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교수님께 드리는 편지

일상에서 길어올리기

by 천생훈장

H 교수님께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더위가 일찍 찾아오고 있습니다. 낮에는 벌써 한여름 같은 날씨인데, 힘든 날씨에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오랜만에 안부를 여쭙습니다.


몇 년 전에 새로 지어진 신진주역 주변에는 역시 새로 지어진 아파트들이 제법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중 하나인 스카이 시티 프라디움(요즘 아파트 이름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에는 주민센터 안에 25미터짜리 레인 4개를 갖춘 수영장이 있습니다. 입주가 아직 덜 되어 주민이 적어서인지 혹은 입주민들의 이용이 저조해서인지, 제가 사는 동네에까지 비교적 싼 가격으로 수영강습 인원을 모집한다는 전단지가 왔습니다. 코로나19 유행을 핑계로 오랫동안 제대로 운동을 하지 못했는데, 마침 좋은 조건이라 생각하여서 얼른 등록을 하고 아주 아주 오랜만에 수영을 하러 가 보았네요. 강습 때는 수강생들로 많이 붐비지만, 따로 가 본 점심시간에는 물속에 몇 분 계시지 않아서 한적했습니다.

수영을 배운 지는 오래되었으나 언제나 초보인 저로서는 한적한 시간에 느릿느릿 물속을 오가는 게 편안합니다. 열심을 내어서 빨리 간다고 가지만, 능숙한 솜씨로 저를 추월해 가시는 덩치 후덕하신 할머니(?)들을 보면서 느꼈던 좌절감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려나 천천히 헤엄을 치고 있노라니 교수님, 황00 교수님과 함께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수영을 다니곤 했던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저희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50미터 레인을 여러 개 갖춘 진주 학생 수영장이 있어서, 수영부 학생들 훈련이 없는 점심시간에는 한산하게 교수님들과 함께 수영을 하곤 했었지요. 드문드문 다니긴 했지만 햇수를 헤아려 보니 꽤 오랫동안 같이 하였습니다.

황00 교수님께서 먼저 정년퇴직을 하시고 이제 교수님도 퇴직하시고 보니, 언제까지나 같이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했던 시간이 돌이켜보면 얼마나 소중하고 좋은 시간이었는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시간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사실은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이 그러하지요. 지나간 시간의 놀라움은 언제나 그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뒤에야 깨닫게 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의 사진을 보면서 그 힘들었던 양육과 성장의 시간이 또한 얼마나 귀하고 보람찬 순간이었는지를 깨닫고, 젊은 교수 시절 학생들과 함께 한 사진들을 우연히 발견하곤 그때의 열정과 설렘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니 지금 이 시간도 또 한참 세월이 흘러서 돌아보면 역시 놀라움으로 발견하게 될 터입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배우게 된 것 중 하나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한 그런 깨달음과 현재의 간격이 좁혀지는 것이 삶의 진보라는 사실입니다. 좁혀지고 좁혀져서 ‘지금 이 순간이 그대로 놀라운 순간’ (This moment wonderful moment,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틱낫한 스님의 게송입니다)임을 동시적으로, 완전하게 경험하면서 살게 된다면 부처(Buddha)-‘온전히 깨달은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사는 형편으로 보아서 이 생에 부처가 될 리는 만무(萬無)하겠으나, 조금씩이나마 그 간격을 줄이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싶기는 합니다. 그 또한 저절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요.


지금 계신 곳 주변에는 이따금씩 수영하러 갈만한 수영장이라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수영이든 걷기든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몸을 많이 움직이시면서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자주 연락드리고 싶지만 그리하지 못함을 혜량(惠諒)하여 주십시오. 다음을 기약하며 이만 줄입니다.

(2021.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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