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꽃피다

일상에서 길어올리기

by 천생훈장

올해 초에 새로 산 난에서 꽃대가 아홉 개나 올라 왔습니다. 크지 않은 난인데 별난 일입니다. 이 꽃대들이 자라고 꽃이 피고 지는 걸 보면서, 새삼 여러 가지를 깨닫고 배우게 되네요.


1.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 중)

꽃대가 올라와서 꽃이 필 때까지는 몇 달이 걸립니다. 처음 촉이 올라올 때는 꽃대인지 그냥 새 촉인지 구분이 안 되다가, 몇 주가 지나면 잎과는 달리 모양이 봉긋해지면서 비로소 꽃대인 줄 알게 되지요. 그러고도 다시 몇 주가 더 지나야 제대로 모양을 갖춘 꽃봉오리가 되고, 또 몇 주가 더 지나야 그 봉오리가 열려서 꽃이 핍니다. 하지만 그렇게 핀 꽃은 허망하게도 한 주, 길어야 열흘 정도가 지나면 시들고 맙니다. 최영미 시인의 저 싯구는 선운사에 핀 동백꽃을 보고 썼겠으나, 난꽃의 경우도 역시 예외가 아니더라는.


2. 올라온 꽃대가 다 꽃피는 건 아니다.

봉오리가 맺힌 아홉 개의 꽃대 중 하나는 일찌감치 물러졌습니다. 그것도 아쉽지만, 연휴를 지나고 왔더니 완전히 피기 직전이었던 봉오리 하나도 시들어 버렸네요. 모양이 완전히 갖추어져서 이제 피어나기만 하면 되는데, 어쩐 일인지 그 상태에서 꽃잎이 열리지 못하고 물러져 버린 것입니다. 꽆잎과 꽃받침, 술까지 모양이 완벽히 갖추어진 상태에서 시들어버린 봉오리를 보노라니 왠지 마음 한켠이 아리고 아쉽습니다.


3. 꽃피는 일은 내 바램대로 되지 않는다.

전문적으로 난을 기르시는 분들은 조건을 잘 맞추어서 해마다 꽃을 본다고 하지만, 나처럼 그저 서너 개의 화분을 기르면서 별 지식 없이 물이나 주고, 가끔씩 창가에 내놓아 햇빛이나 받게 하는 경우라면 과연 언제 꽃이 필지 알기 어렵습니다. 어떤 화분은 몇 년이 지나도록 꽃을 피울 기미조차 없는데, 이 난분은 왜 꽃대를 아홉 개나 올릴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상한 일입니다. 소나무는 상태가 안 좋아지면 솔방울을 많이 맺어서 후대를 기약한다는데 어쩌면 이 난이 이렇게 많은 꽃들을 피우려 하는 것도 그런 연유인지 모를 일이네요. 저는 꽃을 보아 좋기는 하지만, 꽃이 피고 지는 일은 기약하거나 예측할 수 없음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2021. 8. 18.)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