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 시대 왜 우리는 글을 못 쓰는가
요새 필사를 한다. 두어 달 정도 됐다. 만년필을 오른손에 들고 구독 중인 시사 잡지의 기사를 주로 베껴 쓴다. 김훈이나 김영하처럼 평소 닮고 싶은 문체의 작가가 쓴 수필을 쓰기도 한다. 30~40분여 시간이 지나고 노트 안에 빼곡하게 들어찬 글자들을 보면서 나름 뿌듯함을 느낀다. 퇴화됐던 '손으로 글쓰기' 근육이 조금씩 살아난다라고나 할까.
그전에도 필사를 가끔 했다. 기자 초년생 때, 슬럼프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등이다. 정갈하게 잘 쓰인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다 보면 마음이 정리되고 글도 수월하게 써지는 것 같다. 그러다 잊곤 했다. 바쁘게 살다 보니 필사라는 '느림의 과정'을 답답하게 여겼던 이유가 컸다.
두어 달 전 우연하게도 필사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 마음이 답답하던 때였다. 10년 넘게 해 왔던 '글 쓰는 일'인데 왠지 자신감을 잃은 듯했다. 나름 차장급이 됐는데 여전히 맞춤법과 글의 구성에 있어 지적받는 게 신경이 쓰였다. 어쩌면 '글쓰기'라는 내 직무의 가장 기본적인 과정을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한 가지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프랑스 축구 선수 에릭 칸토나와 관련된 얘기다. 지네딘 지단의 선배이기도 한 칸토나는 1990년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첫 전성기를 이끌던 선수였다. '한 성깔'하는 선수로 유명했던 칸토나는 실력도 발군이었다.
그런 칸토나가 공을 들여했던 루틴 하나가 있었다. 공을 공중에 뻥 차서 띄어 올린 다음에 이걸 받는 연습이었다. 축구용어에 대해 잘 모르지만 공중의 볼을 몸으로 잘 받아 놓는 것을 '트래핑'이라고 한다. 이런 트래핑 연습에 시간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축구도사라고 할 수 있는 칸토나가 굳이 안 해도 되는 기본기 연습이다. 성깔 있는 고참이 기본기 연습에 공을 들이는 모습은 프로 이력을 막 시작하던 베컴, 스콜스 등의 선수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고 한다.
글을 쓰는 펜기자에게도 기본기는 중요하다. 문맥에 맞는 올바른 단어를 쓰면서 정갈한 문장을 쓰는 것이다. 기본기가 잘된 문장은 주술호응이 잘 되어 있는 짧은 문장이다. 문장을 짧게 쓰는 것을 습관화하면 잘못된 문장을 쓰는 실수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연습을 통해 완성해 나갈 수 있는 데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감각'도 중요하다.
(한동안 '텍스트의 시대는 종말을 맞은 게 아닐까'라면서 영상이나 팟캐스트 등 '잡기'에 가까운 것들에 신경을 쓴 적이 있다. 그러다 기자의 가장 기본이 되는 '문장'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됐다.)
이 감각을 지각의 영역을 떠나 '몸이 반응하는 것'이라고 지칭한다면, 평소 좋은 글과 좋은 문장을 읽는 게 중요하다. 근묵자흑이라고 했던가, 좋은 문장을 가까이한다면 무의식적으로 괜찮은 문장을 쓰게 된다. 반대로 유튜브 영상 등에 뇌가 절어 있다면 좋은 문장 쓰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건 이렇게 예를 들을 수 있다. 이미지나 영상은 뇌에 빨리 각인이 된다. 이미지화된 영상을 그대로 머릿속 기억장치에 넣어두는 것이다. 깊게 사고할 필요가 없다. 보이는 그대로 느끼고 말하면 되니까. 그 내막을 모르니까 쉽게 믿고 흥분한다. 자극에 반응할 뿐 그 내면의 사고는 둔화됐기 때문이다.
내가 받아들인 정보를 비판적으로 사고한다고 해도 이를 문장으로 변환해 말(言)로 바꾸기 힘들다. 글과 텍스트로 들어온 정보를 해체하고 사고하는 과정에 익숙해 있지 않다 보니, 내 생각을 글과 텍스트로 합성하는 일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바일 영상에 익숙한 사람들일수록 자기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어 글로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영상과 이미지에 노출될수록 '나의 사고력'은 퇴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이렇게 도식화할 수 있다. 영상과 이미지를 먹기 좋고 흡수되기 쉬운 단당류 식품으로 비유할 수 있다. '쇼츠 같은 영상을 반복적으로 본다는 것은 빵이나 피자, 튀김 같은 '맛있으나 살찌기 쉬운' 음식을 먹는다는 것과 같다.'
직접 글을 쓰면서 비판적 사고를 하는 것은 '뇌가 움직이는 것', 다시 말하면 운동과 같다고 본다. 평소 운동을 규칙적으로 한 몸이 건강하듯, '사고'라는 뇌 활동을 한 이들의 뇌도 건강할 수밖에 없다. 직업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이런 뇌 활동이 더 활발해야 한다.
그런데 맛난 단당류 음식(이미지, 영상 등 숏컷)은 많고 몸에 좋은 다당류 음식(책 등) 접촉 빈도가 낮아지다 보니 뇌활동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을 느꼈다. 빵류 즐겨 먹는 배 나온 축구선수가 그라운드 위를 '헉헉' 뛰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런 이유로 억지로라도 기본기 연습을 하기 위해 필사를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나 또한 적지 않은 시간을 유튜브 쇼츠나 영상을 보면서 타임킬링을 하면서 책을 멀리하는 것 같았다.
하나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모바일에서 무언가를 읽던 습관이 일반 책을 읽을 때, 누군가의 기사를 볼 때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내용을 다 파악하면서 읽는 게 아니라 듬성듬성 읽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난독증의 원인 중 상당수는 이런 '듬성듬성 읽는 습관'에서 기인된 것일 수도 있다.
일반 독자야 듬성듬성 읽어도 큰 상관이 없다. 조기축구에 나온 아마추어가 볼 트래핑에 실수를 범한다고 해도 '망신'이라고까지 보지는 않으니까. 반면 직업적인 프로축구 선수가 볼 받는 것에 실수를 한다면 망신의 수준을 넘어선다. 반복적이라면 직업 축구 선수 생활을 더는 이어나갈 수 없을 것이다.
기자도 마찬가지. 듬성듬성 글을 읽는 습관은 본인에게 독이 될 수 있다. 자기가 써 놓은 기사의 오타나 비문을 1차적으로 본인이 잡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수 있어서다. 내가 그랬다.
따라서 책을 필사를 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면서 옮기는 것은 '구조적으로' 듬성듬성 읽는 것을 막아준다. 쇼츠나 모바일 속 짤이나 단편적인 글에 절어 있는 내 뇌가 다시금 제자리를 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쇼츠의 시대에 필사는 더 필수적일 수 있다.
다행히 유튜브 등에서도 필사에 대한 콘텐츠가 올라오고 있다. 필사를 한 덕분에 '긍정적인 효과를 봤다'는 소감 등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당연하게 여겼던 '우리의 기본 생활 방식'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하자면, 디지털 시대에 '생각하는 근육'이 퇴화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쉽게 흥분하면서 선동되는 식이다. 이른바 '비만화된 뇌'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럴 때 '날씬하면서 건강한 근육질의 뇌'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개인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