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통합교육에 대한 생각

- 통합교육에 회의를 느끼신다는 어느 부모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1. 20여 년 전. 교대에서 특수학교 실습을 나간 적이 있었다. 난생처음 만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지도하시는 선생님들을 보았다. 나는 충격이었다. 단 한 번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아이들을 만났었으니까.


2. 특수교육이 뭔지, 발달이 뭔지 정말 몰랐다. 그저 피아제니, 에릭슨이니 정도만 배웠을 뿐. 그나마도 책으로 배운 것이라 아이들의 행동과 연결 짓지도 못했다. 그야말로 무지 그 자체였고 나는 맨땅에 헤딩하듯이 나 혼자 책을 찾아 공부해야 했다.


3. 통합학급을 맡으면 의무 연수를 받게 하는 제도가 생겼다. 특수교육 책의 내용을 요약한 설명과 강사가 만난 학생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조금도 와닿지 않았고 연수는 듣고 싶지 않았다. 내가 궁금한 건 내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니까.


4. 대학원 공부가 숨통을 틔어 주었다. 만나는 교수님들이 전부 심리학 전공자이고 상담자였으니까. 덕분에 PDD-NOS라는 걸 알게 되고 우리 반 아이를 진단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답답했다. 특정할 수 없는 발달장애라니…


5. 책을 찾아 읽고 또 읽었다. 알고 싶었으니까. 내 주변 누구도 모르니까. 아니 그나마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나 자신과 동료 후배 교사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공부했다.


6. 긍정심리학과 신경과학을 공부하며 눈앞이 밝아지는 듯했다. 여전히 눈을 가린 채 길을 가는 느낌이지만 이전과 다르게 다녀본 길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공부를 한다는 건 그렇게 천 피스짜리 조각을 하나씩 맞춰가듯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7. 선배 교사들은 잘 묻지 않았다. 자기 경험에 기반했고 통합보다 분리를 선호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도 어쩔 줄 모르니까. 통합학급을 맡아본 경험도 거의 없고 따라서 공부한 적도 없으니까.


8. 비단 교사 개인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이유는 크게 3가지다. 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사. 장애아동을 대하는 일반 아동과 부모들의 민원,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을 함께 가르쳐 본 경험이 없는 교사의 불안. 이 둘을 연관 짓는 관리자까지.


9. 통합교육에 대한 경험도 없고 공부도 안 해 온 관리자는 민원을 막아설 논리가 없다. 후배 교사를 지원할 능력도 없다. 결국 소수인 장애아동을 분리 교육하도록 권하는 것이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벽은 하나 더 있다.


10. 바로 특수 교사다.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은 일종의 섬과 같다. 학교장도 귀찮아한다. 민원이 많으니까. 장애아동 부모는 장애아동 부모대로 날이 서 있고 비장애아동 부모 역시 역차별을 주장하며 곤두서서 민원을 날리는 경우가 많으니 중간에 끼인 특수교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숨죽이고 있는 경우가 많다.


11. 이들은 동료 교사도 없다. 통합교육에 관심 있는 일반교사의 수도 적고, 있다 한들 어떻게든 특수학급으로 보내려 할 뿐 스스로 어떤 노력을 기울이려 하지 않으니까. 더구나 업무도 많고 학생도 많다. 특수학급 정원보다 초과한 학생이 들어와도 학급 증설이 어렵다. 공간이 없거나 다른 구성원들이 달가워하지 않는다. 따라서 쉽게 우울해지고 우울해진 교사는 아이들에게 무관심해지기 쉬워진다. 휴식 없는 돌봄은 소진이 필연이니까.


12. 통합학급이 더 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반학급 교사들이 더 많이 통합학급을 경험해야 한다. 더 다양한 특수아동을 만나야 한다. 더 많은 일반아동이 특수아동과 함께 생활하며 교사와 학생 모두 인간발달의 이해를 넓혀야 한다. 통합교육이 인간을 어떻게, 얼마나 성숙하게 만드는지 경험케 해야 한다.


13. 그래서 더 많은 통합교육 책이 나와야 하고, 더 많은 특수아동의 이야기가, 특수아동 부모의 이야기가 사회에 울려 퍼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거도 지금도 언제나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 사람들 덕분에 사회가 이만큼 진보했으니까.


14.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궁창을 조금씩 닦아온 수많은 분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도록 통합교육에 속한 모든 분들이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주셨으면 좋겠다. 함께 노력해 갔으면 정말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어른의 교양을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