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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팟캐김 Nov 21. 2020

인플레가 절실한 일본의 또다른 이유

국가 경제 전반적으로 물가가 떨어지는 현상을 디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내가 사야 할 물건의 가격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은 나쁠 게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생산자나 판매자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습니다. 버는 돈이 줄기 때문입니다.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여기고 소비자들은 소비를 미루겠죠. 생산과 소비가 활발히 일어나야 경제도 성장하는데,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이를 기대하기 힘들어집니다. 


돈의 가치도 바뀝니다.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갖고 있는) 돈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늘어납니다.  달리 말하면 빚을 진 사람의 부담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일본 얘기를 해보면 이해가 쉬우실 것입니다. 


일본은 1980년대 거품 경제를 경험하고 1990년대부터 지겨우리만큼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30년을 디플레이션과 싸워 왔습니다. 여러가지 극약 처방도 내놓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제로금리입니다. 


제로금리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자율을 낮춰 사람들이 돈을 많이 빌려가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주로 중앙은행에서 은행에 돈을 빌려줄 때 합니다. 은행은 중앙은행에서 빌려온 돈을 기업에 다시 빌려주는 것이지요. 기업이 투자를 더 하기 기대하는 것입니다. 


기업이 투자를 하면 사람을 더 고용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 여력도 상승합니다. 생산이 늘고 소비가 증가하니 자연스럽게 경제 규모는 커집니다. 물가도 상승하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은행 금리를 낮춰도 별 효과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일본정부와 일본 중앙은행은 유동성을 강제로 시장에 공급하는 정책을 씁니다. 2012년 아베 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 경향은 더 두드러졌습니다. 그가 재집권한 후 일본내 본원통화량은 3배가 증가했습니다. 물가가 뛰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일본 정부가 물가 상승을 바라는 경제성장 외 또 다른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신들이 지고 있는 채무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한 목적입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일본의 국가 채무는 GDP 대비 300%를 향하고 있습니다. 2018년 기준 일본 정부 부채는 1경2000조원으로 GDP 대비 240%입니다.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일본은 부도를 내고도 남았어야 하는 것이죠. 1950년대 이후 약 40년간 고도성장을 하면서 축적한 국내외 자산이 많이 있고 일본 정부와 공동 운명체 격인 국민들이 국채를 많이 사줬던 게 불행 중 다행일 뿐입니다. 




GDP 대비 일본 정부 부채 비율 추이 전망 (자료 :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이런 상황에서 디플레이션은 ‘독’입니다. 왜일까요. 


쉽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7%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국가라면, 해당 국가의 돈의 가치는 10년 뒤 절반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달리 말하면 1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10년 뒤 그 빚의 가치는 현재의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경재개발협력기구(OECD) 선진국의 연평균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5.4%였습니다. 돈의 가치가 30년 뒤면 원금의 가치가 5분의 1로 떨어지는 것이죠. 따라서 장기 채권에 투자하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원금이 의미가 없다시피 합니다. (장기채에 투자한 채권 투자자들은 원금은 0으로 생각하고, 이자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는 얘기입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경기 활성화를 시키면서 미래 부채에 대한 부담도 덜려는 의도입니다. 1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일본 중앙은행의 무차별 유동성 공급 정책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제로금리가 안 통하자 돈을 찍어내 시장에 직접 공급하는 정책까지 쓴 것이죠. 


그러나 일본의 인플레이션은 1% 미만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올해는 다시금 ‘명확한’ 디플레이션 상황으로 돌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 밖에요. 


혹여 인플레이션이 일본 정부의 목표대로 유발된다고 해도 문제가 있습니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장의 돈만 많아진다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일본 국민들이 떠 안게 되는 것이죠. 


엔화 가치 하락은 일본 국민들 입장에서 사야할 물건들의 가격 상승을 의미합니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물가만 올라가니 삶은 더 팍팍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쥐고 있는 국채의 가치 하락은 그들 자산의 가치 절하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노인 인구는 늘어나는데, 이들에 들어가는 연금과 복지 비용은 더 커지고, 일본 정부의 채무 상환 부담은 더더욱 커지고. 일본 산업계에 혁신을 기대하기는 힘들고. 일본 경제의 고민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상 실패로 결론이 날 것 같은 아베 총리의 경제 정책(실패로 귀결된 인플레이션 정책), 그리고 그 정부의 무능함이 드러난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런 상황을 목도하면서도 잠잠한 일본 국민들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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