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 순간을 - 함께 사는 세상> 가치관과 삶
▲ 서로 잘하는 것 합시다 © Kyrene
요즘 MBTI 유형을 통해 한 사람의 성향을 판단하는 것이 유행인 듯하다.
성격심리검사를 활용해 자신의 성향을 들여다보는 것은 흥미와 더불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처한 상황에 따라, 마주하는 상대에 따라, 혹은 강제적으로, 한 인간은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마다 할 일이 없고, 가장은 가족을 위해 온갖 형태의 갑질과 모멸을 견디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 사람의 인격이 형성되는 과정은 대단히 복합적이다. 태어난 환경, 성장과정, 양육자의 가치관과 태도, 학교교육 등 그 요소는 다양하다. 타고 난 성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지만, 선천성·후천성의 논의를 떠나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성향의 문제, 성격 차이는 우리 가정에서 특히 부부사이에서 가끔 치명적인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대부분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 기폭제가 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 성인이 되어 한 공간에서 생활을 시작하면 아주 작은 습관, 대화법, 감정표현 등에서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유학을 다녀온 아버지와 대학졸업 후 전문직에 종사했던 어머니는 철저하게 자녀들(나 포함)의 인격을 존중하고 개인의사를 우선으로 해 주셨다. 성인이 되고 각자의 가정을 꾸린 후에도 예고(약속) 없이 서로의 가정을 방문하지 않는 것은 우리 가족의 불문율로 지켜지고 있다. 더불어 서로에 대해 기본적인 예절을 지키는 것도 당연지사이다.
남편은 무조건적인 사랑 속에서 자유방임적인 성장배경을 갖고 있다. 따라서 ‘기본예절과 절제’ 면에서 다소 취약점이 있다. 나는 지금도 남편에게 진심으로 칭찬하는 부분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던 시절에 술·담배를 배우지 않고 청소년기를 보내고 현재까지 지키고 있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본예절과 절제’라는 것은 타인에 대한 것이 아니고 남편 스스로에 관련되는 부분이다. 타인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정중하다. 부하 직원 혹은 후배에게도 반드시 존대어를 사용할 정도이다.
조금 우스운 얘기이긴 하나, 내가 말하는 기본예절의 첫 번째는 양치질이다. 음식을 먹은 후에는 하루 몇 번이고 양치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남편은 정규 식사 외에는 몹시 귀찮아 한다. 오랜 세월 끈질긴 설득 끝에 지금은 철저하게 치아관리를 하는 중이다.
절제면에서, 나는 아파서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면 낮잠을 자 본 경험이 없다. 은퇴 후에도 잠은 일과를 마치고 취침시간에 자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그런데 남편은 피곤하면 무조건 침대로 향한다.
휴일에만 보는 장면이었지만, 대낮에 왜 침대에서 낮잠을 자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참으로 무절제하게 보였다.
졸리면 스트레칭도 하고 잠시 실내를 걸을 수도 있고 차를 한잔 마시면서 졸음을 쫓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태도가 몹시 거슬렸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은, 각자의 패턴을 인정해서 많이 피곤한 경우 낮잠 자는 정도는 서로 묵인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나는 숫자와 도표를 싫어하는 반면, 남편은 거의 모든 상황을 도표와 그래프 그리고 숫자로 체계화한다.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서 실용적이고 합리적이지만 내게는 너무 어려운 작업이다. 남편은 대단히 이성적이고 매사에 팩트가 중요한 과학도이며, 나는 팩트보다는 공감이 먼저인 인문학도이다.
따라서, 사회적 이슈를 바라보고 판단하는데 관점의 차이가 상당하다. 각자의 전문지식을 기반으로 논리적 토론이 시작되면 한 치의 양보가 없다. 당연히 목소리가 커지고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할 때 우리의 원칙이 등장한다. 상호인격존중, 큰소리 금지, 그 자리에서 마무리하기, 웃으면서(억지로라도) 예쁜 말로 끝내기 등을 반드시 지키는 것이다.
서로가 양보하지 않으면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고집불통 성향 때문이다. “지구가 무너지는 일도 아닌데, 우리가 왜 이래야 되는 거지?!”
그 밖에 참 시시한 것들이 많다. 치약 짜기, 식탁매트 맞추기, 현관 신발정리, 외출 시 실내화 정리, 서재 책상정리, 침대·침구 정리 등 무던히도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들이다.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니 지금은 스스로 잘 정리하는 편이고 나 또한 적당히 무뎌지기도 했다.
나는 대화할 때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고 표정을 읽으며 적절하게 감정표현을 해야 한다고 배웠고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편과 대화를 하면,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언어로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한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순간 모욕감 마저 들 정도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대화법이란 말인가! 나는 폭발을 했고 남편은 어리둥절 감을 잡지 못한다. 지금은 무조건 하던 일을 중단하고 얼굴을 마주 보며 ‘말’로 대화하고 있다.
많은 부분이 개선되고 진화과정을 거쳤는데 여전히 미해결 과제 하나가 남아있다.
나: 호수에 핀 연 꽃이 참 예쁘네!
남편: 호수의 수질관리가 전혀 안 됐어, 오염도가 심각해. (그냥 예쁘다고 해주면 안 될까?)
나: 사람이 어떻게 저런 짓을 하지?
남편: 휴먼 빙(Human being)이니까 그렇지. (저 인간 아주 나쁜 놈이네, 하면 될 것을 … )
비평이나 판단 말고 공감만 해주면 어떻겠냐고 하면, 남편의 대답은 한결같다. “공감은 ‘마님’이 해주세요, 나는 팩트체크나 시비분별을 담당할 테니.”
서로 다른 우리, 좋은 점은 따라 하고 싫은 것도 지적하면서 닮아가는 우리, 우리 부부는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 이젠 건강하게 별일 없이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감사할 뿐이다. 남편은 시종일관 변함없이 나에게 다정하고 배려심 깊고, 한없이 관대하게 나를 지켜주는 영원한 내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