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성사회와 현실
우리 생각보다 유튜브로 배울 수 있는 것은 많은 것 같다. 그냥 온라인 검색으로도. 혼자 교환학생을 시작할 때는 요리부터 시작했고, 전문 지식을 찾아봐도 위키피디아(나무위키 아님)의 내용을 반복한 것이라도 참고할만한 영상들도 많다. 대학에서 수업을 듣다 보면, 종종 깝깝할 것 같은 '교수님' 고정관념에 비해서 생각보다 다가올 시대를 고민하고 어떻게 자료를 찾고 발전할지를 많이 생각하시는 듯싶다. 은퇴를 앞두신 한 노교수님께서는 코로나로 강제 온라인 수업을 듣기 전에도, 어차피 실습이 아니라면 온라인 수업 방식으로 교육의 편의성을 늘려야 하며, 전문성을 지닌 개인이 블로그(요즘은 유튜브)로 정리한 글들을 쉽게 찾아보고 익힐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시고는 했다. 다른 분은 어차피 우리 머리로 번역하는 것보다 나중에는 구글 번역기를 잘 사용하는 것이 더 정확하고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냐고도 하셨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수업 때마다 혁신, 혁신을 부르짖으면서 시험 문제는 20년 전의 그것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타성의 젖으신 분들도 많다. 누군가는 표절을 한다. 가끔은 논문을 읽다가 너무 익숙해서 보면 책에서 인용을 했더라도 서술된 내용을 그대로 붙여 넣은 것들도 있고, 외국 학자의 논문을 그대로 번역하여 본인의 생각처럼 발표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사실들이 드러나면 양심이 있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겠지만, 또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냐고 발끈하고, 중상모략이라면서 발뺌하는 사람도 많다. 대학사회는 사람의 품격이 극과 극으로 나뉘어 있는 곳은 아닐까 스스로 생각하고는 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서울의 대학과 학생들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서울의 주요 대학들을 세종시로 이전하면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경악을 넘어서 말조차 꺼낼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다. 대학은 어찌 됐든 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으로 인구가 밀집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수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대한민국의 인재들은 그들의 능력으로 가까이에 있는 좋은 회사와 기관에서 인턴 일을 하고, 졸업하고는 일자리를 하면서 국민으로 살아간다. 외국에서도 보면, 뉴욕대와 콜럼비아 대학 학생들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모마 미술관에서 인턴 할 기회 얻고는 한다. 초등학교부터 사람밖에 자원이 없다고 주입받은 입장으로서 콩알만 한 대한민국에서 그 당연한 기회조차 차 버리고 적폐마냥 찍어버린다면 누가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겠는가.
그 이전에는 국공립 대학 통합 이슈가 나왔을 때, 사실 해보려면 해보라는 마음을 가진 쪽은 서울대 학생이 아니었나 싶다. 학점 받기 쉬워진다는 오만한(?) 소리를 하고는 했지만, 실상 피해 보는 것은 지방의 인재들일 것이기에 대학이라는 지성 사회가 언제까지 정치적인 농간에 놀아나야 하는지에 대한 자조적인 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학문을 하다 보면 서울에서도 자료가 없다, 사람이 없다고 말하며 충분히 한국 사회에서 학문의 공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평등'이라는 이름 하에 이러한 정치인들의 주장은 그나마 명줄을 이어나가고 있는 대학 사회를 붕괴시키는 미필적 고의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위치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교육의 질을 유지하고 싶다면 온라인 기반의 대학 제도를 만드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본다. 요즘에는 대학 강의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지만, 그것이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제도로 연결되는 것은 상이하기에 비대면 시스템에 관한 논의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인들이 대학을 비롯한 지성사회를 위해 힘써야 할 일은 대학에서 훌륭한 인재를 기르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이외에는 없다.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학들이 종종 대학 순위 세계 100위 내에 진입하였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대학 사회가 조금 좋아지려나 싶으면서도, 어차피 그러한 결과는 소수의 학과들이 '하드 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특정과가 입시 경쟁이 치열한 것과는 별개로 일부는 세계적인 성과를 내는 곳도, 한국에서만 알아주는 곳도, 그냥 지지부진한 곳도 있다. 세계적인 학과는 계속 세계적으로 빛나도록 지원해주고, 한국에서 유명한 과는 사회와 교류하면서 외연으로 확대되도록 하며, 부족한 곳은 채워주어야 함이 마땅하다. 실제로 대학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면 비상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돈도 못 벌면서 지성사회에 일조하는 인재들에게 자본의 논리 운운하면서 최소한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창작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웠다. 1학년 때는 한쪽을 쓰기 어려워하다가, 학년이 지나자 세 쪽, 다섯 쪽 분량을 채우고, 이제는 열 쪽이 넘는 글을 쓴다. 분량이라는 부담감에 언제나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러고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누락되어 누군가가 지적을 해준다면, 아, 사실 그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에요, 라면서 구차한 설명을 덧붙이게 된다. 그런 일들을 반복하여 조야한 생각이라도 나만의 글을 써서 논의를 진전시키려고 하는 것이 나의 대학 생활이었다.
논문은 내 이름을 달고 출판되지 않더라도 어쨌든 완성된 형태로라도 제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브런치 글을 쓰는 것도 짧으면 몇 시간은 투자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 여러 달이 걸리기도 하는 것처럼 글을 잘 쓰려고 한다는 것은 쉽지 않듯이 말이다. 그런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 학문의 성취는 사람들에게 너무 멀리 느껴지면서 동시에 쉽게 경시되는 듯하다. 학문을 하지 않는 사람은 잘 몰라서 그렇다고 쳐도 가끔은 일부 교수로 불리는 자들과 멀쩡히 4년제 대학을 나온 정치인들은 고등 교육의 가치를 쉽게 여기는 것 같다. 아무리 유럽과 일본이 쇠퇴한다고 해도 그들의 대학들이 인정받고 있는 것은 제국주의와 착취로 이루어진 것이 크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성사회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지도 않았으면서 학문을 홀대한다고 느껴진다. 교수들이 경미한 표절이 나타날 때마다 부끄러울 줄 모르고 눈을 부릅뜨는데, 진정으로 훌륭하고 존경받아야 할 학자 분들의 위신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