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 인하를 또 단행했습니다. 지난번 0.5%포인트 인하에 이어 이번 달 0.25%포인트 인하를 결정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기준금리는 4.5%~4.75% 선에 위치하게 됐고 한국과의 기준금리 차이는 1.5%포인트 차이로 줄었습니다. 한국은 물론 일본처럼 미국과의 기준금리 차이에 따른 우려가 컸던 국가들은 한시름 놓게 됐습니다.
이번 연준의 스몰컷(0.25%포인트)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시장이 기대하는 대로 연준이 파격적인 기준금리 인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여전히 미국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높다는 것 등입니다. 코로나19 이후로 풀린 통화량 자체가 엄청나게 늘어나 있기 때문에 긴축 기조를 어느 정도 가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중물가 중금리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요소가 남아 있고 자신의 2기 행정부를 열어갈 트럼프에 대한 불확실성도 남아 있습니다. 즉흥적인 발언으로 전 세계 투자자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 사례가 있기 때문이죠.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이라면, 언제든 이 부분이 자극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연준의 기준금리 정책, 미국 내 물가 추이는 어떻게 예상할 수 있을까요? 일단 트럼프라는 변수를 제외하고 통화증가율과 실질GDP 증가율, 물가상승률 간의 관계를 따져보면서 예상해 보겠습니다. 환율 등의 영향이 적을 수밖에 없는 미국의 물가 상승률과 통화금리 정책은 우리나라 같은 소규모개방경제 국가와 달리 연결성이 높습니다. 이들 지표 간의 관계가 항등식이라는 게 잘 드러나는 것이죠.
코로나로 부쩍 늘어난 미국의 M2 규모
실질통화량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내 M2 규모는 쉽게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통계청이나 한국은행 홈페이지를 뒤져봐야 하지만 미국 통화량과 금리 추이 등은 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 나온 데이터와 그래프 추이를 보면 지난 2년간 연준이 시중 통화량을 줄이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덕분에 물가 상승률 또한 잦아들게 됐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생산하는 것 이상의 통화량은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통화를 줄여 물가를 잡으려고 했던 것이죠. 인플레이션은 통화적 현상이라고 말한 밀턴 프리드먼의 말이 그대로 잘 맞아떨어진 것이죠.
이 그래프를 보면 여러 사실을 우리가 직시할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코로나19 사태 때 미국 정부가 기민하게 반응했다는 점입니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도 ‘유동성을 때려 부어서’ 위기를 모면했다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대공황으로 갈 수 있는 위기) 2020년 코로나19 때는 그 이상의 파격적인 정책을 펼쳤습니다. 통화량 증가 추이의 기울기를 보면 미국 정부가 당시 위기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잘알 수 있습니다.
2020년 3월 트럼프의 대서양봉쇄 등의 선언이 있은 후 전 세계는 패닉에 빠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 세계가 전쟁에 준할 만큼의 위기감에 빠져 있었던 때였습니다. 이때 연준이 과감하게 나서 경기를 안정 시켰고 이후로 2022년 3월 전까지 통화량을 화끈하게 늘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만 보면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저리 가라’ 정도입니다.
2022년 이후 통화량 추이를 보면 줄인 것은 분명하지만 상대적으로 완만한 감소세를 보였습니다. 2023년 하반기 이후로는 점진적인 증가세를 보입니다. 미국 GDP 증가율에 발맞춰 가려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를 숫자적으로 볼까요? 지난 9월 기준으로 미국 내 M2 규모는 21조2212억달러입니다.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하던 2022년 3월 직전(21조7728억달러) 수준으로 떨어뜨렸습니다. 통화량 증가율을 거의 0% 정도로 가져갔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쇼크 직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통화량은 많습니다. 2020년 3월 1일 기준 M2(15조 9806억달러 대비 37.3% 많습니다.
GDP 증가율보다 통화량 증가율이 더 높으면?
그렇다면 우리가 살펴볼 필요 하나가 있습니다. 실질GDP입니다. 실제 생산된 산출물의 증가세보다 통화량이 늘었다면 물가 상승률이 높아졌다는 얘기가 됩니다. 만약 우리가 생산하는 산출물보다 더 많은 통화가 공급이 되어 있었다면 그간의 물가상승률이 설명이 됩니다.
얼추 보면 코로나 직전까지 미국의 M2 증가율은 실질GDP증가율과 비슷한 기울기 추세를 보이면서 늘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두 그래프 간의 간격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기울기가 유지됐는데 2020년 코로나19 쇼크가 이 차이를 확 줄여버립니다. 또 미국 경제는 2020년 초 일시적인 침체를 겪었지만 이후로도 완만한 성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통화량 증가율은 GDP 기울기 수준을 상회할 만큼 늘었고 2022년 3월께 (그래프 상으로) 거의 맞붙어 있는 상황까지 오게 됩니다. 이런 기울기 차이가 큰 상황에서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죠. 미국 물가상승률이 9%, 10% 가까이 오르고, 기준금리를 파격적으로 올렸던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됩니다.
연준이 긴축을 하면서 이 격차를 벌려 놓기는 했지만, GDP 증가에 따른 완만한 통화 공급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숫자적으로도 잘 드러납니다. 코로나 직전인 2020년 1월에 발표된 미국의 실질GDP는 20조6932억달러였습니다. 코로나19 쇼크로 2020년 한때 주춤했지만 올해 3분기 23조3862억달러로 늘었습니다. 이 기간 성장률은 12.2%입니다. 비슷한 기간 통화량은 37.3% 늘어나 있지만 실질GDP는 13% 늘었을 뿐입니다. 두 수치(통화량과 실질GDP) 상의 갭은 24.3%포인트입니다.
CPI에 반영된 'over' 통화량
흥미로운 것은 코로나 기간을 통해 볼 수 있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분입니다. 2020년 3월 미국 CPI는 258.16이었고 최근 CPI는 314.686을 기록했습니다. 이 기간 상승률이 21.9%입니다.
어느 정도 오차가 있지만 통화량 증가치와 실질GDP 성장률 갭의 격차에 근접한 것입니다. 따라서 지난 2~3년간의 인플레이션은 생산량 대비 초과된 통화량에 기인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봤을 때 미국은 코로나19 위기를 통화량을 풀어서 넘기려고 했고, 이때 넘치는 통화량이 물가를 자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아주 당연한 귀결인데, 환율 등의 영향이 적을 수밖에 없는 미국경제인지라 이런 경향성이 극명하게 더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중금리 중물가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
그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연준의 기준금리 정책은 미국 내 고용과 물가상승률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한 것이죠. 이런 경제지표를 총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게 바로 미국 GDP 성장률입니다. 매우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미국 내 GDP 성장률에 따라 물가도 금리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장률 이상의 통화량 증가율을 보인다면 물가는 또다시 자극됩니다.
지난 2~3년간 고물가를 경험했던 터라 연준은 섣부른 통화 확장 정책을 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더 커서) 꽤 마음 놓고 통화량을 늘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불경기가 우려되는 상황 속에서 물가까지 걱정해야 합니다.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만들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입니다.
이런 연준의 스탠스를 살펴봤을 때 최대한 중금리 중물가로 갈 것으로 보입니다. 굉장히 신중한 것이죠. 이번달 기준금리 인하 폭을 0.25% 포인트로 한정한 것도, 앞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관망할 것도 이 같은 맥락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트럼프는 예전 집권할 때부터 연준에 '저금리 정책'에 대한 압박을 했습니다. 이번에도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높죠. 겨우 잡아 놓은 인플레이션이 다시 치솟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1979년 폴 볼커 의장과 같은 더 강력한 연준 의장의 강도 높은 고금리 정책이 필요해질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