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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 물러나서 보는 美 관세협상

by 팟캐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이 전 세계를 휘감고 있습니다. 수출로 먹고 살면서 안보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는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달 1일 '25% 상호관세'를 적용한다고 통보까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상황에서 기업들은 초조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미국이 요구한대로 25% 관세가 적용된다면 미국 경제가 받는 부담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 소비자들의 후생 저하, 다시 말하면 미국내 물가와 금리 상승 압박을 받게 됩니다. 경제학에서 쓰는 도표와 수식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美 관세 압박의 목적은?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우선 통상정책을 통해 무역적자를 줄인다는 데 1차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외국 기업들의 미국내 직접 투자와 생산을 유도해 미국내 고용을 늘리고 성장을 도모한다는 계획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 '효율성'에 근거해 구축됐던 국제 무역 네트워크를 어느정도 뒤흔들겠다는 복안인 것이죠. 제1 타깃이 중국이라면 그다음은 한국과 일본 등 수출 선도국가가 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당연하게도 한국의 지정학적 특수성, 일본이 가진 동반자 관계도 트럼프 대통령은 애써 모르는 척 하는 것 같습니다. 국제 무역에 있어 각국 경쟁력 차이는 당연히 안중에 없을 것입니다. 미국으로부터 무역 흑자를 거두는 나라는 민폐국 내지 '프리라이더'가 되는 것이죠.


트럼프 행정부는 일단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s) 혹은 ‘보편적 기본 관세’(Universal Baseline Tariff, ‘보편관세’)를 이들 나라에 부과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상호관세는 무역 적자국을 대상으로 미국산 제품과 현지 관세율의 눈높이를 맞추겠다는 관점이 반영돼 있습니다. 보편적 기본과세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특정 국가 물품을 대상으로 추가 부과하는 누적 관세입니다. 상호관세가 무역불균형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라면 보편적 기본관세는 보호무역주의가 노골적으로 가미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관세도 엄연한 세금의 일종이라는 점입니다. 미국인이라면 한국산 제품을 추가로 부과된 관세만큼 더 비싸게 주고 사야 합니다. 이른바 '소비자 후생의 감소'를 야기합니다.


◇관세가 가져올 파급


2차 세계대전 직후만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회원국의 평균 관세율은 40%에 달했다고 합니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다들 관세장벽을 높이던 때였습니다. 이후 수십년에 걸쳐 미국 주도로 관세 장벽은 낮아졌고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각종 자유무역협정(FTA)로 국가간 관세장벽은 상당히 낮아졌습니다. 한 예로 2000년대까지만 해도 고급 취향으로 여겨졌던 와인이 '그래도 만만한 정도'가 된 것도 관세장벽이 낮아진 덕분이죠.


이런 자유무역체제에서 가장 큰 이점을 누린 이들은 미국 소비자들입니다. 이들의 왕성한 소비를 뒷받침해준 나라가 2001년 WTO에 가입한 중국이었습니다. 기업들도 미국보다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면서 생산비를 낮췄습니다. 덕분에 저물가 상황에서 '지속적 성장'을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성장을 소득의 증가로 바꿔 쓴다면, 미국인들은 더 높은 소득을 누리면서 값싼 물건을 사면서 많은 소비를 했습니다. 만약 액면 그대로 관세가 부과된다면 미국인들의 후생은 줄어들게 됩니다. 가뜩이나 2022년부터 누중된 고물가로 미국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인플레이션 상황이 용인될까요?

세금의 역효과는 경제학 교과서에도 이미 잘 나와 있습니다. 당장은 정부의 수입 증가로 이어질 수 있지만, 소비 감소에 따른 생산 감소로 이어진다는 가정이 잘 반영되어 있는 것이죠. 이런 맥락에서 미국내 주류 경제학자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에 대해 반대를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기업과 소비자들에 대해서는 감세를 하겠다는 방침입니다. 관련법도 이미 통과한 상태입니다. 감세에 따른 세수 부족액을 관세로 채우겠다는 계획도 있는듯 합니다.)


만약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주요 수출국가에 관세가 붙었고 미국으로 수입되는 공산품에 가격이 전체적으로 오른다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정책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잡겠다고 빅스텝(0.5%p 금리인상)을 단행하며 난리르 쳤던 게 불과 2~3년 전입니다. '금리 내려라'면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압박하는 것도 별 소용이 없게 됩니다.


미국 정부도, 우리 정부도 미국의 진퇴양난 상황을 잘 알 것이라고 봅니다.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은 전형적인 '허장성세'일 수 있습니다. '관세'라는 카드로 크게 한번 흔들어 놓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하는 것이죠. 강자가 취할 수 있는 전형적인 협상 방법입니다.


◇우리는 줄 게 없다? 이미 주고 있기 때문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앞둔 우리 정부의 고민은 미국 측에 딱히 안겨줄게 없다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방위비 증액, 농산물 시장 개방 등을 새로운 카드로 내밀 수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오케이'할지 미지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주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대미 무역 흑자가 이를 말해주고 있죠. 트럼프 대통령이 '불공정 무역의 근거'라면서 우리를 압박하는 주요 근거가 되는 대미 흑자액입니다.


지난 4월 산업연구원이 발간한 산업정책 리포트 '한국 애미 수출의 구조적 분석' 자료를 보면 최근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미국 제조업과의 연계성에 기반한 필연적 결과였습니다. 무슨 말이냐, 미국내 제조업을 우리나라 기업이 키워주면서 생긴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리포트에 따르면 대미 무역수지는 2020년 166억달러 수준이었다가 2022년 280억달러로 늘어납니다. 2024년에는 560억달러로 크게 늘었습니다. 수입이 소폭 감소하는 가운데 우리 수출이 크게 늘어난 이유가 큽니다. 좀더 뜯어보면 우리기업이 미국내 공장을 만들고 생산활동을 하면서 투입된 기계설비 등의 자본재,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중간재가 많이 포함된 것이죠. 바이든 행정부 때 한국 기업에 요구했던 것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호응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자체도 한국의 중간재를 많이 사간 점도 한몫합니다. 대중국 무역 제재를 하면서 한국산 중간재 수요가 이전된 것입니다.


즉,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가 활발해자민셔 '한국산 산업재 조달 → 중간재 및 자본재 수출 증가 → 연계성 강화' 흐름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공장이 다 완성되고 미국내 원자재 수급이 늘면 지금의 대미 흑자폭도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현대차는 2025년 3월 총 21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합작해 미시간 배터리 공장을 20억달러에 인수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미국에게 좋은 대미 흑자인데,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이니 아이러니합니다.


그래도 한국은 수 천년 강대국 틈바구니 사이에서 외교로 난국을 넘긴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도 그리 호락호락한 나라는 분명 아닙니다. 미국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도, 우리가 지나치게 불리한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미국도 자신들의 요구가 100% 수용될 것으로 여기진 않을 것 같습니다. 자국 소비자들의 후생에 악영향이 갈 수 있으니까요.


적당한 접점을 찾는 게 필요해보입니다. 지금 당장 뚜렷한 답을 낼 수 없는 상황이겠지만상호 호혜적인 측면에서 합의를 이뤄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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