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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a Sep 19. 2023

붕어싸만코 반 개를 먹으며

마흔 여덟, 감각에서 사유로

붕어싸만코를 반으로 잘라 반만 먹고 반은 다시 냉동실에 넣다니. 평소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건 딸과 남편이었다. 그들은 내기준 자기관리의 대가다. 그런데 평생 다이어트와 거리를 두었던 내가 딸기라떼도 반만 마시고 냉장고에 넣고, 꿔바로우도 한 조각만 먹는 그런 일을 인생 최초로 하는 날들이다.


식단을 하고 있다. 평소 먹는 것들 중에서 건강한 음식만으로 일일 총칼로리를 제한하는 방식이다. (나의 대사량은 겨우 하루 1100 정도) 복잡한 건 이제 도전 안 하게 된다. 경험에서 배웠나보다. 그래도 이렇게 하니 일주일에 2.5키로를 감량했다. 아니 전에 얼마나 많이 먹은 게야. 생각지도 못하고 먹었던 음식들의 칼로리를 보고 많이 놀라긴 한다. 포만감이 적다고 살이 안 찌는 게 아니었음을 이제야 알았다니.


그래서 그런 건지, 이상하게 마음도 반쪽 붕어싸만코처럼 반만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게 다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몸이 소화할 수 있는 음식이 줄어들고 거기에 맞춰서 먹으니 전에 비해 먹는다는 일 자체가 확 줄어들었다. 식욕이 채워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욕구의 충족감이란 것도 그만큼 줄었겠지. 게다가 음식이라는 게 갖는 풍미를 즐기는 경험도 줄어들었고.


감각도 감정도 어떻게 전과 같겠나 싶다. 언젠가부터 ‘보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현실정치야 워낙 편가르기가 강한 문화라 보수라는 단어가 심리적으로 거부감 드는 건 어쩔수 없지만, 보수라는 말은 지키고 보전한다는 뜻도 있다. 대사량이 줄고 노화가 실생활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말은 이제 주어진 나의 재료를 지켜가며 써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사람의 마음이나 감정도 몸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니, 먹고 움직이는 게 줄어들면 전보다 차분해지는 게 당연한 일이지 싶다. ‘감’이 발달하고 그걸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편인 사람으로서 이 변화를 잘 소화해 받아들여야겠지. 아마도 ‘감’에서 시작해 숙고로 이어져 좀더 단단한 사유로까지 흘러간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젊음이 소유한 어떤 좋은 것 하나를 잃는 게 아니라, 성숙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좋은 것을 얻는다 생각하면 왠지 두둑해진다. 이 최초의 식단이 잘 이어져 몸은 슬림 능력은 듬직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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