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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팟캐김 Dec 25. 2021

[경제위기란?-9]남유럽재정위기

나랏빚 무서운 줄 알아야 


2021년도 다 가네요. 올 겨울은 대선으로 후끈할 듯합니다. 가족 리스크로 사실상 네거티브 선거로 판세가 굴러가고 있지만 중간중간 대선 후보들은 경제 관련한 공약을 내놓기도 합니다. 


이 중 하나가 50조 원 손실보상 공약입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먼저 내세웠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이를 받은 모습입니다. 두 후보 모두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겠다는 측면에서 같은 공약을 낸 것입니다. 


정부가 쓰는 돈의 양을 늘리려면 세금을 더 걷거나, 국채를 발행해야 합니다. 증세는 각 국민들의 세 부담이 늘게 하고, 국채 발행은 추후 정부가 짊어져야 할 이자 부담을 높입니다.  


문제는 이들 후보들이 '세출'에 대해서는 강력히 얘기하면서도 '세입'에 대한 얘기는 뚜렷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혹은 (우리가 알고 있기로) 증세를 반대하는 전통적인 보수 정당의 입장과 분배를 강조하는 진보 정당의 입장이 맞부딪혀 토론이라도 일어나야 합니다. 이 과정 중에 우리 국민들도 증세와 나랏빚 증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두 정당 모두 나라 빚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이 없습니다. 증세와 나라 빚 증가를 반대해야 할 보수 정당마저 별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정권만 되찾아올 수 있다면 '나라 빚 증가는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라는 생각인 듯합니다. 



남유럽 재정위기 


오늘 전할 얘기는 그리스와 스페인 등으로 대변되는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위기입니다. 정부 빚 증가에 따라 초래된 위기인지라 '남유럽 재정위기'라고까지 불립니다. 보다 정확히는 유로화를 사용하는 남유럽 국가들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유료화를 쓰는 국가들을 묶어 유로존이라고 부릅니다.) 



유로존 국가들과 우리나라 상황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대부분 나라들의 국민 소득이 우리나라보다 높습니다. 유로존 국가들의 시장 규모도 합쳐놓으면 어마어마합니다. 총인구 5억 명, 경제 규모는 우리의 10배인 유럽연합(EU)이 이들의 주된 시장입니다.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유로존에 있는 나라가 그리스와 스페인 등의 남유럽 국가입니다. 유로존에 독일과 프랑스처럼 국제적으로 신용도 높고 탄탄한 경제의 나라들과 함께 있습니다. 


내수 시장이 작아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툭하면 중국이나 일본 등 주변 거대 나라들로부터 무역 보복을 당해야 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부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 규모와 구조만 놓고 봤을 때 우리나라보다 못할 수 있는데 이웃들을 잘 둔 덕분에 잘 살 수 있는 것이죠. 


이들 남유럽 국가는 돈 빌려오기도 쉬웠습니다. 물론 남유럽 재정위기 전까지 이긴 합니다. 든든한 뒷배(독일, 프랑스) 덕분에 유로화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가 높았고, 싼 이자로 국채를 발행해 올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그리스라는 나라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보다 더 비싼 이자를 주고 국제 자본시장에서 돈을 조달해와야 하는데, 유로존 국가라는 이유 하나로 더 싼 이자를 주고 빚을 낼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빚을 내기 쉬운 구조였고, 덕분에 이들 나라의 국가 채무도 2000년대 비교적 빠르게 늘었습니다. 


이런 맥락을 무시하고 우리는 이들 나라의 과잉 복지와 강성 노조가 경제 위기를 초래했다고도 합니다. 그리스 국민들이 거리에 나와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은 더 강해집니다. 


그런데 그리스를 이렇게 만든 이들은 누구일까요? 일차적으로 무능한 정부가 비판받아야 하지만, 이들 나라가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부분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유럽연합과 유로존 


유로존과 유럽연합이 혼동돼 쓰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엄연히 다른 개념이고 명칭입니다. 


유럽연합은 20세기 두 번에 걸쳐 일어난 세계 대전에 대한 반성으로 나왔습니다. 피 터지게 싸웠던 선대 할아버지들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나온 정치 공동체입니다. 여러 나라가 모인 연합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입니다. 


이 유럽연합은 1993년 정식 출범했습니다. 이때 12개 국가로 시작해 지금은 27개 국가가 됐습니다. 원래 28개였는데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서 지금의 숫자가 됐습니다. 


유럽연합 회원국의 총면적은 432만제곱킬로미터로 우리나라의 40배 정도 됩니다. 세계 GDP의 2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유로존 (위키피디아)


유로존은 유럽연합보다 범위가 좁습니다. 유로존 국가라고 해서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닐 수도 있고, 유럽연합 회원국이라고 해서 전부 유로존 국가인 것도 아닙니다. 유럽연합의 공통 통화 유로화를 쓰는 경제 공동체가 유로존이라고 보면 됩니다 독일과 프랑스가 선도해 총 18개 국가들이 모여 있습니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제각각 살던 유럽 국가들이 경제 공동체를 만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선 뭉치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유럽 내 고만고만한 나라 입장에서 독일과 프랑스 경제에 기대어 여러 실익을 누릴 수 있는 것이죠. 인구 5억명의 드넓은 시장에서 관세 없이 내 물건을 자유롭게 팔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이점입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유로존에서 유로화를 사용하는 덕분에 싸게 돈을 빌려올 수도 있습니다. 든든한 부잣집 형님들(독일, 프랑스) 덕분입니다. 1999년 유로존이 결성된 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그리스는 '형님들' 덕분에 이 같은 이점을 누렸습니다. 



그리스 경제위기의 배경은?


그리스는 2차대전 후 고도성장을 하다가 1970년대부터 정체기에 빠져들었습니다. 1980년대 심각한 재정 위기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공공 부문 적자를 차관으로 채웠는데 1992년 말 국공채가 GDP의 100%를 넘을 정도가 됐습니다. 사실 유로존 가입 전부터 외채 의존적인 경제였습니다. 


이런 그리스가 2001년 유로존에 가입합니다. 그간 쌓여 왔던 그리스 경제의 구조적 결함이 '유로존 가입' 이슈에 가려지게 된 것입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소득도 크게 오르면서 그리스 경제도 '괜찮은 호시절'을 맞습니다. 2006년 그리스의 성장률이 4.4%에 이릅니다. 그해 유로존 최고 성적이었습니다. 


2000년대는 세계 경제가 대체적으로 좋았던 때입니다. 인터넷 정보 산업이 성장하고 미국의 금리가 낮게 유지되면서 전 세계 달러 유동성도 풍부했습니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그리스에 관광객이 몰려듭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나라는 단일 통화 체계의 덕을 톡톡히 봅니다. 국경이 희미해지다 보니 많은 유럽 사람들이 관광을 왔었죠. 


관광객이 몰려들자 관광시설 등에 대한 투자가 늘어납니다. 부동산 가격도 올라가게 됩니다. 중국 관광객 붐에 따라 명동 거리가 붐을 일으켰던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하지만 좋은 게 있으면 안 좋은 게 있습니다. 그리스 관광 붐이 도움을 줬던 유로화 단일 통화 체계가 '양날의 검'이 된 것이죠. 부잣집 큰형님(독일, 프랑스)의 존재감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형님 입장으로 가 봅시다. 독일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출 국가입니다. 매해마다 무역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탄탄한 경제로 그 나라 화폐에 대한 선호도도 높습니다. 


무역수지 흑자라는 얘기는 수출로 해서 벌어온 돈이 우리나라에 쌓인다는 얘기입니다. 수출이 잘 돼 달러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의 통화 가치는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주 단순화해서 생각해봅시다. 수출로 해서 달러가 쌓이게 되면, 그 달러를 자국 통화로 바꿔야 합니다. 자국 통화를 바꾸려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과거에는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가 높아졌다면, 유로존 결성 이후에는 유로화의 가치가 높아졌다(환율이 떨어진다)는 뜻이 됩니다. 독일의 수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귀결이 됩니다. 


독일이야 수출할 게 많고, 국제적으로 경제 규모도 크다 보니 어느 정도 가격 경쟁력 하락은 감수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리스와 같은 비교적 허약한 체질의 국가입니다. 당장은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대신 수입하기는 좋습니다. (수입 가격이 싸지니까요) 고질적인 무역수지 적자를 겪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벌어온 돈보다 쓰는 돈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빚은 늘어납니다. 



단일 통화가 낳은 함정 


그리스 내부에서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었지만 부동산 가격은 계속해서 올랐습니다. 관광 수요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상승하는 부동산 가격에 따른 착시 효과가 곧 다가올 경제 위기에 대한 부분을 둔감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위기는 결국 오고 말았습니다. 2008년 미국의 글로벌 금융위기였습니다. 미국 은행들의 대출 부실이 실물 경제 위기로까지 이어졌고, 세계 경제에 파급을 준 것입니다. 


독일의 정치사회학자이자 프랑크푸르트학파 2세대 격인 클라우스 오페가 지은 ‘덫에 걸린 유럽 : 유럽연합, 이중의 덫에 빠지다’ 책에서 오페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여파를 촉발하고, 그 안에 있던 EU 회원국들의 경제적 상황과 잘못된 정책이 자체적으로 우발한 금융 위기와 함께 시작됐다고 진단했어요. 미국 영향이 크지만 유럽연합 결성 후, 유로존이 만들어진 이후 내부 모순이 적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앞서 얘기했죠. 그리스나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은 저리의 자금을 가져다 쓸 수 있게 되면서 국가들은 적자재정을 하면서 과도한 채무 국가가 됐다고 했죠. 더욱이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은행들도 빚잔치를 벌이고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세계 최대 경제대국 미국의 금융 위기는 유로존 내 은행을 혼란에 빠뜨리게 되죠. 유럽연합 내 실물경기의 위기로까지 이어집니다. 급격히 경기가 위축이 되면서 수요가 줄고, 이로 인해 대출은 부실화되는 것이죠. 그리스와 스페인 등 특히 관광이 위주였던 곳은 이런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죠. 손님이 줄고 자산가치가 하락하면서 은행은 부실화됩니다.


은행의 부실화는 곧 그 나라 경제의 위기로 이어집니다.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더불어 그 나라 통화 가치도 하락합니다. 통화 가치 하락을 하게 되면 그 나라의 수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집니다. 


(여기서 이 메커니즘이 중요합니다. 통화 가치가 떨어지게 되면 수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집니다. 수출이 늘면서 외부로부터 외화가 유입됩니다.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면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빨리 졸업할 수 있었던 비결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로존 단일 통화를 쓰는 그리스에게서는 이런 환율 변동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었습니다. 무역수지와 자본수지를 합한 경상수지 흑자가 구조적으로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버는 돈이 많아야 빚도 갚을 텐데 말이죠. 


정리를 해볼게요. 유로존 위기의 직접적 뇌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습니다. 장약은 그때까지 유로존 국가들이 빚잔치를 벌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독일과 프랑스와 같은 큰 형님 국가들이 유로존 경제를 받쳐주면서 그리스오 같은 남유럽 국가들은 위기를 인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애들이 잘해서 좋았던 것인데, 내가 잘해서 좋았다고 본 것이죠. 


막상 경제위기가 빠지게 되면, 환율이 회복의 메커니즘으로 작용해야 하는데, 유로존 국가들한테는 이를 기대하기 힘들었다는 점입니다. 돈을 외부에서 못 벌어오니 빚 갚기가 더 힘들어졌습니다. 결국 구제금융을 받기까지 이릅니다. 


게다가 유럽중앙은행에 중앙은행 역할을 위임하다 보니 그리스 혼자 주체적으로 기준금리를 낮추거나 통화 발행량을 늘리기도 어려웠습니다. 유로화의 함정에 빠진 것이죠. 


이런 복잡한 구조가 얽혀 있으니 그리스 국민들이 10년 넘게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심지어 정부가 재정 흑자를 기록했음에도 여전히 어려웠던 것입니다.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 


또 한 가지. 빚이 거대하게 있다 보니 이자 비용에 대한 부담입니다. 한때 그리스 국민들은 1유로를 벌면 10센트가 빚을 갖는데 쓰인다고 했습니다. 국민들의 복지와 내수 진작을 위해 쓰여야 할 정부 재정이 이자를 갚는데 쓰이는 것입니다. 



확장재정에 대한 고민은 해야 한다 


코로나19로 경기가 어려운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규모 정부 재정이 소요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명제입니다. 


그런데 대선 후보 모두 '돈을 쓰겠다'라는 얘기만 할 뿐 10년 뒤 20년 뒤를 우리나라 국민들이 겪게 될 빚 부담의 후유증을 전혀 고민하지 않는 듯합니다. 


또 경제 위기는 언제 올지 모릅니다. 코로나19 위기를 전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후에 또 어떤 위기가 올지 모릅니다. 국내 경기가 저성장 국면에 빠진 상황에서 지금 빚을 너무 늘려 놓으면, 미래 있을 또 다른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줄 수밖에 없습니다.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가 유로존에 편입되면서 발생했다는 원인 분석도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계기였을 뿐입니다. 그전부터 차곡히 쌓여 있던 부채, 수출 등 먹거리 산업의 부재 등이 컸습니다. 


증세를 반대해야 할 보수정당마저 이런 고민에 대한 흔적이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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