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변동기 때 채권 투자자가 돈 버는 방법
경제학에서 수요와 공급 곡선을 설명하기 위해 가정하는 게 있다. '완전경쟁시장'이라는 개념이다. 재화와 용역이 오직 가격 변수로만 유통되며 공급자와 수요자 간 정보 비대칭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험실에서나 볼 수 있는 모형과 같은 시장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정보 비대칭이 존재하고 재화의 양과 질에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가격 비교가 가능한 온라인마켓에서도 우리가 리뷰를 중요하게 보는 것도 이런 정보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노력의 하나다.)
그래도 완전경쟁시장에 근사하게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을 꼽으라면 채권 시장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많겠지만 채권이란 자산은 주식이나 부동산 등 다른 자산보다 정보 비대칭성이 적다. 만기와 금리, 가격, 발행자의 신용도는 공개된 정보이고 정책 금리 등의 시장 외적인 요소가 거의 동일하게 가격 결정에 적용되는 이유가 크다.
(물론 발행자의 신용도나 재정 상황이 시장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게 결정적 변수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국가나 기관 발행자의 신용 문제가 조금이라도 우려되면 시장에서 민감하게 반응한다. 부도 확률이 낮다고는 하나 예기치 못한 신용불량 사태가 일어나면 채권 투자금은 0원에 수렴할 수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채권 금리가 시장 참여자들의 '집단지성'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시장 참여자들이 보이는 수요와 공급의 메커니즘에 따라 적정 가격선(금리선)이 결정되어 가기 때문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기준금리 혹은 중앙은행 재할인율로 대변되는 정책금리의 움직임이다. 묘하게 시장금리와 균형점을 맞춰가며 시장 충격을 줄인다. 정책금리가 결정되기 전에 시장금리가 선제적으로 움직여 맞춰간다는 뜻이다.
예컨대 3.5%인 한국은행 기준금리 목표치가 다음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3.0%로 낮아진다고 해서 시장이 0.5%포인트 금리차에 따른 충격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기준금리의 하락선에 맞춰서 시장금리도 사전적으로 움직이고, 때마침 금통위가 열려 기준금리를 결정할 시기가 되면 '선반영'되어 있다는 얘기다.
무슨 뜻일까. 첫번째 시장금리가 한국은행과 같은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 자본시장에서는 '연준에 까불지 말라'라고 하는데, 연준의 정책에 반하기보다는, 연준의 금리 정책에 맞추는 게 돈을 벌기 더 쉽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연준의 연방기준금리 목표치가 5.5%라고 가정하자. 이 기준금리가 4.5% 정도로 낮아지다고 했을 때 각 채권의 가치가 들썩이게 된다. 아주 쉽게 얘기하자면 기준금리 5.5%에 맞춰 '금리 키높이가 맞춰진' 채권의 매력도가, 기준금리 인하로 높아지게 된다.
이게 무슨 얘기일까. 기준금리가 인하되고 나오게 되는 채권의 금리는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기준이 되는 금리가 떨어졌으니 그에 발맞춰 나올 채권의 금리도 그 지점에서 형성된다는 얘기다. 반면 기준금리 인하 전에 발행됐거나 그때 매수한 채권의 수익률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만기까지 보유한다는 것을 가정했을 때.) 채권 장기 투자자 입장에서 봤을 때는 기준금리 인하 전 발행했거나 거래된 채권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기준금리 5.5%일 때 발행되고 거래되는 10년만기 채권의 금리(이표이자율)가 6%라고 가정하자. 그런데 기준금리가 4.5%로 낮아지면 이후로 발행되는 10년만기 채권의 금리도 따라서 떨어지게 된다. 기준선이 떨어졌으니 금리도 같이 하락하는 것이다.
이때(기준금리 인하 후) 발행되는 10년만기 채권 금리가 5.0%라고 치자. 상대적으로 봤을 때 과거 6%를 받는 채권의 이자가 1%포인트 더 많게 된다. 같은 10만원짜리 채권이라고 해도 기준금리 인하 전후에 따라 받게 되는 이자가 1000원 차이가 나는 셈이다. 6% 이표이자율 채권의 연이자는 6000원이고, 5% 채권의 연이자는 5000원이 되니까.
(여기서 우리가 유념해야할 부분은 주된 채권 장기투자의 이유는 고정된 이자를 받기 위한 데 있다. 만기까지 채권을 갖고 있으려고 계획했던 채권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전 6% 채권이 더 매력적이다. 시장에 나온다면 이것을 사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수요가 몰리면 또다른 경제원리가 작동한다. '수요가 몰리면 가격이 올라간다'이다. 내가 만약 6% 이자율 채권을 갖고 있었다면, 이때 이 채권을 팔아 차익을 거둘 수 있다. 누군가는 그까짓 1%포인트가 대수냐고 하겠지만, '굴리는 규모'가 커지면 달라진다. 1조원을 굴리는 운용사라고 한다면 100억원을 벌 수 있게 된다.
이런 금리 인하 상황에서 수익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인하 전 미리 갖고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다. 혹은 금리 인하 시기를 예상해 장기채 위주로(장기채가 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 변동폭이 더 크다고 했다) 채권을 매입해 놓는다면 그게 가능하다.
('자산을 쌀 때 사서 비쌀 때(가격이 오를 때) 팔면 돈을 번다'라는 격언이 이때 맞아 떨어진다. 이 격언은 투자 시장에 있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아무리 상품을 파생으로 꼰다고 해도 이 격언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기준금리 인하 전 채권을 서둘러 매입해 수익을 올리려는 채권투자자들은 어느 시점까지 채권을 매입할까? 시장 참여자들이 예상하는 수준의 금리에 가격이 다다를 때이다.
이건 무슨 뜻일까. 채권 금리 그러니까 연단위 환산 이자율과 채권 가격이 반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채권 이자율과 가격은 역의 관계를 갖는다. 시장 채권 가격이 올라가면서 금리는 떨어진다. 가격이 오르는 폭만큼(매입가 대비 형성되는 가격이 높아지는 폭만큼) 금리가 그 폭의 비율만큼 하락한다. 채권에 있어 이자 지급액은 고정되어 있지만, 분모 격인 투자금(이때는 채권 가격)이 높아지니까 자연스럽게 이자율(금리)가 하락하는 것이다.
금리가 이런 식으로 내려가면서 더 이상 내려가지 않고 멈추게 되는 지점이 있으니 연준 등의 중앙은행이 실제로 기준금리를 내렸을 때 형성될 시장 금리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렸을 때 시장이 받는 충격은 미미해진다. '선반영되어 있다'는 게 이럴 때 나온다. (이런 예측이 맞아 떨어지면 금리 차에 따른 돈을 벌게 된다.)
위 표는 지난 코로나19 시절 때 콜금리와 기준금리의 움직임이다. 기준금리가 콜금리를 끌어 올렸다고 볼 수 있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콜금리가 먼저 올라가서 기준금리가 올라오기를 기다린다고 볼 수도 있다. (출처 : ‘금리는 답을 알고 있다’, 경이로움)
흔히 '선제안내'로 번역하는 '포워드가이던스'도 이런 매커니즘 덕분에 '약발이 먹힌다'. 중앙은행과 시장의 신뢰도가 비교적 높은 선진 시장으로 한정했을 때라고 하지만, 중앙은행 총재가 시장에 힌트를 주고 예상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금리를 올릴지 혹은 내릴지. '행동에는 옮기지 않았는데, 다음번에는 실행할게'라고 미묘한 힌트를 주고 시장의 움직임을 보는 식으로, 금리 정책 변경이 올 혼란이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물론 중앙은행은 시장금리를 조정할 목적으로 정책금리를 매니징한다. 실제 시장금리를 움직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정책금리의 변경이다.
다만 채권을 비롯한 자본시장은 전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중앙은행의 영향력과 입김이 세지만, 외부 요인(특히 미국)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비교적)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르는 연준과 달리 한국의 한국은행은 시장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지나치게 시장 방향에 역행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무슨 뜻일까. 최근 금리와 경기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현 정부·여권이 줄기차게 한국은행에 보낸 '암묵의 메시지'는 금리 인하였다. 금리 인하에 따른 경기 진작 효과를 원했던 것이다.
문제는 달러 공급국가인 미국의 기준금리가 그간 5.5%로 높게 형성되어 있는 상황이고(최근 0.5%p 인하), 그러다보니 달러표기 자산의 금리도 높았다. 시장의 대체적인 상황은 '높은 금리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달러 자산의 선호도가 높다'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글로벌 시장과 연결된 한국 시장은 금리를 인하할 수 없었다.
엔화를 갖고 있는 일본은행(BOJ) 정도나 '용가리 통뼈'식으로 저금리·마이너스금리를 유지할 수 있을 뿐, 한국은 전혀 그럴 수 없었다. 한국이 갖고 있는 국제 위상과 글로벌 시장 분위기란 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일본은행도 결국 견디지 못하고 제로금리에서 한발 물러섰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이런 시장 분위기를 또 시장 금리가 보여준다. 시장 참여자들이 생각하는 적정 수준의 금리와 정책금리 간의 격차를 최대한 벌이지 않는 방향으로 중앙은행이 금리 정책을 이끌고 가는 식이다.
따라서 중앙은행과 시장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고, 서로의 눈치를 굉장히 민감하게 살펴볼 수밖에 없다. 말은 하지 않지만 언어로 통하는 것 이상의 신호를 주고 받으며 나타난 게 시장금리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안에 수요와 공급, '수익을 높이기 위한 합리적 선택'이 작용한다.
*요약 (시장 예측이 당국 결정에 부합했을 때)
기준금리가 인하되면 기존 고금리 때 발행된 채권의 매력도가 높아지진다 → 이들 채권의 가격이 올라간다 → 가격이 오르면서 금리가 하락한다 → 기준금리가 떨어지면서 맞춰질 시장균형점까지 시장금리가 내려간다 → 막상 기준금리가 인하했을 때 시장금리는 선반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