 충실한 하인이다. 노동력 잉여 인간들의 욕구를 일면 채워주면서 현재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 소득을 보장해준다는 이야기나, 의무를 행한다는 듯이 국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부의 분배에 개입하는 것은 중산층을 갉아먹으면서 자본주의를 겨우 지탱하는 것에 불과하다. 가난한 사회 중산층을 두텁게 만든다는 것이다. 서구의 다른 나라들에서 극우적 국민 우선 정책이 시행되고 인기에 편승하는 까닭도 인간 노동 시장의 공급이 수요를 뛰어넘었기에 집권 정당이 헤게모니를 쥐어 본인들을 주체로 하는 자본주의를 이어나가려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글을 통해서 자본주의가 문제라면서 혁명을 일으키자는 문제적 인간도 아니고, 그저 시류에 편승해서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소시민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문제는 우리나라에서의 포퓰리즘적 자본주의는 매년 경제관이 뒤집힐 수도 있는 문제에 직면해왔고 국가가 그것을 문자 그대로 찍어 눌러왔지만, 언젠가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는 것이다.
다시 집, 비트코인, 주식으로 돌아왔다. 부동산 매매는 집값이 계속 오르거나 내려도 물리적으로 그것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기에 지금 정책이 이상하게 펼쳐지고 있다고 해도 경제 체제를 뒤흔들기는 어렵다. 또한 과거 비트코인의 경우는 손쉽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유사 경제로 취급될 뿐만 아니라 투기 목적이 확실하다고 보면서 손을 보았고 이제는 인식도 희미해졌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주식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한국인은 주식으로 합법적인 도박을 하고, 그 연령대는 점점 내려가서 20대 전반에까지 미친다. 인버스니 레버리지니 숫자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에 국가는 어느 정도까지 개입을 할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포퓰리즘 시대의 불안정한 고용 현상, 그리고 타인과 비교했을 때(유투버 등) 본인의 노동의 투입량에 비해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다는 생각은 국가에서 어떤 당근을 주더라도 주식이나 비트 코인 등으로 돈을 벌지 않으면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본의 깊은 내막까지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비트코인이 자본주의의 기형으로 취급받으면서 우리 경제 저편으로 물러나버리게 된 것이 안타깝다. 암호 화폐는 금본위나 은본위 제도가 아니라 컴퓨터 채굴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등장했고, 국제적인 소통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다. 앞으로의 신기술들의 발전으로 실물 경제가 쪼그라들고, 국제 정세에 따라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환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새로운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써 비트코인을 고민해보면 어땠을까. 약 2년이 더 지난 지금 한국에서의 인식은 그대로이며, 비트코인의 가격은 다시 오르고 있다. 이번에는 어떤 결론이 닿게 될지 궁금하다.
자본주의에서 살아남는 방식은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아서 임금을 받는 것에서 나아가 제2, 3의 방식들이 쉼 없이 떠오르고 있다. Ai시대라고 말하고 있지만, Ai는 반도체와 다르게 노동 서비스의 대체자가 될 뿐이다. 그리고 포퓰리즘은 노동 없는 자본주의의 첫 대안이 되고자 하지만 기존 시장을 장악할 능력은 많이 부족해 보인다. 포퓰리즘의 허구성을 깨달은 후에 인간은 방식으로 사회를 구성해 나갈까? 자신의 능력에 따라 보상받고 일하는 자본주의의 명제는 언제까지 지속되고, 누구에게까지 적용이 될 것인지 생각해봄직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