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산업은 '인간형 로봇'에 수렴하고 있다
흔한 말로 '위기 뒤에 기회가 있다'라고 하는데, 경제 순환을 보면 이게 잘 드러난다. 불황에 빠지면서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이후 회복되면서, 그 회복되는 경제를 주도하는 산업군이 등장한다. 아니, 잠재되어 있다가 그 호황기 때 촉발되듯 시장이 형성된다고나 할까. 큰 틀에서 봤을 때 컴퓨터가 기반된 IT산업이 그런 듯하다.
'채팅창 기준' 사람처럼 대답해 주고 대화가 가능한 생성형 AI가 나왔고, 사람처럼 읽고 쓸 수 있는 서비스가 대중화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차세대 먹거리 산업은 무엇일까. 이번 편은 짧은 식견이지만 한번 예상해보려고 한다.
◇위기 뒤에는 주도하는 새 산업이 나왔다.
위기는 새로운 산업의 촉발을 낳았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논쟁이 될 수 있지만, 새 산업이 경제 성장을 이끌었고, 또 경기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그 산업의 투자를 촉진했다.
1980년대를 보자. 당시 전 세계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1982년까지 인플레이션을 진하게 겪었다. 폴 볼커 당시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기준금리를 20% 정도까지 올리면서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했다는 얘기는 이미 유명한 얘기다.
한국도 호되게 그 시기를 겪었다. 1979년 10·26, 12·12를 겪으면서 정정불안을 우려했고 1980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제2차 석유파동에 따른 고유가도 한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에 걱정거리였다.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떨어질 때가 있으면 올라갈 때가 있고, 올라갈 때가 있으면 떨어질 때가 있다는 점이다. 경기 순환에 따라 불경기는 다시 호경기로 바뀌었고 인플레이션이 잡히면서 전 세계는 저금리 시대를 맞이했다. 값싸진 달러는 전 세계에 개발도상국 투자시장에 스며들었고 한국은 3저호황을 맞았다. (저금리, 저유가, 저달러)
이때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던 비즈니스가 PC산업이었다. 기업에서나 쓰던 대형 메인프레임에서 개인용 컴퓨터로 번역되는 PC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기업에서도 PC가 본격적으로 쓰이게 되면서 오피스 환경이 바뀌었다.
다만 이때까지 PC는 값비싼 문서작성기 혹은 계산기 정도였을 것 같다. 일반 개인이 정보 습득용 혹은 교육용으로 쓰기에는 문턱이 높았다. 값비싼 게임기 정도로 쓰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린 PC가 대전기를 맞이했던 때가 인터넷 시대였다. 한국을 기준으로 봤을 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닥쳤던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는 신성장동력산업으로 인터넷에 주목했다. 새 산업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당시 한국정부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선도적으로 초고속인터넷망을 깔았다. 그 기반 위에 젊은 사업가들이 벤처 기업 시대를 열었다. 성장성이 유망한 기업들이 줄줄이 나오면서 증시 또한 '붐'을 맞았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도 같은 맥락에서 새 전기를 마련해 줬다. 경기 하강 국면에서 이를 타개할 만한 새 비즈니스가 필요했다. 직전 해 애플이 내놓았던 아이폰과 무선통신기술이 기다렸다는 듯이 이 '새 비즈니스'의 자리를 꿰찬다. 바로 모바일 시대다.
참고로 애플의 2007년 아이폰이 '21세기 혁신기기'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PDA라고 해서 비슷한 기기나 전화는 이전에도 나왔다. 소위 말해 '얼리어답터'들은 이른 PDA를 들고 다니면서 이메일 등을 확인했다. 블랙베리 핸드폰도 그즈음 비즈니스맨들 사이에서 돌아다녔다. PC로 싸이월드를 하던 그 시절(2010년대) 아이폰보다 먼저 나왔던 PDA나 블랙베리에 더 '문화적' '기술적'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아이폰은 주류가 됐고 PDA와 블랙베리는 왜 그런 길을 걷지 못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운대'가 컸다고 본다. 아이폰은 '새 시장'에 대한 열망이 컸던 때에 '영웅'처럼 나타나줬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2010년대 중후반은 연준의 테이퍼링과 살짝 불경기에 대한 우려가 나왔던 때다. 그때 인공지능(AI)이 다시 등장했다. 2016년 알파고 쇼크다.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면 '인간의 직관'을 앞설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다. 이후 AI가 우리 비즈니스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많은 고민과 연구가 잇따랐다.
◇모바일 시대 이후에는 생성형 AI시대?
모바일 시대 도래 이후 IT업계에서는 '그다음 성장동력'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후보 중 하나로 증강현실(AR)과 가상현살(VR) 등이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이들 스타트업에는 투자금이 몰렸다.
그러던 중 대 분기점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마련해주지 않았나 싶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넘치도록 유동성을 '때려' 넣어서 경기 급강하를 막았지만, 2020년 중반기까지만 해도 경기에 대한 우려가 컸다. 10여 년 만에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겪을까 걱정을 많이 했던 때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잠잠해지던 2022년 말 챗GPT가 선보였다. 챗GPT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그 결과 더 높은 수준의 사고력을 보여준다. 인간이 질문하는 것에 '척척' 대답해 준다는 점에서 '튜링테스트' 정도는 넘어섰다.
챗GPT가 나왔을 때만 해도 '이걸로 어떻게 돈을 버나'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2000년대 초 닷컴기업들이 했던 고민과 비슷했다. 전에 없던 새로운 산업이 나타난 것인데, 돈으로 연결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다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성공적으로 풀어내면 성장하는 기업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됐다. AI 기업들도 이런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챗GPT류의 생성형 AI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는 이 AI 서비스로 그림을 그려 자신의 글에 끼워 넣고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챗GPT 등과 연계한 어학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얼마 전 머리가 희끗한 노 변호사를 만났는데 그는 '클로드'를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법률 관련 질문에서는 클로드가 챗GPT보다 더 전문적이다는 칭찬이었다.
◇AI 그다음 비즈니스는?
앞으로의 10년은 챗GPT류의 생성형 AI가 만드는 비즈니스가 큰 관심을 받을 것 같다. 기술기업 주가도 이들이 주도해서 이끌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예전 PC나, 모바일 때만큼 우리 생활을 혁신적으로 바꾸게 될지는 모르겠다. 아직은 모바일이나 PC 등 네트워크와 연결된 단말기 상에서 구현 가능한 비즈니스니까.
물론 일부 산업군에서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예로 어학 분야. 이미 AI튜터를 내세운 어학 플랫폼들이 여럿 나왔다. 국내에서도 원어민과 얘기하듯 자신의 회화 실력을 늘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얘기다.
길면 10년, 짧으면 그 이전이 될 수 있는 혁신적 변화는 무엇일까? 이미 진행되고, 우리도 보고 있겠지만 '로봇'이라고 본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발달을 보면 종국에는 인간을 닮은 로봇의 등장으로 수렴하는 것 같다.
1980년대 PC, 1990년대 유선인터넷, 2000년대 무선인터넷과 모바일, 2010년대 딥러닝, 2020년대 생성형 AI로 이어지는 컴퓨팅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의 발달을 보면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고도화된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단말기가 이동까지 자유롭게 한다면, 그게 로봇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의 유려한 움직임을 아직 모사하는 단계라고 하지만, 소나 말, 개처럼 움직이는 로봇의 구동시스템은 이미 개발되어 나왔다. 고도화 단계에 있다. 시간이 갈수록 이런 움직임도 사람의 모습을 닮아갈 것이라고 본다.
정보 습득은 또 어떨까? 인간은 전체 습득 정보의 70%를 시각에 의존한다는데, AI에 기반한 시각 시스템도 고도화되고 있다. 자율주행자동차가 그 예다. 조만간 광학문자인식(OCR)이 고도화된 로봇이 나타나 인간이 쓴 책을 스스로 펼쳐가면서 학습할지도 모른다.
초고속통신망은 이들 로봇의 고도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다른 로봇이 학습한 내용을, 통신망을 통해 다른 로봇에 공유하는 것이다. 인간이 책과 언어로 자신의 지식을 다른 인간에게 전달하듯 클라우드 네트워크에 연결된 로봇들은 각각이 다른 로봇이 수집한 데이터로 학습한다.
이쯤 되면 무시무시하지 않나.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인간을 닮은 로봇'이 필경 나올 수밖에 없는 흐름인데.
19세기 인간 칼 마르크스는 자신의 저서 자본론에서 '생산성의 차이'가 계급의 차이를 낳는다고 했다. 노동 외 다른 생산수단이 없는 노동자와 토지와 자본을 갖고 있는 자본가 사이에 생산성 차이를 언급한 것이다. 아마 로봇 시대가 되면 로봇을 소유한 기업가와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의 인간 사이의 계급·계층 차이가 극명하게 발생하지 않을까 싶다. 더 불행한 것은 혹여나 생산성의 차이로 로봇이 인간보다 더 우월하게 대접받을 수 있다는 점...
◇로봇주에 투자하면 될까
잠시 이야기가 산으로 갔다. 현시점에서 봤을 때 로봇의 시대로 접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일 것 같다. 전쟁이라도 크게 난다면 그 로봇과 인공지능은 더 고도화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장기적으로 투자한다면 로봇 관련 기술주에 투자 포트폴리오를 크게 열어놓는 게 필요해 보인다. 잠재적으로 봤을 때 그다음 성장동력은 로봇이 되니까.
이런 로봇 산업을 주도하는 국가는 어디가 될까? 정답은 당신도 잘 알 것 같다.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은 개발 역량에서 중국은 제조 역량에서 각기 우월한 지위를 갖고 있다. 미국이 중국보다 자본시장이 더 개방적이라는 점을 생각해 봤을 때, 앞으로도 미국 증시에는 계속 돈이 몰릴 것으로 보인다. (로봇시대를 주도할 단 하나의 기업에 투자한다면 그야말로 성공투자가 되는 것이고.)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한국 주식시장은 앞길이 험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