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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계 Jun 20. 2020

답은 없지만, 함께 느낄 수는 있어.

: 허수경, 『가기 전에 쓰는 글들』


 문학을 처음으로 배우던 시절. 인터넷에서 한 기사를 봤다. 허수경 시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이름만 들어봤던 그 시인에 대해서 찾아봤다. 내가 읽은 시집은 단 한 권도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소설을 더 좋아했고 시라는 분야는 어렵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시는 어렵다. 언어가 어렵다. 그때 ‘시 창작’ 과목을 배우고 있었다. 교수님은 매주 시를 한 편 써오라고 했다. 이론도 안 가르쳐주고 무작정 쓰는 과제를 내줬다. 매주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살아왔던 삶을 다시 복귀하는 행위다. 나는 매주 바라봐야 했다. 내가 살아온 지난날들을 생각보다 누군가에겐 충격이고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정적이 감싸던 합평 시간이었다. 그런 내가 이상하게 용기를 얻어 그때부터 시를 좋아하게 되었다.      


 일 년이 지나고 언제인가 산문집을 하나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어려운 언어를 보고 싶었고 복잡하던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무엇이 복잡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졸업과 취업. 업에 쌓여가는 내가 싫었다. 그때 에세이·시집 카테고리에서 TOP10 안에 있었던 허수경 시인의 유고집을 보게 되었다. 유고집은 처음이었다. 문학계에서 대단한 인물이었으니까. 순전히 궁금한 마음이 들어 사게 되었다.      


 보라색 하드커버지로 되어있고 ‘시’라는 단어에 선이 찍 그어져 있고 ‘글’이라고 다시 쓰인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색도 심플한 디자인도 시작 메모도 말이다. 총 3부로 되어있는 책은 1부인 시작 메모가 거의 대부분을 구성한다. 날짜와 짧은 글들이 모여 있었는데 바쁜 와중에 틈틈이 읽기 좋았다. 그리고 가끔은 읽은 날짜 때 나는 뭐 하고 있었나 다시 생각도 해봤다. 내가 살아왔던 인생과 허수경 시인의 인생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눈앞에 시인이 있는 것 같았다. 작품을 쓸 때 느끼는 감정이라던가, 개인적인 내용을 독자들은 모르는데 유고집에선 그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독자와 작가의 간극을 확 줄여주는 책 같다.      


 시가 좋아지면서 시라는 것에 대한 부담감, 쓸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항상 들었다. 그런 의문도 자신감도 허수경 시인 또한 했다는 글을 읽는 순간,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삶을 치열하게 살았던 고민, 내가 앞으로의 할 고민과 지금 하는 고민이 그 책에 담겨 있었다. 그래서 복잡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위대한 사람도 그런 고민을 생각하고 어쩌면 치열한 고민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시인도 만들어 간 게 아닐까?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어쩌면 다 비슷비슷한 고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위로해주는 책 같다. 명확한 답은 없어도 함께 느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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