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에 대한 정의 혹은 규정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얼굴 생김새 등의 외모가 될 수 있고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나 자신의 지위' 등도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같은 개인 미디어가 발달된 오늘날에는 그곳에 드러난 내 모습이 '나 자신'으로 비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에 '풍요로운' 나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는 것도, 내가 남들에게 그렇게 규정되기를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진과 몇 가지 글귀, 영상으로 드러난 내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내 모습을 상상하고 규정하니까.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각 연예인들은, 자신의 성격이나 됨됨이보다는 그 극에 맞는 '캐릭터'로 자신을 규정화한다. 일종의 연극일 수 있는데, 사람들은 '진짜 그 사람'으로 본다. SNS 세상 속 '나타나는 나'도 그와 같지 않을까 싶다.
정치의 세계에서도 이런 '캐릭터'화는 극적으로 만들어지곤 한다. 극우적 발언으로 지탄을 받았던 김진태 강원도지사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샤이(shy)'한 사람이라고 한다. 말 수도 적고 자기 자신을 잘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치 세계에서 그가 내놓는 강성발언을 생각해 봤을 때 의외라는 평가가 나온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자신을 캐릭터화했을 뿐, 본래 자기 모습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비슷한 맥락에서 고(故) 노회찬 정의당 대표도 '그렇다'라고 볼 수 있다. 정의당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노 대표도 무던히 노력했다. 마음에 드는 글귀나 웃기는 어구가 있으면 메모했다가 썼다고 한다. 라디오방송이나 TV토론회에 나서 재기 넘치는 입담을 펼쳐 보였던 것도 일종의 연극이자 '캐릭터화'였던 것 같다. 고결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달리 말하면 방송처럼 공개되는 자리에서 보이는 자리에서는 '무대 연기자'였던 것 같다. 집이나 아는 지인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고. 우리는 그의 '캐릭터'를 보고 '그 사람 자체'라고 착각을 했었을 것이다. 본인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캐릭터를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교류하는 보통의 사람도 이런 캐릭터를 둘 수밖에 없다. 직급과 직위, 직업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집에서는 쪼잔한 아빠지만, 회사에서는 중후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이들 장소는 무대가 된다. 정치인들에게는 국회와 방송이 무대인 것처럼, 보통의 우리들에게 있어 직장과 같은 삶의 터전이 무대가 된다. 각자 캐릭터를 갖고 부지런히 연극을 한다. 때로는 그 캐릭터가 '나'라고 착각한다.
이런 캐릭터는 어떻게 형성되고, 지탱하는 힘은 또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난 각자 개인들이 갖고 있는 '삶의 루틴'이 주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무한도전 캐릭터도 회차를 거듭하면서 형성된 '루틴'의 결과물일 수 있으니까. 이 루틴은 내 캐릭터를 단단하게 해 주고, 때로는 그게 내 캐릭터를 대변해주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영화 '인사이드아웃'은 어른들을 위한 영화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의미가 깊다. 아이들을 위한 만화 영화라고 하는데 실은 우리의 자아가 어떻게 형성되고, 성장하고, 때로는 왜 우리 자아가 무너지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라고 본다.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어릴 적 주인공의 자아를 지탱해주고 있던 '루틴'이 하나 둘 무너지는 모습이다. 극 중 주인공은 아이스하키에 흥미를 느꼈고, 이는 그의 삶에 있어 크나큰 기쁨이었다. 아이스하키를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고 자신감을 느꼈다.
새로 이사 온 곳에서 아이스하키를 그전처럼 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된다. 주변 환경의 극심한 변화가 주인공 본인의 루틴에 영향을 줬고, 심리적으로 지탱하기 어렵게 된 것. 결국 무너지고, 감정의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어린 시절의 자아가 새롭게 알을 깨고 새 세상으로 나가면서 느끼는 고통이라고 할까.
알을 깨고 나오는 고통은 컸지만, 새롭게 성장한 본인에 맞는 새 루틴을 갖게 되고, 자아가 형성된다. 영화는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면서 여러 교훈을 준다. '나 자신'이란 게 어떻게 보면 주변 상황과 루틴, 이를 둘러싼 여러 감정들과 함께 복합적으로 형성된 것이고, 각자 나 자신의 상태와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것.
심리적으로 힘들고 때론 병이든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을 지탱해 왔던 것들이 붕괴되는 것과 크게 연관이 있을 수 있다. 그게 자아이니까. 손가락 하나를 다쳐 피가 나면 온몸이 쑤시는 것처럼, 자그마한 변화도 내 자아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 예로, 마음이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 보면, 평소 그가 해왔던 많은 것들에 대해 '손을 놓는' 상황을 볼 수 있다. 무기력감이 그렇게 만들 수 있지만, 루틴이 흐트러진 상태에서 외부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계속되다 보니, '평소 유지해 왔던 나만의 캐릭터'를 놓게 되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게 휴식이 아닐까. 무너진 루틴을 다시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갖거나, 혹은 새로운 루틴을 시작하면서 성취감을 맛보거나.
내향형인 사람, MBTI에서 I 성향인 사람일수록, 외부에 나가기 전에 단단하게 나 자신을 정립해야 한다. 외부 자극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확고한 '나만의 정체성'이고, 이를 견지해 주는 게 바로 루틴이다.
의외로 단단한 캐릭터로 외부 스트레스(악성 댓글 혹은 질책)에 잘 견디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들만의 확고한 루틴을 갖고 있다. 그 안에서 본인의 삶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다. 외부 스트레스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삶을 유지하고 변화를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강한 사람'이라고도 한다.
왠지 요새 힘들고, 의욕이 떨어지고 무기력감을 느낀다? 내 일상 어느 부분에서 루틴이 흐트러졌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내 신체의 모습이, '평소 내가 무엇을 먹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면, 내 캐릭터는 '평소 내가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요새 뭔가 감정의 날이 서 있거나, 버티기 힘들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잃었던 루틴 하나하나 회복해 가는 게 의외로 꽤 괜찮은 처방법이 될 수 있다. 루틴이 회복되면서 기분도 괜찮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