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팟캐김

프롤로그


여든을 산다면 절반 하고도 5년을 넘겼다. 아흔을 산다면 이제 딱 반 왔다. 반평생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됐지만 여전히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뾰족한 답을 못내고 있다. 그나마 위안 삼을 것 하나는 있다. ‘내 선택이 늘 옳을 수 만은 없다.’


무슨 말일까? 나름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실행했는데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고 차악의 선택이 ‘의외의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의미다. 인간 관계로 치면 배려라고 했는데 되려 막상 원망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내가 원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우리는 매일매일 선택하면 산다. 점심을 먹는 것부터 회사 내 업무와 보직을 맡는 경우까지 다양하다.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택하려는 것은 당연지사다. 때로는 남이 받을 손해를 알면서도 ‘나를 위한 선택’을 밀어 붙이곤 한다.


이런 선택은 대부분의 일상에서 큰 문제로 이어지진 않는다. 우리의 삶이 항상 특별하지는 않으니까. 펑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이라면 ‘자기 선’에서 ‘자기 책임’을 지면 된다.


만약 국가 지도자가 누가 봐도 ‘잘못된 선택’을 자신에게 있어 ‘최선의 선택’으로 여긴다면 어떻게 될까. 최악의 상황이라면 전쟁이라는 화마 속에 수많은 국민들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개그맨 이경규 씨가 ‘무식한 사람이 용기를 가질 때 두렵다’고 했는데 이럴 때 이해가 된다.


지난 계엄부터 탄핵에 이르기까지 윤석열이라는 존재를 보면서 궁금했다. ‘왜 그는 그렇게 선택을 했어야만 했는가’라는 의문이다. 그에게 직접 물어볼 수 없으니 자문자답을 하기도 했다. 백번을 양보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자기 나름의 최선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한 발 떨어져서, 아니 제3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었다. 왜 그는 생각을 못 했을까. 한국 근현대사를 놓고 ‘평시에 했던 선택’ 중 최악의 것으로 평가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은 그때로부터 반년 정도 지나고보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식이 되는 것 같다는 점이다. 날밤을 새며 불안한 마음으로 그들을 쳐다봤던 일도 이제는 옛일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우리 기억 속에 잊혀지고 ‘한때의 흉터’처럼 남게 되지 않을까. 블랙코미디 영화로 제작될 때 즈음 우리 기억 속에서 회자될 것 같다.


이 글은 ‘역사 속의 한 바탕’을 잊지 않기 위해 썼다. 지난 2월부터 6월 초까지 약 100일간 원고를 기록했다. 계엄부터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는 날까지다. 순전히 제3자이자 국회출입기자 입장에서 썼기 때문에 당사자인 국회의원, 보좌관, 군인과 경찰 등 당사자들이 느꼈던 바와 다를 수 있다. 국회 밖 일반 국민들보다는 가깝게 사안을 볼 수 있지만 사건 당사자보다는 두어발 떨어져서 일련의 사건들을 봤다고나 할까.


이런 이유로 일부에서는 ‘내용이 빠졌다’, ‘듬성듬성 하다’라는 지적과 비판을 받을 것 같다.


참고로 문장도, 구성도, 내용도 부끄러울 정도로 졸저다. 이에 대한 비판은 달게 받겠지만, 이 책이 관통하는 ‘주제의식’ 하나 만큼은 알아 줬으면 한다. ‘선택의 문제’다. 윤석열이 했던 그 선택을 나라고 피할 수 있을까? 그런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피해야할 것은 ‘지나친 낙관주의’가 아닐까. 윤석열 전 대통령도 자기 기만적 낙관주의에 빠져 오판했다. 덕분에 온 나라가 흔들렸다. 그의 선택과 결정에 국민들은 힘겨웠고 이를 바라보는 기자들이 마음은 비참했다. ‘성실하게 하루를 사는 게 행복’이라고 여겼던 수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운 치유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다음 대통령은, 아니 중요한 결정권자일수록 자기기만적 낙관주의를 피하기를 바라면서 시작해 본다. 참고로 각 인물들의 직위는 그 시점의 기준에 따랐다. 예컨대 탄핵 전이라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 후라면 ‘윤석열 전 대통령’이 되는 식이다. (2025년 6월 17일. 이재명 대통령의 첫 G7 캐나다 순방을 따라와서 새벽 미명을 보면서 남긴 글)


들어가는 글


경제기자로 10여년 넘게 커리어를 이어왔다. 회사 노동조합 위원장을 1년 하고 2023년 여름 본의 아니게 정치부로 발령이 났다. 회사의 결정이니 당연히 따라야 했고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막내 때처럼 아무 곳에 가서 ‘열심히 하면 되는 나이’나 연차도 아니었다. 이왕 가도 ‘성과’를 낼 수 있는 자리가 됐어야 했다. 남는 자리가 정치부 내 정당팀이었다. 게다가 출입처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당시 민주당은 2022년 3월 대통령선거와 6월 지방선거를 연이어 패배한 이후 자중지란에 시달리던 때였다.


이런 사정을 부장도 알아서였을까? 시간과 기회가 된다면 ‘여야 스위칭’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내가 분명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이라고 봤을 것이다. 그럴만한 게 정권 초반의 야당반장(야당팀 팀장)은 기대할 만한 게 없다. 대통령실 기자, 일명 1호기자로 올라갈 가능성도 낮고 매번 싸우고 패퇴하는 야당의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 고생만 하고 나오는 자리다.


더욱이 정치부, 특히 국회 정당팀은 업무 강도가 높기로 유명했다. 말진이라고 부르는 부서 막내들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국회 본청(국회의사당)에서 상주하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이들과 함께 하는 중간 혹은 팀장(반장)도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왜일까? 국회는 이슈가 넘쳐난다. 그에 따라 일도 ‘겁나게’ 많다. 우리 사회의 온갖 갈등이 결론을 찾아 모이는 곳이 결국 국회다. 즉, 입법을 통한 최종 결론이 나오는 곳이라는 뜻이다.


입법이라는 말이 잘 와닿지 안을 수 있는데 ‘제도 개선’이라는 말로 생각해보자. 이 단어가 갖는 뜻을 꽤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다만 법을 고친다는 것은 여러 이해 당사자, 더 나아가서 우리 국민들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누군가 막장으로 법을 뜯어 고친다면 나라가 망가질 수 있다. 따라서 야당은 이런 일을 벌이지 못하도록 막고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말(言)과 그에 따르는 논리가 강력한 무기가 된다. 때로는 ‘언론플레이’라고 해서 신문·방송을 통한 망신주기가 통하기도 한다.


그뿐만이랴, 국회는 다툼의 장이다. 여야는 ‘권력’을 잡기 위해 밤낮없이 싸우고 각 계파는 당내 ‘주도권’을 잡기 위해 다툰다. 남의집 불구경과 싸움구경이 재미지다고 하는데, 이것도 일상이 되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허둥지둥 따라가기 버거워하며 1년 정도 시간을 보냈다. 2024년 여름이었다. 여당 반장이 용산 대통령실로 발령이 됐고 자연스럽게 정당팀 전체 팀장이 됐다. 관례에 따라 여당 반장을 하면서 정당팀장을 해야 했다.


정치부 정당팀에 그리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기에 야당에 남아있겠다고 부장한테 말했다. 내 나름대로 논리가 있었는데 그때는 더불어민주당이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해 역대급 여소야대를 이루고 있었다. 사실상 정국을 야당이 주도하고 있으니 야당 반장이 정당팀장을 맡아도 큰 상관이 없어 보였다.


이후 6개월이 또 지났다. 2024년 11월이 되자 나는 인사대상이 됐다. 기다렸던 바였다. 인사 교체 요건이 되는 2년이 안됐지만 회사에서는 다른 부서로 인사를 내려고 했다. 경제 기자를 그간 오래했기 때문에 정치부에 오래 놓아둘 필요가 없다고 본 것 같았다.


정치부 정당팀을 나간다는 설레이는 마음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여차저차해서 6개월을 더 있게 됐다. ‘그래 1년 반일 보냈는데, 6개월은 더 못 있으랴.’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조금 더 전문성 있는 경제기자로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2024년 12월 3일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전대미문의 이 사건은 나 개인의 인생과 커리어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치명적인 영향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