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 중 하나는 ‘보고 싶지 않은 현실도 보는 안목’이다. 이 안목은 자신과 그 주변에 대한 ‘메타인지’에서부터 시작한다. 자기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의심과 점검이 그래서 필요하다. 내가 알고 있는 게 틀릴 수도 있으니까. 이 세상 어디에도 ‘절대적인 것’은 없다. 그래서 주변 누군가의 ‘쓴소리’가 필요하다.
윤 대통령의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있다. 이런 ‘쓴소리’를 하는 사람을 ‘격노’라는 행위로 배제한다는 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본인의 고집과 해석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가 극우 유튜브에 빠져든 것도, 현직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부정선거론에 심취한 것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물론 이를 전환할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우선은 지난 2024년 4월 총선 때였다. 그때 국민 민심을 체감하고 방향을 틀었어야 했다. 임기 내내 여소야대 국면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여러 방안을 강구했어야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영수회담을 추진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실익이 없었다.
두 번째는 비상계엄 이후 이어졌던 탄핵정국이다. 마지막으로 대통령 윤석열의 지난 과오를 반성할 수 있는 기회였다. 스스로 물러났다면 탄핵당해 파면되는 불행한 대통령의 일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비상계엄이라는 막중한 일을 벌인 것에 대한 후과를 감당하기 싫어 버텼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동안은 검찰 등 사법기관도 함부로 수사를 시작하지 못할테니까.
윤 대통령과 여권이 버티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여론지형의 변화였다. 탄핵정국 장기화에 국민들은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비롯해 여러 국무위원들이 민주당의 탄핵으로 직무정지가 되자 반(反) 민주당 정서도 커졌다. 이 정서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로 이어졌다. 이들이 결코 잘한 게 없는데 지지율이 오르는 반사 이익을 본 것이다.
여론조사업계에서 공신력 있다고 인정받는 한국갤럽조사 1월 셋째 주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39%였다. 수치만 놓고 봤을 때는 민주당의 36%를 앞선 것으로 보였다. 공교롭게 국민의힘 지지율 39%는 최근 6개월 기준 최고치였다. 지지율 상승세에 국민의힘은 고무됐다. 이를 바라보는 민주당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론에도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 탄핵 찬성이 여전히 다수였지만 그 격차가 줄었다. 계엄 직후였던 2024년 12월 둘째 주 75%였던 탄핵찬성 여론은 1월 셋째 주 들어 54%로 내려앉았다.
이런 결과에 윤석열 대통령의 자신감도 올랐다. 자동응답전화(ARS)로 진행된 일부 설문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를 넘겼다. 집권 이후 최고 지지율이었다. 정치평론가들도 의아하게 바라봤다.
광화문과 한남동 관저 앞에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몰려와서 탄핵 반대를 외쳤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 수천이었다. 전광훈 목사 등 기독교계 극우인사들이 중심으로 보수 지지자들이 모였다. 이곳을 찾은 국민의힘 의원들은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당연히 윤 대통령을 옹호하며 탄핵반대 주장을 했다.
이런 여론 조사 결과에 힘입어 자신이 무도한 반국가 세력의 희생양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15일 구치소로 가면서 남긴 육필 서신에는 “이렇게 직무정지 상태에서 ‘내가 대통령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썼다.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렸을 것 같은 메시지였다.
그는 메시지에서 자신의 계엄이 정당하다고 부연했다. “계엄은 범죄가 아닙니다. 국회 독재의 망국적 패악을 감시, 비판하게 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와 헌법 질서를 지키려 했습니다.” 탄핵 소추를 주도한 민주당과 행태에 대해선 “사기 탄핵, 사기 소추”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불과 50일 전까지 ‘일선후퇴’를 외쳤던 것을 생각하면 확 바뀐 자세였다.
1월 분위기만 놓고 봤을 때는 여권이 다시금 유리해진 것 같았다. ‘해볼만 하다’라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까. 윤 대통령 탄핵을 지지했던 이들도 ‘이러다 (탄핵이) 기각되는 것 아닌가’ 불안해했다. 그가 다시 복귀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왔다.
그런데 간과했던 게 있다. 실제 여론과 ‘그들이 보고 싶은 여론’의 차이였다.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연일 울려대는 여론조사 전화를 받지 않았고 응답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속내까지 여론조사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는 2025년 1월 24일 있었던 서울역 귀성 인사 때 드러났다. 실제 부딪혀본 길거리 민심은 숫자로 보던 여론조사 민심과 판이하게 달랐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기차역에서 만난 싸늘한 민심에 당황했다. 의기양양하게 귀성 인사에 나선 그들이었지만, 많은 시민들이 외면했다. 악수를 거부한 사람들도 있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를 반가워하며 악수를 나눈 이들도 있었지만 소수였다.
지나가던 한 시민은 “대통령이나 지키지 왜 여기 와서 이러느냐, 민주당보다 더 나쁜 놈들이다”고 고함을 질렀다. 권성동 원내대표를 향해서는 “권성동은 뽑아줬더니 무슨 짓을 하느냐”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이뿐이었을까. 탄핵을 찬성하는 시민들도 쓴소리를 냈다. 한 사람은 “당신들 때문에 시민들이 편하지 않다, 폭동 옹호 세력 ‘국짐당’은 해체하라”고 외쳤다. 이 와중에 김상훈 정책위의장이 다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탄핵 찬성과 반대, 양측으로부터 좋지 않은 소리를 듣고 분위기도 험악해지자 국민의힘 지도부 의원들은 서둘러 자리를 떠야 했다. 그냥 보통 시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각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반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였다. 일부 시민은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을 찾은 이재명 대표에게 와서 셀카 촬영을 요청하기도 했다. 고성이 있었던 국민의힘 지도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서울역과 서울고속터미널이 서로 달랐을까. 민주당이 예상치 못하게 용산역 등이 아닌 고속터미널을 찾으며 미리 약을 쳐둔 것일까?
여론조사와 관련해서 한 가지 힌트가 있다. 바로 여론조사가 갖는 맹점이다. 거기에 나온 숫자가 실제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서 표본, 조사 방식에서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오류를 줄이는 일이다. 쉽게 말하면 여론조사 상의 숫자는 ‘참고사항’일뿐 절대적인 지표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여론조사 방식, 표본 표집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그 와중에 여론조작의 여지가 존재한다. 정치 현안 관련 조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휴대전화를 통한 설문’이다. 계속 전화를 하면서 최종 표본 1000명을 채워나가는 식이다. 대부분은 1000명을 한 번에 못 채운다. 그래서 1000명이 채워질 때까지 전화를 계속 돌린다. 만약 1000명을 채우기 위해 1만명한테 전화를 걸었다면 응답률은 10%가 된다.
전화로 설문을 하는 방법은 직접 사람이 묻는 방법과 기계음에 따라 응답 버튼을 누르는 ARS 방식이 있다. ARS는 응답률이 보통 5% 미만일 때가 많다. 95%의 사람은 기계음을 들으며 설문 문항에 성실히 답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보통 사람들의 의견, 진짜 여론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간이 남거나 적극적인 정치 참여자일수록 전화 응답을 할 가능성이 높다.
또 ARS는 신뢰성에 있어 의심을 받는다. 무작위로 전화번호를 추출한(RDD) 방식이라면 응답자가 속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남성이면서도 여성이라고, 60대이면서 20대라고 가장할 수 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높게 나왔던 조사도 RDD로 추출한 전화번호로 ARS 전화를 걸어 얻어낸 결과치였다.
다시 말하면 보수의 결집, 윤 대통령 탄핵 반대 민심의 결집은 경향성 면에서 ‘유의미’할 수 있으나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넘을 만큼은 아니라는 의미다.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에 꿰맞춰 나온 숫자라고도 볼 수 있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 모두 ‘객관적 현실’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현실 정치인은 이 같은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주변에서 하는 얘기, 특정 장소에 모인 지지자들의 환호만 보고 그게 진짜 현실인 줄 안다. 지지자들 사이에만 둘러싸여 있으면 그 외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정서를 읽을 수 없다. 어쩌면 그곳이 위안처일 수 있다.
그 정치인을 지지하는 순수한 유권자들의 모임이라면 그래도 나을 수 있다. 든든한 후원자가 될 수 있으니까. 허나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혹은 그 정치인을 이용할 목적으로 ‘낭인’ 같은 사람들이 모인다면 비극이 될 수 있다. 국가적으로도 막심한 손해를 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