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노소 좋아하는 한국인의 소울 푸드 떡볶이, 45년을 한국에서 살아온 토종인 답게 그녀 역시 떡볶이를 사랑한다. 하지만 어느 생태계에서나 변종이 나타나듯
나의 몸뚱이는 밥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떡볶이라는 간식거리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위속에는 떡볶이가 들어서 있고 그녀는 오늘도 만족스러운 저녁식사에 행복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아파트 주차장에 늘어서 있던 자동차들이 하루의 시작을 위해 하나둘씩 자리를 비우면 저녁에는 볼 수 없는 광활한 주차공간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나는 아이스크림 매장에 들어선 아이처럼 입맛을 다시며 주차하기 좋은 곳을 골라 큼지막한 1톤 트럭을 여유롭게 후방 주차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카톡"
와이프 :자기야 어디쯤이야?
나 : 주차하고 이제 올라가는 중이야. 근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와이프 : 오늘 할게 많아서 눈이 떠졌어 나 오늘 매운 거 당기는데 떡볶이 먹을까?
나 : 아침부터 떡볶이는 부담스럽고 저녁으로 먹자.
와이프 : 알겠어!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만드는 것은 나의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이다.
17층에 머물러있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으로는 떡볶이의 재료와 만드는 과정을 쭉 나열해본다. 새벽일을 하는 관계상, 배경만 저녁으로 바뀌었을 뿐 가족을 위해 아침부터 일어나 밥을 짓고 요리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이제 나의 일상이 되었고 5년 차 된 주부처럼 능숙하게 2~3가지의 반찬과 요리를 동시에 만들 수 있는 내 모습에 나름 자부심도 생긴 편이다.
집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는 것이다.
캄캄한 어둠 속을 운전하며 긴장되어있던 피로가 먼지와 함께 씻어 내려가고 그와 함께 졸음이 미친 듯이 몰려온다. 마치 신호탄이 울리면 바로 튀어 나갈 수 있는 100m 달리기 선수처럼 배게 위에 머리를 언자 마자 곯아떨어질 것이다. 머리를 말리고 졸린 눈을 비비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그녀는 떡볶이를 만들어 먹지 않을까?
졸린 몸을 이끌고 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녀 옆에 서서 살짝 물었다.
나 : 자기야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
와이프 : 응 괜찮아 뭔데?
나 : 자기는 떡볶이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만들어먹을 생각을 안 해?
와이프 : 음... 난 요리하는 시간이 아까워 그 시간에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내 적성에 맞거든 대신 열심히 일하고 있잖아 그리고 내가 하는 음식은 맛이 없는데 자기가 해준 음식은 진짜 맛있어!
남자란 생물은 무릇 칭찬에 약하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누군가가 툭 칭찬 한마디 던져주면 세상에 자신보다 잘난 사람은 없다는 듯 어깨가 올라가고 들쑥날쑥 거리는 입꼬리를 관리하기 힘들어진다.
우리 와이프는 그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솔로몬의 후예라도 된 듯 적재적소에 칭찬을 사용하고
나는 '나 요리하는 거 귀찮아'라는 소리인 줄 알면서도 충성스러운 골든 리트리버 마냥 와이프의 대답에 기쁜 마음으로 수긍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집 앞에 있는 마트로 향했다.
밀떡과 2,480원짜리 어묵을 계산대에 올린 후 쇼핑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제일 먼저 물을 올리고 새우와 다시마가 들어간 해산물 팩을 냄비 안에 던져 넣는다. 여러 가지 육수 팩을 사용해 보았지만 새우와 다시마가 들어간 육수 팩이 떡볶이와 제일 잘 어울리는 궁합이다.
'띡띡띡띡 띠로릭~' 도어록 소리와 함께 1시부터 6시까지 학원에서 영어 가르치는 일을 하는 와이프가 남편보다는 매콤하고 달콤한 떡볶이의 냄새에 만족한 듯 환한 웃음을 지으며 현관으로 들어선다.
오늘 저녁 떡볶이 어떠세요?
와이프 : 음 냄새 너무 좋다.! 나 너무 배고파 쓰러질 것 같아~.
나 : 방금 막 완성했어. 빨리 손 씻고 와서 앉아
떡볶이를 식탁 가운데에 놓고 그녀 자리에는 포크를 내 자리에는 젓가락을 올려두며 자리에 앉아 그녀를 기다린다. 떡볶이를 먹을 때 그녀는 항상 포크를 사용하는데 그 모습이 8살짜리 어린아이 같아 귀여우면서도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손을 씻고 온 그녀는 자리에 앉아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포크를 집어 들고 맛있어 보이는 밀떡을 찍어 입안에 넣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와이프 : 음~ 너무 맛있다. 역시 자기는 요리를 잘해!
그녀의 반응에 내 만족 게이지는 가득 채워졌다.
먹는 사람의 반응을 충분히 살펴봤으니 이제 이 즐거운 마음을 내 혀 끝으로 옮길 시간이다.
젓가락으로 떡볶이 하나를 집어 들고 입속으로 넣는다.
온몸으로 양념을 받아들인 밀떡이 입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매콤 달콤한 맛이 혀 전체를 감싸고 떡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씹을 때마다 입을 즐겁게 한다.
예전에는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사랑하면 닮는다고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면서 나도 웬만큼 떡볶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떡의 즐거움을 맛봤으니 이제 어묵 차례이다. 아까운 양념이 흘릴까 재빠르게 손을 움직여
어묵을 입안으로 집어넣는다.
바다 내음 가득한 해물육수를 머금은 어묵의 맛은 그 감칠맛이 몇 배나 업그레이드되어있다. 맛있다.
다음 타깃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대파다. 떡인 줄 알고 먹었다가 대파인 것을 알고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대파의 단맛을 좋아한다. 입안 깊숙이 넣고 어금니로 깨무는 순간 대파의 살갗을 뚫고 나온 단맛이 양념과 어우러져 나를 더욱 즐겁게 한다. 이것 또한 맛있다.
이제 각자의 맛을 하나하나 맛봤으니 떡과 어묵의 조합, 어묵과 대파의 조합 등 여러 방법으로 섞어가며 최대한의 행복을 입안으로 집어넣는다.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재료들이 한대 모여 환상의 맛을 만들어낸 것처럼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각자의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한대 모여 사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 아닌가 나는 떡이고 우리 와이프는 어묵이다.
다른 삶을 살아왔기에 가끔은 서로 부딪히지만 이해와 배려라는 맛 좋은 양념을 만들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