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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아 로 Oct 13. 2020

부치지 못한 태교 편지 1

2015. 6. 8.   -나의 아기에게.  

앞으로 <부치지 못한 태교 편지>를 한 제목의 글을 몇 편 더 올릴 예정입니다.

이 글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는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글을 이어 쓰지 못했습니다.

이 글을 쓴 죄책감과 유산의 슬픔으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 인생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다시 읽을 용기가 생겼고, 나의 첫 번째 아이에게 쓴 이 편지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15. 6. 8.     

-나의 아기에게.     


아마도 내 자궁 속에서 작은 세포의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을 아가야. 안녕?

난 아마도 너의 엄마가 될 경아라고 해.

너에게 쓰는 엄마의 첫 번째 편지구나.

아직은 네가 정말 뱃속에서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어.

난 병원에 가보지도 않았고 임신테스트기를 소변에 담가보지도 않았거든.


그런데도 왜 이렇게 편지를 쓰냐고 묻는다면, 글쎄.     

굳이 한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미안하기 때문이야. 미안하기 때문에.

만약 네가 며칠 전부터 내 뱃속에서 존재하고 있었다면 너에게 미안해.

널 내 뱃속에서 나가게 하고 싶어서 미안하다고 하는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니 오해는 말아줘.     

다만 난 미안해.

솔직히 말하면 난 아직 널 마음을 다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든.     



6월 6일 지난 주말에 난 너의 아빠가 될 남자와 함께 너의 아빠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제사에 다녀왔어. (너의 아빠가 될 남자의 이름은 형규야. 내 남편이지.)

난 거기서 깨달았어. 내가 이 곳에서는 투명인간이라는 걸. 혹은 너의 아빠이자 나의 남편인 형규의 그림자라는 걸.     

난 거기서 인사만 하고 쉴 새 없이 일을 했어. 거긴 내가 앉을 곳도 서있을 곳도 없었거든.

쉴 새 없이 일하면서 일하지 않고 먹고 이야기 나누고 절만 하는 남자 어른들의 시중을 들었어.

내가 여자라는 것, 여자면서 한국의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 내 직업이 작가라는 것, 내가 작가로서 어떤 성과물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매우 저주하며 끊임없이 설거지를 했지.

제사에 모인 사람들은 위에 언급한 나의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는데도 말이야.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거기에 있는 것조차 몰랐을지 몰라.     

그 제사 이후로 너를 받아들이겠다는 나의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었어.

6월 6일부터 계속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줄곳 답답했어. 그리고 슬펐지.


네 아빠 때문은 아니야. 형규는 제사 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매우 미안해하고 잘해주고 있어. 다시는 제사에 가지 말자고도 했지. 너의 아빤 이렇게 착한 사람이야. 엄마에게 말이야.      

하지만 난 마음의 변화를 막을 수 없었어.

난 누군가의 그림자로 살 수 없는 사람이야. 그게 내가 죽을 만큼 사랑하는 내 남편일지라도.

난 주인공으로 살아야 하고 자유로워야 하는 사람이야. 슬프게도.

그런데 난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고, 만약 네가 태어난다면 난 더더욱 그렇게 살지 못하겠지.

그런 생각들로 내 마음이 가득 차버렸어.     


물론 시외가 댁 식구들에게 관심이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어. 난 작가답게 늘 다른 사람의 인정에 목말라있거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어.

굳이 내가 누군가의 인정을 바란다면 그건 작가로서의 인정, 즉 나를 작가로 인정해줄 수 있을 만한 권위 있는 사람의 인정을 원하겠지. 가족들의 인정이 아니야.


난 가족들- 가족이 주는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거야.     

더 나아가 난 그저 예술가의 삶을 살고 싶을 뿐이야.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 그림자의 삶이 아니라,

예술가. 작품과 나 그리고 나의 연인.

주인공의 삶. 속박이 없는 삶.     

지금 나로선 무엇보다 자녀로부터의 속박이 나에게는 가장 두려운 것이야.

자녀를 선택한다면 나는 더더욱 가족의 속박으로 들어갈 것이고 며느리, 아내 거기에 엄마의 이름을 더해 그림자로 살아야 할 거야.

그래서 혼자 마음의 결정을 내렸지.     



만약 내 뱃속에 네가 이미 자리 잡았다면, 이것은 나의 운명.

너를 키우고 그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다 짐작도 할 수 없는 언젠가 예술가로서의 삶을 되찾고 겨우 살아야겠지.

예술가로서의 삶을 조금 미루는 것.     


하지만 만약 내 뱃속에 네가 없다면 나는 앞으로 아기를 가지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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