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우리가 우리에게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 보여줬다. 상대를 ‘혐오’하는 정서는 유튜브를 통해 키워졌고 카카오톡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퍼졌다. 40여년전 전두환의 비상계엄과는 분명 다른 양상이었다.
가장 큰 불행은 대통령 본인에게 있었다. 그는 국가 시스템을 믿지 않았다. 장관들의 보고, 대통령실의 참모들의 의견을 뒤로 한 채 유튜버들의 말을 신뢰했다. 전국의 정보가 모이는 최정점에 있는 사람이 믿을 수 없는 근거를 갖고 주장하는 이들의 말을 들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평생을 검찰 일을 하면서 객관화된 사실을 규명하려고 했던 사람으로 믿기지가 않았다.
또 막상 일이 벌어지고 책임을 져야할 상황이 되자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 와중에 군 수뇌부, 경호처 수장들이 줄줄이 갈려 나갔다. 비상계엄이라는 그릇된 판단이 없었다면 그들의 지금 일상은 어땠을까.
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자세는 자신을 향한 체포와 소환을 대하는 태도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2025년 1월 3일 윤 대통령의 체포에 실패했던 고위공직자수사처는 사흘 뒤인 1월 6일 서울서부지법에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거듭된 소환 요구에 윤 대통령은 불응했다. 강제 구인 절차만이 남게 됐다.
민주당 등 야당과 경찰은 경호처 직원들을 와해시키는 전략을 썼다. 야당은 여론전을, 경찰은 경호처장을 입건을 했다. 성을 공격하기 전에 ‘해자를 메우는’ 전술을 쓴 셈이다. 첫 번째 체포 시도 때 경호처 직원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한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경호처 직원들도 이 같은 여론전에 불안감을 느꼈다. 경호처장은 사의를 표시했고 경호차장은 경찰에 입건되기에 이르렀다. 수뇌부들이 힘을 잃자 경호처 직원들도 적극적인 저항을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본부장급 밑에 있는 경호처 직원들은 전임 문재인 정부 때도 대통령 경호로 나라의 녹을 먹었던 사람이다. 대통령을 보호하는 게 그들의 임무이지 윤석열을 지키라는 게 그들의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관저 앞에 운집한 수천 명의 지지자들이었다. 극우 기독교계에서는 장외집회를 열며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내지 말아야 할 반정부적인 발언이 서슴없이 나왔다. 이들은 반중정서를 일으키는 극언까지 했다. 개중에는 사실이 아닌 선동적이면서 선정적인 내용도 있었다.
여당도 은근슬쩍 합세했다. 세 규합이 필요한 이들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상황이었다. 힘을 합쳐야 할 대상이 극우라고 해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여론조사에서 한껏 지지율을 높여준 덕분에 대야 투쟁에도 힘을 받게 됐다. 당내 극우 분위기가 짙어진다고 해도 다음 선거에서 이겨 의원직을 유지하면 됐다.
이들은 민주당을 향해서는 강한 비판을 했다. 계엄의 책임이 야당에 있다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가해자 논리였다. 여기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탄핵하고 직무 정지를 시킨 것에 대한 비난을 했다. ‘거대 야당이 탄핵을 남발해 나라가 이 지경 됐다’라는 프레임을 만들려고 했다.
당연하게도 민주당이 내는 메시지도 왜곡의 대상이 됐다. 극우 성향 지지자들은 민주당의 메시지를 어떻게 해서든 왜곡하려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악마화하려고 했다. 카카오톡을 타고 가짜뉴스는 진짜 뉴스처럼 퍼졌다. 민주당에서는 ‘가짜뉴스를 퍼뜨리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라면서 주의를 요구했다. 선동적인 메시지를 함부로 퍼 나르지 말라는 의미였다.
이 부분은 법리적으로 ‘가능한’ 부분이었다. 가짜뉴스, 이 중에서도 명예훼손이 될만한 부분에 대해서는 처벌의 가능성이 있었다. 이건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부분이었다. 명예훼손으로 누군가가 사이버수사대 등에 신고를 했다면, 단순히 복사해서 옮겼을 뿐이라고 해도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출처가 불분명하고 명예훼손·허위사실 우려가 있는 글을 옮겨 붙일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이 같은 경고도 대통령 탄핵으로 분당의 길을 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국민의힘 당원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몇몇 국민의힘 의원들과 당협위원장은 자신의 지역구에 ‘카톡 검열’이라는 선정적 주장을 실은 현수막을 내걸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카카오톡마저 검열한다는 선동이었다.
믿고 싶은 것만 보는 게 사람이라고 했던가. 이런 메시지를 믿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 한남동 관저 앞에 모인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었다. 보통의 사람들도 ‘그럴 리가’라면서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불안 심리를 타고 한남동 윤 대통령 관저 앞은 난리 법석이었다.
이때 요구됐던 것은 대통령의 성숙한 판단이 아닐까. 1990년대 이후 전직 대통령들은 구속 수감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사법 기관의 영장 집행에 반기를 들지 않았다. 자신의 지지자를 향한 선동 메시지도 없었다. 그에 따른 소요 사태도 없었다. 안 해도될 걱정을 하게 된 우리 국민들만이 골치를 앓게 됐다.
몇 번의 실갱이 끝에 1월 15일 공수처와 경찰의 공조수사본부는 윤 대통령 체포를 집행할 수 있게 됐다. 체포 인력 투입 6시간 만이었다. 첫 체포 시도 때와는 달리 경호처의 적극 제지가 없었다. 체포 영장 집행 전 경호처 수장들을 수사하면서 내부 동요를 일으켰던 게 통했던 듯 싶다.
그래도 혹시 모를 폭력사태를 대비해 정부는 경찰기동대 54개 부대 3200명을 배치했다. 혹여라도 총격전이 벌어질까봐, 일부 집회 참가자들이 과격한 행동을 보일까봐 우려했다. 다행히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남동 관저 밖을 나가는 와중에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계엄 직후 ‘모든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라고 말한 것과 딴 판이었다. 그는 “이 나라에는 법이 무너졌다”며 수사 기관에 대한 비난을 했다. 야당은 여전히 국가의 적이었고, 자신은 곤경에 처한 애국 투사와 같았다.
여기에 여당이 합세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체포를 두고 “국격이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공수처와 경찰의 형태는 불법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을 진정시키는 커녕 이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 발언을 했다. 해소되지 않은 분노는 어디에서라도 분출되는 법. 그곳이 어딜지 몰라 사람들은 불안했다. 설마 법원이 될 줄은 몰랐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법원이 습격을 받는 초유의 사태였다. 과거 경찰서가 무장공비나 좌익 사상에 경도된 이들의 습격을 받는 사례는 있었으나, 이른바 우익을 주장하는 이들이 국가기관, 그것도 법원을 습격하는 일은 없었다.
처음에 당황한 듯 발을 빼려고 했던 여당은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들을 옹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애국시민이라고 지칭했다. 계속해서 자신들을 위해 힘을 써달라는 암묵의 메시지 같았다. 이들이 과연 법을 만들고 수호하는 사람들인가, 답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