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수와 ebs
조그마한 날개를 퍼덕이며, 다소 섬뜩한 눈으로 유튜브를 휩쓴 펭귄 펭수는 2019년 대스타로 떠올랐다. 방탄소년단을 롤모델로 다소 조촐하게 시작한 펭수는 이미 200만 구독자를 넘겼고 수많은 콜라보 영상들에 참여했다.
펭수가 급작스러운 스타로 떠오르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본다. 먼저 펭수가 스타가 된 과정은 일명 ‘b급 감성’을 통한 유머이다. 영상 속에서 펭수는 꼰대 문화로 점철된 일상에서 제약되는 언어와 행동에서 자유롭고, 소신 있는 발언이 가능하게 되며 급 인기를 얻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한국식 아이돌 팬덤 문화이다. 캐릭터에 쉽게 열광하도록 허용되는 사회 분위기에, 스스로가 방탄소년단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돌 문화가 교육방송 캐릭터 속에 쉽게 침투할 수 있었다. 각종 굿즈 제작을 갈구하는 팬들이며, 팬사인회 개최 등은 이러한 것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의 펭수는 동영상들을 바탕으로 볼 때, JYP나 여러 소속사들을 방문하면서 빌보드 차트에 입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이돌의 방식으로 우주대스타라는 꿈에 한 발짝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펭수의 장점들이 현재 발목을 잡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이 든다. B급 컨셉은 필연적으로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 B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고한 A가 있어야 하는데, 인기를 얻은 펭수는 이 경계들을 허물면서 B급을 초월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돌 시장 또한 유행의 교체 주기가 잦은 시장이다. 한 해가 지나면 또 다른 그룹들이 쏟아지고, 기존의 아이돌 그룹들은 인기를 지키기 위해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며 활동한다. 펭수의 가야 할 길은 그러한 점에서 어쨌든 펭수의 인기가 외연으로 뻗어나가 시장을 개척하고 팬덤을 끌어들여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아이돌의 해외진출처럼 그의 행보도 빌보드를 향하고 있지만, 그 결과가 방탄소년단이 될지, 원더걸스가 될지는 미지수이다. 다만 아이돌 시장에서 2년 차 징크스라는 말이 있듯이 펭수가 반짝 스타로 머무르지 않으려면 펭수의 세계관을 어떻게 정립해나갈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 불가결하다고 보인다.
그리고 여기 펭수와는 다른, 그레타 툰베리라는 스웨덴 소녀가 있다. 툰베리는 2018년 스웨덴 의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학생이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 의견을 표출하는 결석 시위(school strike)가 언론의 주목을 끌면서 툰베리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나의 미래를 빼앗지 말아 달라'는 호소는 서구권의 청소년들의 반향을 일으키며 툰베리는 여전히 활동가로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툰베리가 유럽, 영미권에서와 달리 아시아권에서 핫이슈가 되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방식이 일단 아시아권에서는 일어나기 어렵다. 아시아 국가의 도시는 사람도 많고 중심지가 많아서 시위를 한다고 해도 주목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뭉치기도 어렵다. 얼마 전 Ebs에서 툰베리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결석 시위에 참가하는 학생들을 보았다. 한국에 있는 어떤 고등학생이 학업을 쉽게 미루고 시위에 전념을 할 수 있겠는가? 학생들의 의지는 진심으로 존경하는 바이나, 그것이 어떠한 결과로 맺어지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또한 중국이라는 너무나 큰 환경오염 문제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환경보호를 위한 작은 발걸음이 실제로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현 정권은 운이 좋게도 코로나 정국으로 미세먼지 책임론의 화살을 피해 가고 있지만,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오는 대기오염 문제는 다음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될 때에도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모두들 알고 있다. 그리고 정치권에서 그러한 요구를 중국에 전달하라는 의견은 지나온 행보를 보아올 때 기대도 되지 않는다.
펭수의 이기적인 존재의 이유, 인기와 명성을 얻기 위함이 역설적으로 다방면에서 소통을 갈구하는 네트워크를 이어주는 이타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했다. 어린이부터 나이 든 어른까지 그들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펭수를 지지해주고, 서로를 미워하기보다는 '펭랑해'라는 말로 위로해주었다. 투덜대는 행동과 가끔은 억지스러운 모습들은 우리가 사회 속에서 필연적으로 쓰고 있는 가면이 아니라 솔직한 모습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랑스럽게 보이기도 할 것이리라.
펭수는 우리나라의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존재로서 성장해왔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펭수를 툰베리와 동일선상에서 놓고 싶다. 시위나 투쟁의 방식이 아니더라도 아이돌의 성장 과정이라는 서사를 부여하는 중에 다수가 공감하는 의견이 공론화될 수 있도록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우리들의 고유한 특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덧붙여서 펭수는 환경 문제라는 면에서, 완벽한 스펙을 가졌다. 남극에서 한국으로 떨어진, 어느 정체성에 속하지 않는 점에서 펭수의 의견은 가치중립적인 명제를 숙고해볼 수 있게 한다. 펭수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다. 툰베리와 다르게, 펭수는 문제를 보면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그것의 책임은 매니저와 구독자들이 힘을 뭉쳐 해결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환경 문제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펭수가 외연으로 확장해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펭수라는 가장 이기적인 모델이 때로는 사회 정의에 가장 부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