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아웃'시키기란 쉽지 않다
옷장 정리를 하다가 아끼는 원피스가 눈에 띄었다. 한때는 가장 즐겨 입는 옷이었는데 살이 찌면서 허리가 불편해졌다. 그렇다 보니 자주 못 입게 되었고, 버릴까 고민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그때, 동생이 과자 값이라도 벌어주겠다며 당근 마켓에 올리자고 제안했다. 중고 거래를 한 번도 이용해 본 적 없었던 나는 사기라도 당하면 어쩌냐고 걱정했다. 하지만 동생은 그래 봤자 이웃인데 설마 사기가 있겠냐며 당근 마켓을 유독 신뢰했다. 간단한 설명을 쓰고 원피스 사진을 올리니 조회수가 금방 올라갔다. 동생은 곧 다가올 첫 거래를 기대하며 온 신경을 휴대폰에 쏟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오르는 조회수와 달리 채팅은 오지 않았다. 첫 거래가 마냥 쉽지만은 않다며 동생이 실망하고 있을 때, 스멀스멀 장난기가 발동했다. 네가 그토록 기다리던 첫 구매자, 내가 되어주마!
나는 동생이 화장실을 간 틈을 타 채팅을 보냈다.
"안녕하세용~ 원피스 사진 좀 더 보여주세여 ^^"
평소 딱딱한 내 말투와 전혀 다른 말투여서일까? 다행히 동생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기억에 남을 무례한 구매자가 되기 위해 여러 전략을 구상했다. 먼저, 살 듯 안 살 듯 밀당하는 태도로 시작했다. "살짝 짤땅하네여;; 그래도 질이 좋아보여용" 과 같은 대화로 단점과 장점을 번갈아 말하는 것이다. 답장도 평균 6시간 간격으로 늦게 하며 답답함을 유도했다. 동생이 "산다는 거야 안 산다는 거야"라며 짜증을 낼 때, 나는 이불속에 숨어 킥킥댔다.
나는 하루가 지나서야 구매 의사를 밝혔다. 이제는 약속 장소로 골탕 먹일 차례다. 내가 먼저 우리 집 근처 편의점에서 보자고 권했다. 그리고는 천 원을 더 줄 테니 판매자 분이 직접 이 근처로 오라며 명령했다. 동생은 가짜 구매자인 나의 거만한 태도를 보며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고 황당해했다. 그러면서도 제안한 약속 장소가 우리 집과 너무나도 가까운 곳이라 정말 가까운 이웃과 거래하는 것 아니냐며 신기해했다. 동생의 반응을 보며 나는 '네가 그렇게 믿던 가까운 이웃에게 된통 당해봐라!'라고 생각하며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제가 ㅇㅇ 빌라에 사는데용.. 그냥 저희 집으로 와주세여"
사실대로라면 그 주소는 우리 집이었다. 그리고 합의도 하지 않은 채 배달을 요구하다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순진한 동생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황당해하면서도 놀라워했다. 첫 구매자를 어렵게 만났는데, 기가 찰만큼 뻔뻔하다. 그런데 그 뻔뻔한 사람이 같은 빌라의 같은 동 거주자다! 동생은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어이가 없다며 이 상황을 소개하곤 했다. 그들 역시 뭐 그런 사람이 다 있냐며, 신고를 권했다. 하지만 동생은 너무 가까운 이웃이라 뻔뻔한 태도에도 신고를 망설이게 된다고 했다. 괜히 신고했다가 혹시 오며 가며 마주칠 때 어색해질까봐 걱정도 되고, 가까이 살면서 사이가 나빠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동안의 무례한 태도와 요구에도 평소처럼 냉정하게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망의 약속 날짜가 되었다. 동생은 씩씩거리며 원피스를 갖고 빌라 현관으로 갔다. 그리고 5분 뒤, 나는 동생을 따라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은 아직 구매자를 만나지도 못했다며 언제 오냐는 채팅을 보내고 있었다. 동생의 순진한 모습에 웃음이 터진 나는 "사실 그거.. 나야.."라고 실토했다. 그럼에도 동생은 믿지 못했다. 내가 휴대폰 채팅 내역을 보여주며 인증하자 그제야 상황을 직감했다. 나의 지나친 장난에 충격(?)을 받은 동생은 원피스를 바닥에 휑하니 던져놓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동생의 마음을 풀어주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이후로 동생은 당근 마켓을 이용할 때마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 물론 채팅만 오면 이번에도 언니가 아니냐며 나를 1순위로 의심하긴 한다. 다소 지나친 장난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의 장난은 나름 의미 있는 장난이라고 여기고 있다. 동생에게 이웃에 대한 경계심을 심어줄 수 있었던 신박한 기회라고 자부한다. 지금까지 당근 마켓은 이웃 기반의 네트워크로 높은 신뢰도를 얻었다. '설마 내 이웃이 사기를 치겠어?' 하는 마음으로 거래를 활발히 했던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이웃임에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게시글과 달리 실망스러운 물건을 받는 경우, 약속 장소에 안 나오는 경우 등도 꼭 발생한다. 그리고 그런 일을 나와 '가까운' 이웃이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막상 신고도 어려워할 만큼 상대방에게 휘둘리기 쉽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웃일수록 더욱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웃'을 '아웃'시키는 일, 생각보다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