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사용법 -2
지난해 9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단식을 하던 때였습니다. 이 전 대표의 단식을 놓고 국민적 관심이 높다보니 기자들과 정치 유튜버들, 지지자들이 국회 앞에 상주하다시피 했습니다. 국회 본청 앞은 여러 사람들이 뒤엉켜 복잡할 정도였죠.
그러다 사고가 납니다. 한 70대 노인은 국회 민주당대표실 앞에서 혈서를 쓰겠다며 자해 소동을 벌였습니다. 공교롭게 전날 극렬 지지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커터칼로 국회 경찰에 상해를 입히는 사고를 일으킵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되자 국회 의장이 나섭니다. 김진표 의장은 국회 경비대를 동원해 정식 출입증을 받지 않은 사람들을 밖으로 몰아낸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국회에 못 들어오게 막았던 것이죠.
김 의장은 국회 경찰을 국회 경내에 배치합니다. 사안의 엄중함을 경고한 것이죠. 국회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국회의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 우두머리는 국회의장
국회는 크게 국회의원과 이들을 지원하는 스텝 조직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프로축구 구단에 경기를 뛰는 선수가 있으면 이들을 지원하는 클럽하우스 직원들이 있거나 전투에 나가는 주력부대가 있으면 후방에서 이들을 보급해주는 후방부대가 있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하긴 세상의 거의 모든 조직이 주력과 이들을 '서포트'하는 지원 부서로 나뉘긴 하죠.)
국회의장은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의 '우두머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4년 국회 회기 동안 전반기, 후반기 이렇게 나뉘어 국회의장이 의원들의 투표로 선출됩니다. 대게는 5선에서 6선 이상의 국회의원 중 가장 연배가 높은 어른이 맡게 됩니다. 다수당에서 국회의장 입후보자가 나오긴 합니다만, 여야 화합 차원에서 전반기 여당, 하반기 야당에서 국회의장을 맡기도 합니다.
21대 국회는 전반기와 하반기 모두 다수당인 민주당에서 국회의장이 나왔습니다. 전반기는 6선 의원인 박병석 민주당 의원이 후반기는 5선 의원인 김진표 민주당 의원이 했습니다. 웬만해서는 1당이 국회의장을 합니다.
다만 국회의장은 당적을 갖지 않은 중립적인 위치에 있어야합니다.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 혹은 '이심전심'이 여러모로 통하기 마련입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있는 당의 이해 관계에 더 민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국회의장을 품고 있는 정당이 법 통과 등에 있어서 유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만큼 국회의장은 입법 과정에 있어 중요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들이 뽑은 국회 내 최고 수장이기에 의전 서열도 대통령 다음인 2위입니다. 직접 경호가 붙는 등 대우가 보통 국회의원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지죠. 그래서 다선 의원들은 다들 국회의장 해보는 것을 염원으로 갖고 있습니다.
◇국회의장 다음에는 국회 부의장
보통 본회의가 열리면 적게는 수십개, 많게는 200개 가까운 법안이 올라옵니다. 본회의에서 의원들의 다수결 찬성으로 통과가 됩니다. 본회의 상정 후 표결까지 1분이라고 쳐도 1~2시간은 너끈히 지납니다. 또 필리버스터와 같은 이벤트가 국회 본회의장 안에서 벌어지면 하루 꼬박 국회 본회의장을 지켜야 합니다. 국회의장 혼자서 이 회의를 모두 진행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국회의장 밑으로 국회 부의장 2명이 있게 됩니다. 이 자리는 사이좋게 여야가 한 자리씩 가져갑니다. 21대 국회 후반기에는 김영주, 정우택 두 의원이 국회부의장을 맡았습니다. 국회의장이 되면 탈당을 해야하는 국회의장과 달리 이들 국회 부의장은 자신의 당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재미난 것은 국회 부의장을 거친 의원들이 유독 시련이 많다는 점입니다. 김영주 부의장은 민주당에서 4선을 했지만, 22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서 사실상 탈락했습니다. 현역의원평가 점수를 낮게 받으면서 '이젠 후배들한테 길을 내줘라'라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받게 된 것이죠. 발끈한 김 부의장은 민주당을 탈당했고 국민의힘에 입당해 22대 총선에 출마하게 됩니다.
정우택 부의장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공천까지 받았으나, 이후 돈봉투 문제가 불거집니다. 후에 서술하겠지만, 국회의원직 자체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과 같은 아슬아슬한 자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 부의장에게는 억울할 수도 있긴 합니다. 결국 정 부의장도 공천 취소가 되게 됐죠.
이는 한국 국회의 특징과 관련 있습니다. 국회 부의장 정도 되면 4선 이상 한 의원들인데, 이들이 5선, 6선 가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쯤 되면 오래하셨으니 후배들에게 길을 내주시라"라는 정서가 강한 것이죠. 중앙당에서 직접 주관해 후보자 추천을 하다보니까 그렇습니다. 지역당내 입지가 확고하면 90살 넘어서까지 의원직을 내놓지 않는 미국 정치계와는 좀 다른 모습이죠.
◇국회의원들의 '전공' 상임위
국회의장 밑으로 상임위원회가 각각 있습니다. 국회운영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정무위원회 등 17개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각종 법안을 논의하고 심의해 본회의에 올립니다.
참고로 모든 국회의원들은(국회의장 제외) 이들 1개 혹은 2개의 상임위에 소속돼 활동합니다. 대학에서 자기 전공에 따라 수업을 듣듯이 의원들 저마다 자기 전공을 갖고 법안을 만들고 고치고 논의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후술하겠지만 상임위마다도 의원들의 선호도가 각기 다릅니다. 한 대학 안에서도 인기 전공과와 그렇지 못한 과가 나뉘듯이요. 여성가족위원회처럼 인기가 덜한 상임위는 오려는 의원이 없다보니 다른 상임위와 중복으로 맡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방송법을 개정해야한다고 하면 소관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 논의가 됩니다. '나방송'이라는 의원실에서 방송법 개정안 법안을 발의를 하면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를 하고 타당하다 싶으면 과방위 전체회의에 올려 심사를 합니다. 그래서 통과가 되면 법제사법위원회에로 갑니다. 이곳에서 또 수정되고 첨가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법제사법위원회는 대개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가게되는데, 상임위에서 올린 법이 법리적으로 맞는지 최종 심사를 거치는 곳입니다. 본회의 상정 직전 최종 검토를 하는 것이죠. 기존 법질서를 손상시키지 않나 살펴봅니다.
이는 제헌국회 때부터 이어져 온 것인데, 당시 법을 잘 아는 의원들이 많지 않다보니 어쩔 수 없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의원은 '법사위가 굳이 필요한가'라고 묻기도 합니다. 과거와 달리 국회 내에서도 법조인들이 많아졌고 국회 상임위 내에서도 법사위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상임위와 관련된 자세한 정보는 이곳 링크로.. https://www.assembly.go.kr/portal/main/contents.do?menuNo=600154 )
◇그밖에 중요한 지원부서
국회의원들이 입법 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서 국회 내 살림을 하는 곳이 국회 사무처입니다. 국회사무처의 최고 수장이 국회사무총장입니다. 여러 스텝 조직들이 있습니다. 공보, 감사, 관리, 인사 등을 하죠. 국회의장 등에 대한 경호도 이곳 부서에서 합니다.
국회의원들의 입법활동을 직접 도와주는 부서도 있습니다. 국회예산정책처와 국회입법조사처가 대표적입니다. 두 조직 모두 중요한데 그래도 더 중요한 곳을 꼽으라면 국회예산정책처를 뽑을 수 있습니다. 왜냐, 수백조원에 달하는 국가 예산과 기금 등에 대한 연구·분석을 하는 곳이 이곳입니다. 실제 예산은 정부 내 기획재정부가 짠다고 해도 제대로 짰는지 안짰는지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나라 살림에 대한 연구를 하는 곳인지라 독립성도 엄격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특정 의원이 나서서 '우리 지역에 얼마좀 넣어줘'라고 민원을 넣지 못하도록 하는 곳이죠.
이들의 역할은 연말이 다가올 수록 빛납니다. 10월 국정감사 시즌이 끝나면 예산 시즌이 시작되는데, 그간 이들이 낸 보고서와 연구분석 등이 빛을 발하는 것이죠. 국회의원들도 이곳 분석을 토대로 정부 예산에 질의를 하곤 합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입법과 정책에 관련된 사항을 조사하고 연구합니다.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직접 돕는 곳이죠. 이들의 기능은 현행 법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 법으로 개선해야하는 부분 등을 연구합니다. 법 해석이 모호할 때 이곳에 의견을 묻기도 합니다.
한 예로 공공의대, 지역의사제와 관련돼 헌법에 위배되는지 모 의원실에 문의한 적이 있습니다. 헌법에 있는 '직업선택의 자유'에 어긋나는지 물어본 것이죠. 지역의사제는 의사들이 의무적으로 특정 지역에서 근무토록 하는 제도입니다. 지방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인데, 국가에서 의사가 되기 위한 비용 일부를 보조하는 대신 '의무복무' 같은 해당 의사에게 지우는 것입니다.
입법조사처에서는 '학사장교' 등의 예를 들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라는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그 의원실은 이 의견을 근거로 지역의사제 입법을 더 추진하게 됐습니다.
또다른 예도 있는데 '노란버스법'입니다. 입법조사처에서 소풍이나 수학여행에 학생들을 실어나르는 전세버스에 대해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법리상 '학생 통학은 노란버스여야 한다'라는 것에 어긋난다고 본 것이죠. 경찰이 단속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전세버스 업계는 난리가 났습니다. 국회는 부랴부랴 이를 보완하는 입법활동에 나서야 했습니다.
일반 시민들에게 필요한 국회 기관도 있습니다. 바로 국회도서관입니다. 국회의원과 이들 지원 부서 직원들은 아무래도 많은 자료를 참조해야 합니다. 각종 논문과 책을 바로바로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있는 곳이 국회도서관입니다. 나라 예산으로 운영되는 도서관이다보니 국내 여느 도서관보다 규모가 큽니다.
국회 도서관은 국내외 논문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학술논문과 공공간행물을 의무적으로 나오는 족족 받아서 보유해야합니다. 이를 '납본'이라고 합니다. 참고문헌을 찾아야 하는 대학생이나 석박사, 연구원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디지털화되어 일일이 국회도서관을 찾는 일이 줄었지만, 정기간행물, 학위논문, 대학 간행 논문 등에 있어 많은 양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도 열람은 가능합니다. 관외 대출, 그러니까 책을 대출받지는 못합니다. 전현직 국회의원과 국회소속 직원들이 법령에 따라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식 출입등록이 된 기자들도 대출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