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아본 베트남은요, ep.0 프롤로그

2000년대 초반의 베트남

by dreamerry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 아빠는 베트남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언니가 7살이 되던 무렵 젊은 날의 엄마와 갓 두 살이 된 나도 베트남으로 옮겨갔다. 그렇게 우리의 베트남 생활이 시작된다.


내가 기억하는 옛날의 베트남은 하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비가 많이 오면 도로에 물이 차기 일쑤였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다. 엄마를 따라 시장에 따라갔다가 택시를 타고 오던 길에 비가 와서 문의 1/3이 물에 잠겼었다. 약간 과장한 거지만 실제로 바퀴까지는 물이 올라온 정도였다. 그만큼 낙후됐던 베트남에서 초보 엄마아빠였던 부모님이 적응하기 정말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만 해도 베트남 사람들은 오토바이보다 자전거를 훨씬 많이 이용했고, 지금처럼 쉽게 한국 식재료를 구할 수 없었다. 한국 사람이 많이 없어 아주 좁은 한인사회였고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낙후된 베트남에서의 생활이었지만 나는 나의 유년시절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한국처럼 모든 인프라가 구축돼있어 편리하고, 일처리가 빠른 나라는 아니지만 반대로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고 느린 것에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는 나라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살았던 호치민의 사람들은 정말 여유롭다. 나는 특히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참 좋았다. ‘빨리빨리’가 아닌 ‘느려도 괜찮아’ , ‘조금 천천히 하면 어때?’ 혹은 ‘조금 늦어도 괜찮아.’ 라던가,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들 뿐이었다.


일 년 반이 지나 방문한 호치민 떤선녓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연신 ‘덥다’는 말을 했다. 33도의 날씨와 길게 늘어진 택시 줄, 도착층에 모여 맨발로 앉아있는 사람들이 약간은 낯설게 느껴졌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은 익숙하면서 익숙지 않았다. 반가우면서도 반갑지 않은 기분이랄까.

에어컨 빵빵한 택시 기본요금이 천원이라니. 약간 놀랐다. 하지만 어차피 이동거리가 짧지 않으니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별로 차이는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서울에서 대학생 신분으로 택시 타는 일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인데 이제 또 3주간 택시 라이프 시작이구나. 한국으로 돌아가면 가면 지하철이 낯설게 느껴지겠지.


베트남에 도착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아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내내 창밖 구경을 했다. 한국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상의를 탈의한 채 담배를 피는 아저씨들을 보고 나서야 ‘내가 베트남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나는 이런 모습들이 꽤나 그리웠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무지막지하게 나는. 길거리에 쓰레기가 나뒹굴고, 종을 모를 강아지들이 활보하는. 자동차보다 오토바이가 훨씬 많이 다니는 그런 풍경들이 그리웠다.


그날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도 풀지 않고 잠에 들었다. 3개월 동안의 호치민 라이프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