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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rene Jul 15. 2024

[가치관과 삶] 시(诗)를 말하는 사람들

<우리 이렇게 삽시다 - 공감과 배려의 삶>

▲ 조지아 카헤티(Kakheti)  © https://www.planetrentcar.com






가끔 만나는 TV프로그램 중 지나치지 않고 보게 되는 방송이 하나 있다. 특정한 지역, 국가, 민족 등을 중심으로 1인 여행자가 상당히 자세한 정보와 풍경을 소개한다. 내용은 꽤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역사, 지리, 문화, 자연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으며 문화에는 음식과 의상, 언어를 포함한 전통적인 특징들을 포함하고 있다. ‘세계테마기행’이라는 일종의 여행 프로그램이다.


이번에 관심 있게 본 나라는 조지아(Georgia, საქართველო)이다. 조지아 관련 영상을 몇 번 접하긴 했으나 특별히 기억에 담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오늘은 보는 내내 감탄을 하게 된다. 특별한 자연경관이 아니라 사람이 주는 신선함 때문이다. 여행자가 이동하면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평범한 거주민들이다.


▲ 조지아 어머니 상(Kartlis Deda)  © https://www.huffingtonpost.co.uk


여행 프로그램을 보거나 여행을 할 때, 지역 혹은 국가에 따라 그곳이 주는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 도시와 마을이 주는 느낌, 거리를 무심히 걷다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전해주는 그들 만의 표정을 만난다.


특별히 섭외한 사람들도 아니고, 유별나게 애국심이 강한 사람들도 아니며, 인상이 좋은 사람만 골라낸 것도 아니다. 그냥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이고, 날마다 고된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다. 어떻게 한결같이 저리도 아름다운 단어들을 사용하고, 깊은 주름사이에는 곱디고운 미소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인지, 신기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이번에, 그들의 아름다운 대화를 그대로 글로 옮겨 보기로 한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Tbilisi)에서


와이너리를 방문하던 중 관계자에게 묻는다. 

여행자: 조지아 와인이 왜 유명하지요? 

와인관계자: 와인은 조지아 사람들에게 피와 같은 것입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자부심이다.


도심에서 만난 한 시민이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시민: 한국을 좋아해요. 

여행자: 한국을 왜 좋아하세요?

한국어를 하는 시민: 한국은 이유 없이 멋있는 나라입니다. 

듣는 사람을 참 기분 좋게 만든다.


여행자가 버스에 오르는 순간 버스운전자가 밝은 얼굴로 먼저 인사를 건넨다.

운전자: 트빌리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행자가 한 시민과 조지아의 역사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데, 와인 잔과 검(劍)을 양손에 들고 있는 ‘조지아 어머니 상’을 의미하듯 조지아 속담을 말해 준다.  

시민: 우정과 불화는 형제입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언덕 꼭대기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는 백발의 숙녀에게 여행자가 묻는다.

여행자: 힘들지 않으세요?

숙녀: 이른 아침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면 몸과 마음이 편해져요. 베란다에서 커피도 마셔요. 

힘든 내색은커녕 환하게 웃는다.

숙녀의 초대로 그녀의 집 베란다에서 커피를 마시는 중 이웃집에서 낯선 손님을 보고, 아무 요청도 없는데 사탕과 음료와 디저트까지 끊임없이 먹거리를 가져다준다.

숙녀: 우리 동네의 인심이에요. 우리 동네에 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웃으면서 맞이해요. 어느 나라에서 왔는 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모두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게 중요하죠. 제 집은 항상 열려 있어요. 언제든지 오세요.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이런 마음이라면 전쟁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 우리 모두 다 같은 사람이잖아요  © EBS세계테마기행



메스티아(Mestia)에서


판자로 만든 작은 가게에서 만난 주인 할머니가 여행자에게 말을 건넨다.

할머니: 소녀처럼 달콤하게 말하네요. 

주름 가득한 할머니의 언어가 너무 예쁘다.

가게에서 양념류를 시식한 후 서로 작별인사를 건넨다. 

여행자: 할머니 손맛이라 맛있어요.

할머니: 평화롭게 살아요. 좋은 일들만 보다가 떠나고 싶으니까요.

인생을 많이 살아온 내게,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게 들린다.



바투미(Batumi)에서


낚시를 마치고 돌아온 낚시꾼에게 물고기 얼마나 잡았냐고 여행자가 묻는다.

낚시꾼: 물고기는 한 마리도 못 잡았어요. 물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여러분을 만나서 하루가 행복할 거예요.

하루를 허탕 친 노인의 웃음은 진정 행복해 보인다.


▲ 진정한 행복을 말하는 노인  © EBS세계테마기행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 마을에서


거리에서 처음 보는 마을 어르신들이 여행자에게 사탕을 건네며 말을 한다.

할아버지: 멀리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에 가서 커피 한잔 하실래요? 결혼을 안 해서 대접이 소홀해 미안해요. 이곳에 살면 영혼까지도 맑아져요.

조지아 사람들은 정말 영혼이 맑은 사람들 맞다.


▲ 조지아를 사랑하는 사람  © EBS세계테마기행



쿠타이시(Kutaisi)에서


여행자가 도시 거리에서 만난 소녀들과 대화를 한다.

소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고개 숙여 인사)!”

타국의 낯선 거리에서 한국말로 인사하는 소녀들 예쁘지 않을 수 없다.


꽃(데이지 화관)을 파는 할머니에게 여행자가 말을 건넨다. 

여행자: 꽃이 참 예뻐요.

할머니: 당신이 더 예뻐요. 꽃처럼 예뻐요.

자신이 만든 화관을 씌워주는 할머니는 시인이다, 물건 파는 사람이 아니다. 


시장에서 가게 주인 할머니를 만나 여행자가 말을 건넨다. 

여행자: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할머니: 그래서 저를 자주 촬영하나 봐요, 곧 세계 대스타가 될지도 모르죠. 

손가락 키스 사인을 날려주는 할머니의 미소는 아이처럼 순수하다. 



텔라비(Telavi)에서


시장에서 아주 나이 많은 주인 부부에게 여행자가 말을 건넨다. 치즈가게 할머니가 치즈를 선물로 건네준다. 

여행자: 파는 치즈를 왜 무료로 주세요?

할머니: 예쁘게 조지아어를 하는데 어떻게 선물을 안 줄 수가 있겠어요. 조지아어로 말해줘서 고마워요.

역사의 질곡을 견뎌온 할머니의 나라사랑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 조지아어를 사랑하는 할머니  © EBS세계테마기행


여행자가 쇼티스 푸리(Shotis puri, შოთის პური /배 모양의 조지아 전통 빵)를 만드는 여성과 대화를 한다.

반죽으로 커다란 하트를 만들어 가슴에 대고 제빵사는 “마이 하트”하며 여행자에게 환한 미소를 보낸다. 

제빵사: 마음에 진심을 담아 일을 대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어요. 저는 이 일을 정말 사랑해요. 한국어로 사랑해요(მიყვარხარ)를 어떻게 말해요?

여행자: 사랑해요.

제빵사: 사랑해요(한국말로).

여행자도 하트 모양으로 빵을 구워 낸다. 

제빵사: 따뜻한 마음으로 만든 빵이에요. ‘쇼티스 푸리’는 예전부터 ‘어머니의 빵’이라고 불렸어요. 이 빵의 진정한 이름이죠. 아직도 이 빵 냄새만 맡으면 어머니가 생각나고 그리워요.

제빵사: 사랑해요(한국말로).

따뜻한 마음으로 평생 빵을 구운 할머니의 미소는 어머니의 사랑이다.


▲ 할머니의 미소는 어머니의 사랑이다  © EBS세계테마기행


그들의 입에서는 ‘시’가 흘러나온다. 말이 아니다. 세월의 흔적이 깊은 주름이 되고, 표정은 더 할 수 없이 따뜻하고 선하다. 고된 삶으로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순수한 미소가 깃들어 있다. TV화면 속에서 만난 거리의 사람들을 통해, 내 마음속에 새로운 ‘조지아’가 세워졌다. 그곳을 찾아가 그들을 만나고 싶다. 


높은 언덕에 자리한 할머니의 조그만 베란다에서 이웃들과 둘러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 가본 적 없는 조지아가 문득 그리워진다. 

한 사람의 말은, 누군가를 위로하기도 하고 누구에겐 아픈 상처를 주기도 한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감사와 사랑을 담은 말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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