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기록될 2024년 12월 3일 그 날

by 팟캐김

그날 밤, 우리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모 국회의원은 그날 일상에 지쳐 초저녁 잠에 들었다. 22대 총선에서 ‘비명횡사’의 희생양이 됐던 박 모 전 의원도 여느 때와 다름 없었다. 대통령이 담화를 할 것이라고 했지만 대부분 ‘국정 운영하기 힘들다’라는 푸념을 할 것으로 여겼다. 직전 야당은 기획재정부의 예산안을 감액해서 본회의에 상정했고 대통령실과 여당은 굉장히 ‘뿔이 나’ 있었다.


나도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다소 의미를 부여한다면 12월 3일은 22년전(2002년) 군 입대를 했던 우울한 날이었다는 정도였다. 매해 이를 기념하는 ‘유치한 일’은 벌이지 않았지만 그날만 되면 씁쓸해지는 기분을 피할 수 없었다.


그날 밤 10시 정도에 끝나는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6712 버스에 몸을 싣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까무룩 잠들기 직전의 졸린 상태로 버스 안에 앉아 있던 시간, 밤 10시30분 정도였다. 회사 온라인팀에 있는 후배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스마트폰을 열어 봤을 때 그가 보낸 메시지의 첫 문장은 ‘뭔 일이에요?’였다. 뒤 이은 문장에 ‘계엄령’이 포함돼 있었다. 드라마에서조차 다뤄지지 않을 뚱딴지 같은 계엄령 이라니...


마지막 계엄령이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됐던 때에 발령됐고 해제된 때가 1981년이었다. 그해 난 태어났기 때문에 ‘계엄’이라는 것을 겪어본 적이 없다. 전후(戰後) 세대가 있다면 나는 ‘계엄후’ 세대가 아닐까.


계엄이라는 단어가 왜 나오는지 전혀 감을 못 잡았기 때문에 카카오톡 대화는 엉뚱하기 진행됐다. “예산안 합의 때문에 그런건가?” 대통령이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에 빡쳐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군을 동원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계엄이라. 이미 2024년 8월말부터 이상하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계엄 선포’ 가능성을 제기했다. 4선 김민석 민주당 의원이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다들 비웃었다. ‘지금 이 시대에 계엄이라니...’


계엄을 선포하기에는 우리나라가 위급할 정도로 혼란스럽지 않다는 점과, 설령 대통령이 ‘미쳐 돌아서’ 평시 계엄을 선포한다고 해도 전방 사단을 빼와서 수도권에 투입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으로 여겨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됐고 누구나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시대에 대규모 군대가 이동해서 서울 시내 주요 지역을 장악한다는 것은 소설로도 쓰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만큼 말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계엄을 주장했던 김 의원은 진지하게 기자들을 대했다. 당내 ‘서울의 봄’팀을 발족한다고 밝힐 정도였다. 기자들은 비웃었다.


버스가 한강 다리를 넘었을 때도 후배의 질문은 이어졌다. 그는 ‘계엄령 하면 예산안 바꿀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어라 계엄??’ 주변 버스를 둘러봐도 시민들은 평온했고 군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계엄 같은 것은 내전이나 북한이 침입해 내려올 때나 발령하는 게 아닌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게 인간이라고 하지만 자기 불만을 그런 식으로 해소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한 나라의 대통령인데... 그제서야 졸린 눈을 비비며 네이버 등 검색 사이트에 들어가 계엄을 검색했다. 속보 형태의 뉴스가 몇 개 떠 있고, 대통령의 워딩이 나왔다. “파렴치한 종북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이 글을 본 반응은 간결했다. “또라이네...” 국가 존엄인 대통령을 비판한 적은 있어도 그 정도로 거센 단어를 쓴 적이 없었다. 후배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육두문자가 당장 나왔다.


블랙코미디 같은 계엄정국은 진짜 현실이 됐다. 당장 팀 카카오톡방에 불이 났다. 모두들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여기서 팀방은 여당팀 기자 3명, 야당팀 기자 3명으로 구성돼 있는 정당팀 카카오톡방을 뜻한다. 국회 공통 이슈와 기사 처리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이다. 후배인 여당팀장은 ‘해킹 당한 것 아니냐’라고 물었다. 대통령을 빙자한 ‘딥페이크’일 수도 있다라는 얘기가 나왔다.


다른 후배는 ‘지금 비상계엄이라는 비현실적 단어가 믿기지 않는다’면서 ‘술이 다 깬다’라고 했다. 후일 들어서 안 것인데 이날 비상계엄은 대통령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 등 최측근 소수 외에는 논의된 게 없었다. 국무위원들도 그날 당일 되어서야 알았다고 한다. 홍철호 당시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물론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도 그날까지 개인 약속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니 알만하지 않은가.


억지 정쟁을 벌인다고 비난했었던 김민석 민주당 의원에 대한 재평가도 나왔다. 다들 속고 있었는데 김 의원만이 온전한 제정신을 갖고 있었다는 평가마저 나왔다. 후에 듣기로는 민주당 지도부도 감지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김 의원이 ‘총대’를 멘 것이라고 했다.


각 팀원들은 상황 파악을 위해 각기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수석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어떻게 이후 대응을 할 것인가’를 물어보기 위한 목적이었다.


계엄을 했으면 계엄군이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기 위해 진주해야 하는데, 어디로 이들이 갈 것인지도 파악이 안됐다. 일단은 국회가 우선 대상이었다. 대통령의 분노가 향한 곳이 국회일 수 있으니. 자전거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내가 가거나 다른 후배가 달려가서 현장을 봐야했다. 계엄군이 헬기를 타고 국회 운동장에 내렸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급했다.


다행히 야당팀 한 명, 여당팀 한 명이 뛰어 가기로 했다. 둘 다 듬직한 후배들이었다. 여당팀 후배는 헬스로 다져진 ‘근육맨’이었고, 야당팀 후배는 전투경찰 출신이었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나는 집에 남아 카카오톡으로 보고를 받고, 부장에게 상황 보고를 하기로 했다. 현장에서 올라오는 워딩과 사진을 기사로 만들어 올리며 긴박한 상황을 뉴스로 전했다. 다행히도 ‘짬밥’이 있던 후배들은 적절하게 상황을 대처하고 있었다.


10시54분께 기자들의 톡방에 민주당 공식 공지가 올라왔다. 민주당 공보국이 발신원이었던 이 메시지는 민주당 의원들이 전원 국회의사당과 당사에 집결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곧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의 문자메시지가 공유됐다. ‘의원님들께서는 지금 즉시 국회 본청으로 모여주기 바랍니다’였다. 이재명 당 대표와 박 원내대표를 비롯해 민주당 의원 전원이 의사당에서 소집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그때의 긴박함을 전해줬다.


이 때까지만 해도 국회는 출입증 없이도 출입이 가능했다. 국회 경비를 맡은 국회경비대와 영등포경찰서 등도 별도의 연락을 받은 것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밤 11시가 되어 국회는 봉쇄가 되었고 출입증이 없는 사람은 들어갈 수 없었다.


얼마 뒤 국회의원들마저도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기자들도 속속 도착해 국회의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현실로 믿기지 않는 상황에 어안이벙벙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이 겪어야 했던 기나긴 밤이었다. 역사적인 순간 그 시각을 ‘목격자’로서 목도하며 기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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