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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팟캐김 Jul 27. 2023

당신이 생각하는 두려움의 포인트는?

의지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사람들 각자에는 '두려움의 포인트'가 있다. 우리가 배운 정석대로라면 당연히 이겨내야겠지만, 사람 일이 그리 쉬운가. 번번이 무너질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내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닌가, 내 노력이 모자라서 그런 게 아닌가'라며 자책하곤 한다. 그 자책이 일견 맞을 수도 있지만, '의지를 넘어선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는 이유도 있다. 


가령 다이어트는 매번 하는 데 살이 안 빠지는 사람들. 내 고민이기도 한데, 먹는 것을 남보다 줄여도 체중계 속 눈금은 아래로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이가 들 수록 이 같은 경향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식단을 짜서 할 수 없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의 루틴을 깨면서까지 부단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점. 누군가에게는 핑계로 들릴 수 있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절실한 문제일 수 있다. 동료들과 어울리며 조직에 적응해야 하는 일반적인 직장인이 저녁 약속을 가지 않고 점심도 홀로 자기만의 식단으로 먹기는 어렵다. 


호르몬 문제도 있을 것 같다. 젊은 남성, 특히 남성 호르몬이 넘치도록 나오고 성장 호르몬까지 적지 않다면 운동 효과가 크다. 특히 헬스 등에 있어서. 약물에 의존하는 보디빌더들이 많은 것도 이 같은 이유가 클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40대 중후반 남성이 이제 막 운동을 시작했다면, 운동 효과를 크게 기대할 수는 없다. 호르몬은 정말 천천히 변화하는 것일 테니까. 


뭔가 결심을 했다면, 자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지하고, 그 부분을 개선해 나가는 게 순서인 듯하다. 이른바 '메타인지'라고 할까,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어떤 환경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는 것이다. 무턱대고 덤벼드는 것도 20대에게는 일견 맞을 수 있지만 40 이후부터는 달라야 한다고 본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적을 수밖에 없고 그 시간을 적절하면서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니까. 30대 중후반 어느 정도 완숙된 직장인에게 그래서 '일머리'가 요구되는 것이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보자. 


내가 느꼈던 두려움의 포인트. 지난해 6월 회사 노조위원장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딱 1년이지만, 백여 명이 넘는 구성원들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책임이 막중했다. 잘한다고 해도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자리가 그 자리다. (잘한다는 평가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고 본다.)


당시 나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 회사 경영진과의 있을 협상 전 '샅바 싸움'에 대한 두려움, 누군가 뒤에서 나를 평가하며 폄훼할 것이라는 두려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까라는 두려움 등. '내 능력과 비교해 넘칠 만큼의 요구를 내가 다 수용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컸다. 


다행이었던 점은 '시간'이 비교적 충분하다는 점이다. 상시직으로 위원장을 오로시 맡게 되니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전 위원장의 성과 덕에 임금협상 시기도 많이 당겨져 있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임금협상 타결을 미루면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얘기다. 성급하게 서두르다 일을 그르칠 염려가 생각보다 적었다는 얘기. 


그 시간의 한편을 '나름의 준비'를 하는 동시에 '자그마한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 쓰기로 했다. 평생 날 두렵게 만들었던 '두려움'을 타파하면서, 내 앞에 보이는 두려움들을 물리쳐 가자는 것. 내가 평생을 무서워하고 피하려 했던 것을 '직면'한다면, 내 눈앞에 닥친 것들에 대한 두려움도 '직면'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물에 대한 두려움은 그전부터 이겨내고 싶었다. 그때마다 '시간이 없어서', '때가 아니야', '부끄러워서'라는 갖가지 이유를 대고 피해 갔다. 사실 이런 핑계는 온당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직장인으로서 수영장에 가는 시간을 내기란 어렵다. 헬스클럽처럼 동네 상가 건물마다 있는 것도 아니었고. 


위원장직을 수행하게 되면서 확보하게 된 '시간에 대한 융통성'은 이런 이유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남은 것은 '저지르는 일', '초보자로서 부끄러움을 이겨내는 일' 등이다. 저지르는 일은 '등록'을 하고 '내가 수영장에 갈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옆동네 50m 레인이 있는 수영장을 온라인으로 등록하고 첫 강습에 나갔던 게 2022년 10월이었다. 수영모도 제대로 쓸 줄 몰라 바둥거렸던 때였다. 물속에 코와 입조차 담그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울 정도로 한심한 모습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꽤 괜찮았던 모습' 같다. 40년 넘게 날 두렵게 만들었던 어떤 대상을 직면했고, 피하지 않고 있었으니.... 


남들이 보지 않는 자유 수영 시간에는 유아풀에서 바둥거렸다. 뜨기부터 시작해서 발장구까지. 젊은 그들에게 너무나 쉬워 보였던 일들을 하나하나 연습하듯이 했다. 


그나마 위안이 됐던 게, 두려움이 서서히 줄어들었다는 게 느껴졌다는 것. 그게 성취감으로 와닿았다. 자유수영 시간에 남이 보든 말든 유아풀에 몸을 담갔던 이유가 됐다. (참고로 자유수영시간에는 유아풀에 유아가 없다. 어린이에게 민폐 끼칠 일은 없었다는 것) 


너무 무리를 해서 한 달 만에 대상포진이 왔고, 석 달은 쉬어야 했지만, 물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떨어낼 수 있었다. 1m 남짓 풀에 잠수는 할 수 있게 됐으니... 


지나와 올여름 생각해 보니, 지난 1년(노조 위원장 1년)은 뜻깊었다고 생각한다. 2022년 6월 말부터 2023년 6월 말까지. 나를 둘러싼 두려움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직면할 수 있게 한 용기를 줬으니까. 그 용기는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에서 상당수 비롯됐다고 본다.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자그마한 성취감을 느낄 수 시간이 되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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