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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인사로 소통한다

by 팟캐김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는 '실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 분야에서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인물을 내세우는 식이다. 이른바 전문가 인사인데 대표적인 사례가 새로 신설된 AI미래수석이나 정보통신과학기술부 장관이다. 두 사람 다 정치권과는 그리 큰 연이 없었지만 이들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냈던 사람들이다. 그들뿐일까, 비서관급도 현안을 꿰차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그들이 하는 말을 보면 '해박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다음 글은 4선 의원을 지냈던 우상호 정무수석에 대해 썼던 글이다. 국무총리는 물론 대통령도 떨게 만들었던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출신 우 수석이 차관급인 대통령실 정무수석을 수락한 이유가 잘 드러나 있다.



◇긴박하게 걸려온 전화


“그렇다면 비서실장은 누구입니까? 강훈식 의원이요? 좋습니다.”


21대 대통령 선거가 이재명 대통령의 승리로 예측됐던 6월 3일 밤 ‘야인’이었던 우상호 전 의원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당선인 신분의 이재명 대통령이었다. 이 대통령은 4선 의원이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까지 지냈던 그에게 정무수석 자리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이 대통령 최측근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지만 그 전화만큼은 그냥 끊기 어려웠다.


정무수석 자리를 수락한 우 전 의원은 비서실장이 누군지 물었다. 당내 후배 의원이었던 강훈식 의원이었다. 나이도 자신보다 11살이 어렸다. 장관급(비서실장) 후배 밑에 차관급(정무수석)으로 들어가게 됐지만 우 전 의원은 흔쾌히 응했다. 젊은 사람을 비서실장으로 쓴다는 것 자체가 변화를 바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철학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3선 출신 70년대생 강훈식 비서실장 밑의 4선 출신 ‘86세대’ 대표주자 우상호 정무수석 라인이 완성됐다.


6월 24일 서울의 한 언론사 행사에서 우 수석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 방향을 3개 키워드로 소개했다. ‘통합’, ‘성장’, ‘분배’다. 풀어 쓰면 ‘통합에 기반한 성장과 그에 따른 분배’다. 우 수석은 “기존 정치 권력의 패권주의나 진영 논리를 넘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추구하는 ‘통합’은 그의 인사에 반영이 돼 있다. 비명계였던 본인(우상호)과 계파색이 옅은 강훈식 비서실장,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을 중용한 게 그 예다. 김용범 정책실장 등 주요 수석진 역시 친명이 아닌 비명계 인사로 채워졌다. 우 수석은 “과거 정부에서 진영 논리에 따라 보복성 인사를 하고 측근 중심의 인사 기용을 반복한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고 자부했다.


더 나아가 전임 윤석열 정부도 비교 대상이 됐다. 우 수석은 “윤석열 정부 초기에 검사 출신들로 인사가 됐던 게, 진영 정치의 벽을 두텁게 만들었다”며 “이 점과도 분명히 비교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통합 인사 기조는 관료나 정치 경험이 없는 전문가를 대통령실과 내각에 기용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한성숙 전 네이버 최고경영자(CEO)와 대통령실 AI미래수석으로 선임된 하정우 전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 센터장이다. 우 수석은 “이 라인업이 뭘 하려는지, 어디에 공을 들이는지, 대한민국 경제의 포인트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대통령이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이 대통령의 가장 두드러진 경제 행보가 울산 AI 데이터 센터로 갔던 것”이라며 “SK 최태원 회장을 그냥 만나러 간 게 아니라, 혁신적인 아이템이라면 이를 추진할 수 있는 내각과 수석을 마련하고 확실히 힘을 실어주겠다는 것”라고 분석했다.


이번 이재명 정부 인사에 있어 유독 눈에 띄는 한 부분도 언급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유임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수차례 국무회의를 열면서 송 장관의 업무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우 수석은 “능력 있는 인사는 계속 중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사로) 보복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 수석은 분배에 대해서도 이재명 정부가 기존 진보정부와 차별화된 철학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진보정권이 분배에 초점을 맞추면서 여러 논란을 일으켰지만 이재명 정부는 성장을 통해 ‘쓸 수 있는 몫’을 확보하고 그 이후 자원을 어떻게 나눌지 설계한다는 입장이다. AI, 에너지·바이오산업이 성장을 위한 핵심 동력이 된다.


우 수석은 “통합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경제의 성장 동력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혁신성장을 실현하려고 한다”며 “지금 이 방향이 이재명 정부의 국정 기조이자 로드맵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다.


외교 현안에서도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 기조는 확고하다고 우 수석은 설명했다. 비근한 예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불참 결정을 들었다. 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다각도로 나토 정상회담 참석을 고려했지만 실익이 적다고 평가했다. 나토 회담 참석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인데, 중동 정세 악화로 회담 성사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우 수석은 “단순히 악수만 하고 사진만 찍는다면 국민 실망이 더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그 시간에 국내에서 현안 대응에 더 집중하자고 결론 내렸다”고 전했다.


나토 불참을 놓고 제기됐던 ‘자주파와 동맹파의 대결’ 구도에 대해서 우 수석은 “10년, 20년 전 잣대로 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자주파와 동맹파가 싸울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외교 환경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한국을 둘러싼 외교·통상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우 수석은 “트럼프 정부가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며 “지금의 통상 환경은 매우 심각한 위기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6개월 국가 외교시스템이 정지되면서 위기 상황은 더 커졌다고 그는 봤다.


우 수석은 “이재명 대통령은 실용적 판단을 중시하며,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중심에 두고 결정하고 있다”며 “이런 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방향성을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바쁘다 바빠


“와우, 카메라가 있는 거야? 골 때리네.”


대통령실이 14일 이재명 대통령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잼프의 참모들 에피소드1’을 공개했다. 첫 회의 주인공은 우상호 정무수석이다. 영상 제목은 ‘바쁘다 바빠 대통령실 큰형님’. 국가적으로 1급 보안 시설로 분류되는 대통령실 내부, 그것도 정무수석실 일부 회의 장면이 담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참모진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영상의 첫 장면은 우 수석이 자신의 사무실에 설치된 카메라를 발견하고 던진 농담으로 시작된다. 황당하다는 표정과 함께 “골 때리네”라는 말을 꺼내며 웃음을 자아낸다.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너무 바빠요. 노동 강도가 세요”라고 말한 뒤 “대통령을 좋아하지만, (일이 많아) 잘 안 맞아요”라고 웃었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 말 속에는 실제로 숨 가쁜 하루 일과가 담겨 있다.


우 수석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출근 직후 정치권 관련 주요 보도를 훑어보고, 오전 7시30분에는 정무수석실 스태프들과 회의를 연다. 전날 있었던 사건·사안에 대한 보고를 받고, 당일 예정된 일정과 변수를 점검한다. 잠시 후 대통령이 요청하면 ‘오전 티타임’이 이어진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그날의 주요 현안을 보고하고 의견을 나눈다. 티타임이 끝나면 곧바로 후속 조치 마련을 위한 회의가 열린다.


전화 통화량만 봐도 그의 업무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정치인과의 통화만 하루 10통 안팎, 기자들과의 통화는 최소 50통에서 많게는 100통에 이른다. 그의 휴대전화 연락처에 저장된 번호만 2만여개다. 정무수석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회와 대통령을 잇는 가교 역할을 맡는다. 이날 공개된 영상에도 방송법, 상법 등 여야 이견이 큰 법안을 놓고 논의하는 장면이 포함됐다.


4선 의원, 원내대표, 서울시장 도전 경력까지 있는 우 수석은 국회의원과 정무수석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정무수석은 훨씬 더 광범위한 업무를 수행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은 상임위 활동과 지역구 관리에 집중하면 되지만, 정무수석은 국회 16개 주요 상임위 전체를 포괄하며 여야 지도부는 물론 원외 정치권 인사들까지 챙겨야 한다. 그는 “노동 강도가 너무 세다”며 극심한 업무 부담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우 수석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도 종합적·입체적으로 상황을 보고, 결정해야 할 부분에선 날카롭게 개입한다”며 “논의와 결정이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보여주는 ‘속도감’과 ‘결단력’은 정무수석 업무에도 직결된다는 의미다.


우 수석이 이처럼 ‘쇠 빠지게’ 일하는 이유는 대통령의 직접 요청 때문이었다. 대통령실 참모진을 구성하던 당시 이 대통령은 우 수석에게 “자신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국가를 위해 헌신해 달라”고 부탁했다. 비명계이자 한때 ‘수박’으로까지 불렸던 그에게 ‘조언’이 아닌 ‘역할’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국민 세금으로 국회의원 4선을 지냈다. 쌓은 경륜과 경험을 투입하는 건 당연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단 10초간의 망설임 끝에 수락했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우 수석 편을 시작으로 ‘잼프의 참모들’ 시리즈를 이어갈 계획이다. 각 참모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고, 대통령실의 모습을 보다 친근하게 전달하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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