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방송사 기자의 사례
'진실'을 전달한다는 것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 고민이 많을 때가 있다. 사실 '진실'이라는 게 상당 부분 내 입장과 관점에 따라 재단되는 부분이 많다. 100명이 있다면 100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내가 관점을 갖는다면, 다른 관점을 가진 누군가로부터 비판받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내가 본' A 방송사 기자에 대한 부분을 말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대통령실이 했던 '소통'의 실패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서로가 서로의 오해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키워나갔던 사례가 아닐까. '감정'이란 게 일상적인 '사안'에 개입된다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는 하나의 예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건의 발단은 올해 6월 말이었다. 대통령실은 언론사 기자들과 소통하고 싶어한다. 선의의 취지다. 그중에는 현장 기자도 있겠지만, 언론사 사장이나 국장 등 고위급도 있을 수 있다. 대통령으로서 여러 가지 당부의 말을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그 언론사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점이다. 특정 신문사와 방송사가 정해져 있던 1980년대야 고민할 부분이 아니지만, 지금은 대통령실 출입 매체만 100군데가 넘는다. 이른바 '풀'을 하는 중앙매체의 숫자는 50개가 된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순번을 나눠 여러 번에 걸쳐 하거나, 대통령실이 나서서 취사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참모들은 이런 상황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만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면 제대로 된 대화의 기회를 잡기조차 힘들다.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관계의 밀도'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되도록이면 최적의 숫자를 맞춰 원활하게 행사를 진행하고 싶은 게 참모와 스태프들의 마음이다.
해결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비밀리에 진행하는 방식이다. 새어 나가지만 않으면 쓸데없는 노이즈를 줄일 수 있다. 참모들 입장에서도 덜 피곤하다. 비밀 유지만 된다면 쌍방이 편하다. 허나 새어 나가면 초대받지 못한 자들에게 호된 비판을 받게 된다.
두 번째는 순번을 나눠 하거나 혹은 한꺼번에 다 부르는 식이다. 순번을 나눠 모은다면 두 번째, 세 번째 모일 언론사는 훗날을 기약하기 힘들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대통령의 시간은 한정돼 있어 확약할 수 없는 이유가 크다. 한꺼번에 모이면 대화의 밀도는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대통령실은 첫 번째 선택을 했다. 비공개 행사로 진행했다. 아마도 초대 대상이 된 언론사에는 은밀하게 공지가 갔을 것이다. 설령 이 행사가 알려진다고 해도 '비공개'라면서 협조를 구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비공개'나 '엠바고'에 대한 부분이다. 국가 안보와 관련된 부분은 언론사들도 대통령실이 요청하면 비공개 사항을 준수하는 게 대부분이다. 엠바고는 대통령실이 기자단 간사들과 협의해 설정하곤 한다. 무차별적으로 기사가 나가 혼선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언론사 사장을 만나는 일을 '비공개'로 하거나 '엠바고'를 붙일 명분이 있을까? 혹여 이에 따른 '노이즈'를 염려해 '비공개'로 함구하는 것은 아닐까. 분명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해당 방송사의 기자는 이 부분을 문제 삼았다. 물론 주변에서는 그 방송사의 사장이 대통령과의 저녁에 초대받지 못한 이유도 컸을 것이라고 봤다. 이미 많은 매체들이 비슷한 이유로 항의를 했었던 터였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대처였다고 본다. 대변인과 기자 간의 신경전은 일상다반사로 이뤄지는 일인데, 카메라로 실황 중계되고 있던 상황에서 그대로 나갔다. 양자 간의 대처는 차분했지만, 누가봐도 '기분 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미 미디어 전문지에 기사로 나왔고 기자들 사이에 소문이 났다고 해도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어땠을까. 안 그래도 소문으로 퍼져 입장이 곤란했던 대변인을 코너로 몰아넣는 결과가 됐다. 당연하게도 대변인은 기자의 질문 의도를 '악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었다.
불쾌한 감정이 서로 간에 개입되면 그때부터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나기 쉽다. 문제 해결이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제3자가 개입하면 문제 해결은 더 힘들어진다. 이 사건은 갈등이 큰 것처럼 유튜브로 중계됐고, 그 영상은 고스란히 캡처됐다. 대통령실 밖 제3자의 편집과 해석이 붙어 해당 기자는 뭇매를 맞았다. 유튜브 생태계의 특성상 '조롱의 대상'이 된 것은 물론이다. 해당 기자는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다시금 말하지만, 유튜브라는 '다시 재생'과 '화면 캡처'가 쉬운 매체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갔을 일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제3자에 의해 재가공되면서 문제는 커졌다. 대통령실과 해당 기자와 매체와의 정면 충돌을 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방송사도 이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번 사안과 관련해 이동형 시사평론가는 의미 있는 말을 했다. 그는 방송사 기자의 영상을 올렸던 유튜버나 이를 본 댓글러와 달리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해당 기자를 몰아세우지도, 대통령실을 추켜세우지도 않았다. 단순하게 짜깁기 편집으로 수익을 노리는 사람과는 분명 다른 관점을 보였다. 정치에 대한 생리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일 것이고.
그는 지금 시대에 '악플' 혹은 '사이버 모욕'에 크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조언을 했다. 기자라는 직업에 뒤따르는 부작용 같은 것으로 봤다. 본인은 더한 악플에 시달렸다고 했다. 친민주당 성향이지만 그 안에서도 그를 반대하는 이들이 있고, 더 혹독하게 비난하는 이들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주관을 얼마만큼 지켜나갈 수 있는가이다. 절차의 정당성을 지키면서 도덕적으로 당당하면 된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칭찬만 받을 수 없는 게 이 세상이다. 비판은 받되 그것에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대통령실의 참모진들도 10여 년 전, 20여 년 전에 머물러서는 결코 성공적인 소통을 담보할 수 없다. 한쪽에만 호소하는 소통은 더더욱 그렇다. 선거라는 빅 이벤트를 좌우하는 대다수는 침묵하면서 관망하고 있다는 부분을 유념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