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9일 일요일 우리 국민들은 충격적인 소식과 함께 아침을 맞았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많은 국민들이 경악했다. ‘시위대가 우리 법원을 습격했고 판사를 색출하려고 다녔다니...’ 2021년 1월 6일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자를 자처하는 폭도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을 무력 점거하려고 했던 사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법원을 습격한 이들의 행동은 고스란히 유튜브 영상으로 남았다. 방송사들은 이들 영상을 캡처해 일제히 방영했다. 법원 내 집기를 부수고 경찰을 폭행하는 ‘폭도의 모습’이 그대로 우리 안방 TV와 스마트폰까지 전해져 왔다.
이들 대다수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남성들이었다. 개중에 극우 유튜버 등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이었다. 허나 한순간에 법원을 침탈한 범법자가 돼 다음날 회사 출근을 걱정할 정도가 됐다.
여권 내 일부 의원이나 인사들은 이들의 폭주를 부추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들은 사법 체계 정당성, 즉 시스템에 대한 부정을 했다. 그러다 일이 터지자 발 빼기 급했다. ‘우파 청년’들은 금고 이상의 실형을 살아야 하는 전과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쩌면 평생 남을 뼈저린 후회를 해야할지도 몰랐다.
법원 습격에 대한 암시는 일부 커뮤니티에서부터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되던 15일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글이 목격됐다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부 글에는 꽤 구체적인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서울서부지법 담벼락 높이와 내부 구조 분석과 관련된 글이었다. 후문 쪽 담을 넘으면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때까지는 언론계 누구도 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실제로 법원을 쳐부수러 갈지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 대통령이 군대까지 동원해 국회를 무력화시키려고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당일 사태는 급박했다. 19일 오전 3시에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소식이 공유되자 법우너 밖 지지자들은 동요했다. 여러 뉴스와 기사에 따르면 1400여 명의 시위대가 서울서부지법 앞에 운집했다. 이중에서 일부인 100여 명 법원 담을 넘었다. 때마침 후문에는 이들을 막을 경찰 병력의 숫자가 태부족이었다.
극우 유튜버들도 앞장섰다. 이들은 ‘애국청년들의 활약상’을 실황 중개로 스마트폰으로 담았다. 법원을 습격하는 전대미문의 장면에 조회수와 후원금이 폭발할 것으로 여겼을 것 같다. 하나하나가 돈이 되는 장면이었다.
일부는 ‘국민저항권’을 외쳤다. 정당하지 못한 법제도에 대한 저항을 했으니 괜찮다는 극우 목사의 부추김이 컸다. 여러 보도에 따르면 그 교회의 전도사로 알려진 법원 담을 넘은 무리에 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와중에 이들을 막으려던 경찰과 물리적으로 충돌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경찰은 초반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바리케이드는 무너졌고 방패와 경광봉이 빼앗기는 사례까지 나왔다. 일부 화면에서는 경광봉으로 맞는 경찰의 모습이 비춰졌다.
더 큰 난리는 일부 시위대가 법원 6층에까지 올라갔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차은경 판사를 찾기 위해서다. 차 판사가 퇴근해서 자리를 비웠기 망정이지 혹시라도 밤샘 근무를 하고 있었다면 큰 봉변을 당할 뻔했다.
대신 사무실 내 컴퓨터와 사무집기 등이 화풀이 대상이 됐다. 컴퓨터는 바닥에 내쳐졌고 책상은 쓰러졌다. 그 안의 서류는 바닥에 쏟아져 나왔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서부지법 주변으로 온 기자들은 윤석열 지지자들의 분노와 증오의 대상이었다. 기자임을 숨길 수 없는 방송기자들이 제1타깃이 됐다. 방송 카메라를 들고 있는 카메라 기자와 취재기자를 둘러쌌고 온갖 욕설을 했다. 어떤 기자는 멱살이 잡혔다.
시위대 중 일부는 자경단을 자처하며 주변 시민들에게 신분을 물어봤다. 기자임을 숨기고 있는 사람을 색출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공수처 수사관, 법원의 판사, 언론계 기자들에 가감 없는 증오를 보였다.
새벽 5시가 될 즈음 그들의 난입은 한바탕 소동으로 끝났다. 전열을 가다듬은 경찰이 하나씩 하나씩 난입자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법원 담을 넘은 100여명 중 현장에서 체포된 이들의 숫자는 40여 명이었다. 그들은 법원 한구석에 모여 앉아 경찰의 호송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판사를 색출하러 다니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민주당을 비롯해 시민사회는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은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는 이들 대부분이 노년층이고 청년층은 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날 구속된 이들의 절반이 20~30대 남성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20~30의 보수화를 진지하게 우려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분석해야 하나. 물론 대다수 20~30대 남성들은 계엄을 반대했고 탄핵을 찬성했다. 설문조사 상으로 30% 정도가 보수 성향을 깊이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세대나 보수와 진보 성향의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20~30대 남성들을 싸잡아 보면 안된다는 얘기다.
한국갤럽이 지난 2월 28일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18~29세 남성 중 탄핵에 찬성하는 비율은 51%, 반대하는 비율이 36%였다. ‘모르겠다’라고 답한 비율이 13%였다.
이들이 탄핵에 반대하는 비율은 다른 연령대와 비교하면 결코 높다고 불 수 없었다. 이 조사에서 60대 남성은 47%가, 70대 이상 남성은 59%가 탄핵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연령대를 기준으로 봤을 때 탄핵 찬성이 여전히 다수였다.
문제는 정치인들이었다. 윤 대통령의 반법헌법적 행태에도 불구하고 일부 인사들은 극우적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그 분노의 대상은 헌법재판소를 향했다.
모 국민의힘 의원은 3.1절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극우성향 집회에 나가 “공수처, 선관위, 헌법재판소 불법과 파행을 자행했다. 모두 때려 부수어야 한다. 쳐부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다고 쳐도 선거로 뽑힌 국회의원이 하기에는 부적합한 말이었다. 왜 서부지법 폭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짐작케하는 발언이기도 했다.
전쟁은 노인들이 일으키고 피는 젊은이들이 흘린다던가. 선동은 나이 든 정치인들이 하고 법적 처벌은 젊은 청년들이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